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사 (사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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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甲寺)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이다. [[신라 시대|신라]] 24대 [[신라 진흥왕|진흥왕]] 17년([[556년]])에 혜명대사가 중건하였다. 그 뒤에 의상이 도량을 설치하고 법당을 증수하여 그 규모가 커졌다. 경내에는 대적전, 부도 ,철당간지주 등의 [[대한민국의 보물|보물]]과 군자대, 용문폭 등의 비경이 있다. 동구의 울창한 숲길은 [[여름]]에도 서늘한 감을 주며 [[계곡]] 사이로 펼쳐지는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사보로는 천근 범종과 《[[월인천강지곡]]》 목각판 등이 있다.
'''갑사'''(甲寺)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이다. [[신라 시대|신라]] 24대 [[신라 진흥왕|진흥왕]] 17년([[556년]])에 혜명대사가 중건하였다. 그 뒤에 의상이 도량을 설치하고 법당을 증수하여 그 규모가 커졌다. 경내에는 대적전, 부도, 철당간지주 등의 [[대한민국의 보물|보물]]과 군자대, 용문폭 등의 비경이 있다. 동구의 울창한 숲길은 [[여름]]에도 서늘한 감을 주며 [[계곡]] 사이로 펼쳐지는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사보로는 천근 범종과 《[[월인천강지곡]]》 목각판 등이 있다.

== 연혁 ==
[[백제]] 이래 풍한 불교문화의 본산이 되어왔던 [[계룡산]]의 여러 사찰중에서도 가장 풍부한 문화유적을 간직한 천년고찰로서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갑사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거찰로 발전한 것은 백제 멸망 후의 [[통일신라]]기의 일이었다. [[위덕왕]] 3년(556) 혜명대사가 천불전 및 진광명전, 대광명전을 중건하였고 후에 [[신라]]의 [[의상대사]]는 당우 천여 칸을 중수하고 화엄대학지소를 창건하여 [[화엄종]]의 도량이 됨으로써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번창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에 항거하는 승병궐기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갑사는 [[조선 선조]] 30년(1579) [[정유재란]] 시 침입한 왜구들에 의하여 한꺼번에 소실되어 선조 37년(1604) 대웅전과 진해당 중건을 시작으로 재건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 256호), 부도(보물 제257호), 동종(보물 제478호) 등이 있다.


== 갑사 동종 ==
== 갑사 동종 ==

2010년 12월 30일 (목) 01:51 판

갑사(甲寺)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이다. 신라 24대 진흥왕 17년(556년)에 혜명대사가 중건하였다. 그 뒤에 의상이 도량을 설치하고 법당을 증수하여 그 규모가 커졌다. 경내에는 대적전, 부도, 철당간지주 등의 보물과 군자대, 용문폭 등의 비경이 있다. 동구의 울창한 숲길은 여름에도 서늘한 감을 주며 계곡 사이로 펼쳐지는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사보로는 천근 범종과 《월인천강지곡》 목각판 등이 있다.

연혁

백제 이래 풍한 불교문화의 본산이 되어왔던 계룡산의 여러 사찰중에서도 가장 풍부한 문화유적을 간직한 천년고찰로서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갑사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거찰로 발전한 것은 백제 멸망 후의 통일신라기의 일이었다. 위덕왕 3년(556) 혜명대사가 천불전 및 진광명전, 대광명전을 중건하였고 후에 신라의상대사는 당우 천여 칸을 중수하고 화엄대학지소를 창건하여 화엄종의 도량이 됨으로써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번창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에 항거하는 승병궐기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갑사는 조선 선조 30년(1579) 정유재란 시 침입한 왜구들에 의하여 한꺼번에 소실되어 선조 37년(1604) 대웅전과 진해당 중건을 시작으로 재건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 256호), 부도(보물 제257호), 동종(보물 제478호) 등이 있다.

갑사 동종

갑사 동종(甲寺銅鐘)은 보물 제478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갑사 종각에 있는 조선 시대이며, 높이는 132.5cm, 입지름은 92cm나 된다. 어깨 위에는 여의두 입화형이 돌려 있고, 그 아래 한 가닥의 융기선으로 2줄의 가로띠를 만들어 위 띠에 나란한 4각형 속에 연꽃무늬를, 아래띠에는 동그라미 속에 범자를 양주하여 촘촘히 배치하였다. 이 가로띠에 붙여서 4곳에 가슴과 같은 돌기가 3개씩 3줄로 늘어선 유곽을 마련하고 그 둘레를 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유곽 밑에는 원형의 당좌를 배치하고 아래에 구름무늬를 깔았다. 1584년(선조 17년)에 만들어져 수많은 난리를 거쳤음에도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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