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
종목 | 유형문화재 제9호 (1972년 5월 25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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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507.6m2 |
수량 | 2동 |
시대 | 조선시대 |
위치 |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소격동 165-10 |
좌표 | 북위 37° 34′ 43″ 동경 126° 58′ 50.3″ / 북위 37.57861° 동경 126.980639° |
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宗親府 敬近堂과 玉牒堂)은 조선 시대 관공서 중 최고 등급인 정1품아문의 하나인 종친부 건물로, 관아건축이면서 궁궐건축의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1] 서울특별시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안에 위치한다.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2월 27일 보물로 승격되었다.
역사
[편집]조선왕조 역대 모든 제왕의 어보(왕의 도장)와 영정(초상화)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종실제군(宗室諸君)의 봉작승습·관혼상제 등 모든 사무를 맡아보던 곳이다. 조선 전기에는 ‘재내제군소’라 하였으나 여러 차례 그 명칭과 기능이 바뀌었다가, 세종 12년(1430)에 종친부라 하였다.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종친부의 권한과 조직을 확대하면서 종친부 건물이 대규모로 늘어날 당시(1866) 중건되었다. 당시 경근당(敬近堂)은 대군, 왕자군 등 종친들의 대청으로 종친부의 중심 건물로서, 좌우로 각각 옥첩당(玉牒堂)과 이승당(貳丞堂)을 두고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이승당은 1950년대 이후 사라졌다.[1]
순종 융희 1년(1907)에는 이를 폐지하고, 이곳 사무를 규장각으로 옮겼다.
원래 삼청동에 있던 것을 국군기무사령부 내 테니스장을 짓기 위하여 1981년 8월 정독도서관으로 옮겼으나, 2013년에 원 위치로 이전하였다.[2]
건축
[편집]경근당은 정면 7칸, 옆면 4칸으로 된 이익공 공포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정면에는 넓은 월대를 두었고, 옥첩당은 정면 5칸, 옆면 3칸으로 된 초익공의 팔작지붕으로, 건축물의 규모나 공포의 형식 모두 경근당 보다 격을 낮추어 위계를 두었다.[1]
경근당과 옥첩당은 고종대 302칸에 달했던 종친부 건축군의 중심 전각으로서 19세기 중앙 관아 건축의 배치와 구성, 연결방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사례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또한, 1981년 경근당과 옥첩당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가 2013년 다시 원위치로 이전되었지만, 당초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며 많은 부재를 재사용했다는 점에서 건축물의 진정성도 인정된다.[1]
현지 안내문
[편집]종친부(宗親府)는 조선왕조 역대 제왕의 어보(御寶)와 어진(御眞)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종실제군(宗室諸君)의 관혼상제(冠婚喪祭) 등 모든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이다.[3]
종친부의 건물 중에서 경근당(敬近堂)은 왕실의 사무를 처리하던 전각이며, 옥첩당(玉牒堂)은 고위 관리들의 집무처로 사용되었다. 두 건물은 1981년 정독도서관으로 옮겨졌다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건립하면서 원래의 위치인 지금의 자리로 이전 복원되었다.[3]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가 나 다 라 “문화재청, 관아건축 8건 ‘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 2021년 10월 28일.
- ↑ 종친부 원위치로 이전 복원…20일 준공식, 《연합뉴스》, 2013.12.18.
- ↑ 가 나 현지 안내문 인용
참고 자료
[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이 문서에는 문화재청에서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배포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