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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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정문(布政門)은 관찰사가 업무를 처리하던 관청인 감영(監營)의 정문을 의미한다.[1][2] 현재까지 보존 또는 복원된 포정문은 아래와 같다.

현존 포정문[편집]

복원 포정문[편집]

  • 충청감영 공주 포정문 - 2018년에 원래 포정문 위치에 복원 (현재 공주시에는 2개의 포정문이 존재하는 상태임)

소실 포정문[편집]


포정문은 일반적인 지방 관청(관아)의 정문처럼 3개의 문을 가진 2층 규모의 문루(門樓) 형태로 되어 있었으며, 2층에 'OO포정사', 'OO포정문', 'OO포정아문' 등의 편액(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 때문에 문루를 포정루(布政樓), 감영 관아를 포정아문(布政衙門)이라 불렀으며, 때로는 문루 2층 안쪽에 별도의 명칭(편액)이 걸려 있기도 했다.

포정문 편액[편집]

  • 돈의문 밖 경기감영 포정문 : 기보포정사(畿輔布政司)[3]
  • 공주 충청감영 포정문 : 미상
  • 대구 경상감영 포정문 : 영남포정사(嶺南布政司)
  • 전주 전라감영 포정문 : 호남포정사(湖南布政司)
  • 해주 황해감영 포정문 : 해서포정문(海西布政門)
  • 원주 강원감영 포정문 : 관동포정아문(關東布政衙門)
  • 평양 평안감영 포정문 : 미상
  • 함흥 함경감영 포정문 : 관북포정아문(關北布政衙門)

기타 포정사 편액[편집]

  • 충주 충청북도 관찰부 포정문 : 미상[4]
  • 진주 경상남도 관찰부 포정문 : 영남포정사(嶺南布政司)[5]
  • 광주 전라남도 관찰부 포정문 : 미상[6]
  • 영변 평안북도 관찰부 포정문 : 미상[7]
  • 경성 함경북도 관찰부 포정문 : 관북포정사(關北布政司)[8]

포정문 문루 별칭[편집]

  • 대구 경상감영 포정문 : 관풍루(觀風樓)
  • 전주 전라감영 포정문 : 팔달문(八達門)[9]
  • 해주 황해감영 포정문 : 망월루(望月樓)

기타 편액[편집]

  • 공주 충청감영 포정문 : 금남루(錦南樓)[10]
  • 원주 강원감영 포정문 : 선위루(宣威樓)[11]

각주[편집]

  1. 조선시대 관청은 정문인 외대문(外大門), 정문 안쪽의 중문(中門, 중삼문), 본청 청사로 연결되는 내문(內門, 내삼문)의 2개 또는 3개 문을 갖추고 있었다. 감영의 외대문을 포정문이라고 한다.
  2. 예외적으로 전라도에 속하였으나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었던 제주도의 중심 행정관청인 제주목(濟州牧) 관아의 정문도 포정문이라고 호칭하였다. 조선시대 각 부목군현은 모두 감영에 개별적으로 직속되어 있었는데, 제주목은 특별히 대정(大靜), 정의(旌義)의 2개 현을 관할하고 있었다.
  3. 경기감영, 경상감영, 황해감영, 함경감영 포정문 명칭은 사진 자료에서, 전라감영과 강원감영 포정문 명칭은 문헌 자료에서 확인된다.
  4. 충청북도 도청에 해당하는 충청북도 관찰부는 충주목(忠州牧) 관아 자리에 터를 잡았다가 1908년에 청주로 이전되었다. 따라서 청주의 병마영(兵馬營) 자리에 설치된 관찰부 대문에도 포정문 편액이 걸렸을 수 있다. 23부제 당시의 정문 편액은 충주관찰부(忠州觀察府)였다.
  5. 기존 8도를 23부 또는 13도로 개편하자, 새로 설치된 관찰부 또는 도(道)의 최고 관청도 기존의 감영과 비슷한 수준으로 각 건물의 명칭 승격을 시도하였다. 진주의 우병영(右兵營, 경상우병영) 자리에 설치된 경상남도 청사 외삼문에도 대구의 경상북도와 동일한 '영남포정사' 편액이 걸렸다.
  6. 전라남도 관찰부는 광주목 관아 자리에 터를 잡았다.
  7. 평안북도 관찰부는 처음에 정주(定州)에 소재하였다가 13도제가 시행된 이듬해인 1897년에 영변(寧邊)으로 이전되고 1908년에 다시 의주로 이전되었다.
  8. 경성(鏡城) 소재 북병영(北兵營, 함경북도병마절도영)에 설치된 함경북도 관찰부의 외삼문에 걸린 편액이다.
  9. 《우리고장 전주》 P.234 '포정문' 항목. 전주시 편찬, 1982년
  10. 기타 편액은 감영 기능 상실 후 또는 일제강점기 또는 해방 이후 포정문에 걸린 편액이다. 일제강점기 때 기존 '충청남도포정사' 편액을 내리고 걸었다.
  11. 강원도 관찰부가 춘천으로 이전된 이후에 걸린 편액이다. 강원감영 터와 건물은 원주 진위대, 일본군 수비대 주둔지 등으로 활용되었다. 이 선위루 편액은 원주 진위대 시기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