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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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역사 ==
시조 [[김운발]](金雲發)은 경순왕의 손자이다. 그의 아버지 [[김굉|김굉]](金鍠. 914 - ?)은, <ref>문헌(文獻)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김굉(金鍠)은 일명(一名)이며, 본명(本名)은 김덕지(金德摯)이다. 경순왕과 죽방왕후(竹房王后) 박씨(朴氏) 사이의 둘째 왕자로 학성부원군(鶴城府院君)에 봉작되고, 학성(鶴城,현 울산광역시) 일대를 식읍으로 받았다.</ref><ref>{{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LST_039_463_0084}}</ref>
시조 [[김운발]](金雲發)은 경순왕의 손자이다. 그의 아버지 [[김굉|김굉]](金鍠. 914 - ?)은, <ref>문헌(文獻)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김굉(金鍠)은 일명(一名)이며, 본명(本名)은 김덕지(金德摯)이다. 경순왕과 죽방왕후(竹房王后) 박씨(朴氏) 사이의 둘째 왕자로 학성부원군(鶴城府院君)에 봉작되고, 학성(鶴城,현 울산광역시) 일대를 식읍으로 받았다.</ref>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LST_039_463_0084}}</ref>
부친 경순왕(敬順王)이 935년(신라 경순왕 9년) 10월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 태조에게 손국(遜國)하려 하자, 형인 태자와 함께 이를 극력 반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처자를 버리고 형과 함께 개골산(皆骨山)에 들어갔다가 이후 해인사(海印寺)로 옮겨 스스로 범공(梵空)이라는 승명(僧名)으로 생(生)을 마쳤다고 한다.
부친 경순왕(敬順王)이 935년(신라 경순왕 9년) 10월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 태조에게 손국(遜國)하려 하자, 형인 태자와 함께 이를 극력 반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처자를 버리고 형과 함께 개골산(皆骨山)에 들어갔다가 이후 해인사(海印寺)로 옮겨 스스로 범공(梵空)이라는 승명(僧名)으로 생(生)을 마쳤다고 한다.



2016년 9월 3일 (토) 04:03 판

나주 김씨 (羅州 金氏)
관향전라남도 나주시
시조김운발 (金雲發)
집성촌전라남도 무안군
충청남도 공주시, 청양군
충청북도 옥천군
평안남도 성천군
평안북도 태천군, 영변군, 박천군
주요 인물김지웅, 김의택, 김용현, 김계원, 김우창, 김창석, 김지형, 태연
인구(2000년)46,420명 (147위)

나주 김씨(羅州 金氏)는 전라남도 나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김운발(金雲發)은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의 손자로 고려조에서 나주군(羅州君)에 봉군되었다.

역사

시조 김운발(金雲發)은 경순왕의 손자이다. 그의 아버지 김굉(金鍠. 914 - ?)은, [1] [2] 부친 경순왕(敬順王)이 935년(신라 경순왕 9년) 10월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 태조에게 손국(遜國)하려 하자, 형인 태자와 함께 이를 극력 반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처자를 버리고 형과 함께 개골산(皆骨山)에 들어갔다가 이후 해인사(海印寺)로 옮겨 스스로 범공(梵空)이라는 승명(僧名)으로 생(生)을 마쳤다고 한다.

입산하기 전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고려조(高麗朝)에서 이들을 예우하여 김운발(金雲發)을 문하시중(門下侍中) 나주군(羅州君)에 봉하였다. 묘(墓)는 개성군(開城郡) 영남면(嶺南面) 용흥리(龍興里) 오화곡(五花谷) 오룡산(五龍山) 남록(南麓)에 있다.

김운발(金雲發)은 슬하에 중륜(重輪)·성륜(聖輪)·인륜(仁輪)의 세 아들을 두었는데, 막내아들 계자(季子) 인륜(仁輪)의 후손들이 김운발(金雲發)을 시조로 삼아 나주 김씨(羅州 金氏), 안로 김씨(安老 金氏), 여수 김씨(麗水 金氏) 등으로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안로 김씨(安老 金氏) 시조 김지경(金之敬)은 일설(一說)에 경순왕의 첫째 손자 김운발(金雲發)의 후손이거나 또는 둘째 손자 김우발(金雨發)의 아들이다고 한다. 후손으로는 대장군(大將軍) 안로현주(安老縣主) 김극순(金克淳), 병부상서(兵部尙書) 김수연(金守淵), 예의판서(禮儀判書) 김가구(金可久) 등이 있다.

본관

나주(羅州)는 전남의 중서부에 위치한 고장으로, 백제시대에는 발라군이었다가, 신라 경덕왕이 금산군으로 고쳤다. 후백제시대에는 견훤이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고, 후에 고려 태조 왕건이 점령하여 나주라 개칭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거란의 침입으로 왕이 일시 이곳에서 피난한 인연이 있어 목으로 승격되었다.

조선 세조 때에 나주목사는 진을 두고 영암 ·영광의 2군과, 함평 ·고창 ·광산 ·장성 ·진원 ·무장 ·남평 ·무안의 8현을 관할하였다. 조선후기 면리제가 정비되면서 나주목은 38개 면과 현 신안군 일대 30여개 이상의 도서를 관할 하는 목사고을로 많은 호구와 전결을 보유하고 교통으로 청암도와 조은으로 영산창을 가진 큰 고을이었다.

1895년 (조선 고종 32)에 지방제도 개혁으로 전국을 23부로 구분하면서 나주부가 되어 관찰사가 주재했다. 이듬해에 다시 전국 행정구역을 13도로 개편하면서 나주부가 폐지되고 나주목이 나주군이 되어 전남의 1등군이 되고, 전남의 행정중심이 광주로 옮겨졌다.

분적

나주 김씨에서 직계 분적된 본관으로는 안로 김씨(安老 金氏), 여수 김씨(麗水 金氏)등이 있다.

인물

아들 인륜(仁輪)은 고려조에서 원윤(源尹)에 올랐다.

인륜(仁輪)의 3세 율(律)은 시중(侍中), 4세 원상(源相)은 예의판서(禮儀判書), 5세 시태(始台)는 도총부부총제(都摠府副摠制), 6세 우해(宇海)는 판윤(判尹), 7세 광(光)은 보문각 대제학(寶文閣 大提學), 8세 여(礪)는 시중(侍中), 9세 서황(瑞璜)은 시중사정(侍中司正), 계황(季璜)은 문하시중(門下侍中) 공주군(公州君), 10세 득장(得章)은 시중(侍中) 대장군(大將軍), 11세 극순(克淳)은 대장군(大將軍) 안로현주(安老縣主) 금성군, 12세 요선(堯瑄)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13세 수연(守淵)은 병부상서(兵部尙書) 광록대부(光祿大夫)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처연(處淵)은 진사(進士)을 역임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14세 김인충(金仁忠)은 고려말 충신으로 영장공(營將公)이며 강화진 좌령낭장(江華鎭左領郎將)을 역임하다가 1403년경 제주도로 낙향하여 나주김씨의 제주도 입도시조가 되었다.

15세 김대경(金臺卿)은 1326년(충숙왕 13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대제학에 이르렀으며, 문장(文章)이 당대에 뛰어나 동문선(東文選 : 신라 때부터 조선 숙종 때까지의 시문을 모은 책)에 시가 올라있고, 한때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함께 나주 안로현(安老縣)에서 유배 생활을 겪기도 하였다.

16세 김가구(金可久)은 충목왕(忠穆王) 때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냈다.

17세 김정준(金廷儁)은 조선 정종(定宗) 때 왜구(倭寇) 토벌에 공을 세워 부총제(副摠制)에 올랐다.

18세 김증(金增)은 김정준(金廷儁)의 둘째 아들로 김종서(金宗瑞)의 사위가 되었다.

19세 김취장(金就章)은 문과에 오른 후 단종조에 의성 현령을 지내다가 외조부 김종서의 화를 애통히 여겨 금군대군 유(瑜)와 더불어 단종복위를 꾀하다 실패, 뜻을 이루지 못하자 산중에 숨어 버렸다.

19세 김성조(金成祖)는 제주도 입도조 김대경(金臺卿)의 6세로 1555년(명종 10) 6월 27일 왜구들이 제주도에 침입해오자 분연히 일어나 목사 김수문(金秀文)과 더불어 남수곽 동쪽 구릉에서 이를 크게 격파하였다. 이 전투에서 왜구가 남기고 간 이수는 무려 1천이 넘었다 한다. 이때의 전공으로 명종 임금으로부터 건공장군을 수직하고 충훈원에 등록되었으며 그 내력이 『탐라지』와 김석익의『탐라인물고(耽羅人物考)』에 사적이 자세히 나온다.

20세 김용호(金用瑚)는 무신으로 발탁되어 전라도 순천의 방답진첨절사(防踏鎭僉節使)를 행임하면서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치는데 공이 있었으며, 그의 아우 김용련(金用璉)은 승의부위를 지냈다.

21세 김경석(金景錫)은 중종(中宗) 때 무과에 급제하여 1555년(명종 10년) 호남 지방에 왜구가 침입하자 방어사(防禦使)로 종질(從姪) 김적(金適)과 함께 영암포(靈岩浦)에서 격퇴시켰다.

23세 김충수(金忠秀) 자는 중심(中心), 호는 귀암(龜巖)으로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撫原從功臣)에 책록되고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올랐으며,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부인과 함께 장렬하게 순절하여 나라에서 그의 고향 공주에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학자로 이름난 김덕수(金德秀), 공조좌랑(工曹佐郞) 김복남(金福男), 부호군(副護軍) 김세빈(金世彬), 전라 관찰사(觀察使) 김장송(金長松), 남원부사(南原府使) 김몽동(金夢東)과 김난익(金蘭益), 현감(縣監) 김희징(金禧澄)과 김원동, 이등공신(原從二等功臣) 김언호(金彦浩), 제주판관(1647)과 제주목사(1672) 김흥운(金興運) 등이 있다.

현대 인물

  • 김계원(金桂元, 1923년 ~ ) : 제18대 육군참모총장, 제5대 중앙정보부장, 제5대 대통령비서실장
  • 김의택(金義澤) : 전남 함평 출생. 신민당 수석부총재, 민권당 총재.
  • 김창석 : 대법관
  • 김철주 : 전남 무안군수
  • 김지형 : 대법관
  • 태연 : 가수 소녀시대

과거 급제자

나주 김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8명을 배출하였다.[3]

고려 문과

김대경(金臺卿) 김성고(金成固)

문과

김대규(金大圭) 김상려(金相礪) 김소하(金韶夏) 김영업(金英業) 김영집(金英集) 김적(金適) 김초보(金楚寶) 김형중(金衡重)

무과

김경춘(金京春) 김경환(金擎煥) 김관초(金觀初) 김구정(金九鼎) 김구정(金九鼎) 김귀소(金貴素) 김기정(金起鼎) 김끝남(金唜男) 김담(金淡) 김대남(金大男) 김득룡(金得龍) 김득문(金得文) 김막쇠(金莫金) 김명길(金命吉) 김보(金福) 김봉채(金鳳彩) 김상경(金尙鏡) 김상돈(金尙敦) 김석기(金碩起) 김성구(金成九) 김성구(金成九) 김성인(金聲仁) 김성장(金聲章) 김세진(金世珍) 김세흥(金世興) 김세흥(金世興) 김쇠동(金金伊同) 김수명(金壽鳴) 김순찬(金順贊) 김승익(金承益) 김시원(金時元) 김시찬(金時贊) 김신검(金慎儉) 김신영(金信永) 김언춘(金彦春) 김여구(金麗鉤) 김여원(金麗元) 김영신(金榮臣) 김옥(金鋈) 김완수(金完壽) 김용갑(金龍甲) 김운(金雲) 김윤서(金潤瑞) 김응룡(金應龍) 김응신(金應信) 김응운(金應運) 김응현(金應賢) 김의일(金義一) 김자신(金自新) 김장로(金長魯) 김재추(金在秋) 김적(金積) 김종덕(金宗德) 김종엽(金宗曄) 김종원(金從元) 김종일(金從一) 김준필(金俊弼) 김중기(金重基) 김중백(金重白) 김중삼(金重三) 김중익(金重益) 김중하(金重夏) 김진광(金震光) 김진석(金進碩) 김진호(金震皓) 김찬(金贊) 김찬재(金贊載) 김처곤(金處坤) 김초만(金楚萬) 김춘남(金春男) 김충익(金忠益) 김취장(金就章) 김치형(金致亨) 김태문(金兌文) 김풍월(金風月) 김필영(金必永) 김헌(金獻) 김흥삼(金興三) 김흥운(金興運)

생원시

김곽(金钁) 김규엽(金奎燁) 김능원(金能元) 김만지(金萬址) 김면기(金冕基) 김삼로(金三老) 김상교(金尙敎) 김성오(金成五) 김성호(金性昊) 김승구(金昇求) 김응보(金膺輔) 김익(金釴) 김종원(金鍾源) 김초보(金楚寶) 김초재(金楚材) 김충수(金忠秀) 김치용(金致鏞) 김형(金衡)

진사시

김경로(金慶魯) 김국로(金國鷺) 김긍현(金兢鉉) 김낙영(金樂英) 김능익(金能益) 김대용(金大鏞) 김덕수(金德秀) 김덕준(金德駿) 김도제(金道濟) 김두환(金斗煥) 김수극(金守極) 김수업(金秀業) 김이형(金以衡) 김정환(金鼎煥) 김준각(金濬珏) 김창석(金昌錫) 김태모(金泰模) 김흥식(金興植)

역과

김극강(金克剛) 김수민(金壽民) 김수욱(金壽郁) 김여공(金汝恭) 김예범(金禮範) 김위현(金偉賢) 김익규(金翊奎) 김절규(金晢奎) 김처강(金處剛)

집성촌

  • 전남 무안군 청계면 학유정
  • 충북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
  • 충남 공주군 탄천면 견동리, 대학리
  • 충남 청양군 대치면 오용리
  • 평남 성천군 통선면 덕암리
  • 평북 태천군 강동면 덕화동
  • 평북 영변군 태평면 관상동
  • 평북 박천군 서면 운포동

인구

  • 1985년 9,780가구 41,257명
  • 2000년 14,387가구 46,420명

각주

  1. 문헌(文獻)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김굉(金鍠)은 일명(一名)이며, 본명(本名)은 김덕지(金德摯)이다. 경순왕과 죽방왕후(竹房王后) 박씨(朴氏) 사이의 둘째 왕자로 학성부원군(鶴城府院君)에 봉작되고, 학성(鶴城,현 울산광역시) 일대를 식읍으로 받았다.
  2. 나주 김씨 - 한국학중앙연구원
  3. 나주 김씨 - 한국학중앙연구원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