합천 해인사 삼층석탑

합천 해인사 삼층석탑
(陜川 海印寺 三層石塔)
대한민국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종목유형문화재 제254호
(1985년 11월 14일 지정)
수량1기
위치
합천 해인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합천 해인사
합천 해인사
합천 해인사(대한민국)
주소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치인리)
좌표북위 35° 48′ 4″ 동경 128° 5′ 51″ / 북위 35.80111° 동경 128.09750°  / 35.80111; 128.09750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합천 해인사 삼층석탑(陜川 海印寺 三層石塔)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254호 해인사 삼층석탑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1]

개요[편집]

해인사의 대적광전 아래 서 있는 석탑으로, 넓은 뜰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어 일명 ‘정중탑(庭中塔)’이라고도 불린다.

탑은 3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춘 모습이다. 원래 기단은 2층이었으나 1926년 수리시에 기단을 넓히고 한 층을 더 얹음으로써 통일신라 탑의 전형인 2층 기단의 모습을 깨뜨렸다. 위층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 탑신부의 각 층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가 약간 위로 들려 있다. 또한 각 지붕돌에는 네 귀퉁이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종이 매달려 있는데 이것은 후대에 와서 설치한 것이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보륜(寶輪:수레바퀴모양 장식), 보주(寶珠:구슬모양 장식) 등이 차례로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1926년 6월 탑의 수리할 때 위층 기단에서 아홉 개의 작은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이 불상들은 수리후 다시 석탑 안에 넣어두었다. 탑은 원래 2층 기단이었다는 점과 5단의 지붕돌받침 등 통일신라 석탑의 기본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기단의 가운데기둥 조각을 하나만 두는 등 각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의 것으로 추측된다.

현지 안내문[편집]

이 탑은 2중 기단과 3층의 탑신 및 지붕돌로 이루어진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이다. 원래 이 탑의 받침은 신라 석탑 양식인 2중이었으나, 1926년에 탑을 수리하면서 받침을 확장하고 한층을 더 올려, 본래 지니고 있던 조화미를 상당 부분 상실하고 말았다.

4면의 각 모서리에 기둥을 새긴 것 외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다. 지붕돌받침은 신라 석탑의 전형인 5층으로 되어 있고, 지붕돌 추녀 끝은 살짝 들어올려져 완만하게 처리되었다. 지붕돌의 각 모서리에는 작은 종이 달려 있는데, 본래의 것은 없어지고 나중에 다시 매단 것이다. 탑의 곡대기 역시 일부가 소실되어 꼭데기를 떠받치는 받침대와 위로 핀 연꽃, 바퀴만 남아 있다. 1926년 6월에 이 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상층 받침의 돌 함 속에서 9개의 작은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석탑을 수리하고 나서 디들 불상을 다시 탑 안에 봉안하였다. 또 이 석탑 안에는 코끼리의 눈 모양을 형상화했다는 안상과 연꽃무늬가 조각된 배례석이 있었으나 수리하는 과정에서 석등 앞으로 옮겨졌다.

《조선불교통사》에는 태조가 즉위하여 이 탑을 수리할 때, 대장경을 탑 안에 봉안하면서 나라의 번영과 백성의 평안을 빌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1926년에 탑을 수리할 때 대장경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태조가 수리한 탑이 이 탑인지는 생각의 여지가 있다. 더욱이 근래의 사찰 보수 때 경학원 근처에서 신라 석탑의 재료가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또 다른 석탑이 있었을 가능성도 크다고 하겠다.[2]

각주[편집]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