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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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존(張存, ? ~ ?)은 중국 후한유비 휘하의 정치가는 처인(處仁)이며 형주 남양군 사람이다. 익주 탈취를 제안한 방통과는 의견이 달랐다.

생애[편집]

211년(건안 16년), 형주종사(―從事)로서 유비를 수행해 으로 들어갔다. 212년, 유비가 익주유장과의 전쟁을 시작해 남쪽으로 밀고 내려갔다.(유비의 입촉) 213년, 광한군 낙현(雒縣)에 이르러 광한태수에 임명되었다. 214년,[1] 공성전 도중 방통이 유시(流矢)에 맞아 전사하였다. 유비가 방통을 가상히 여겨 찬탄하자 본래 방통과 의견이 달랐던 장존은 “방통이 비록 충성을 다했던 몹시 아까운 인물이긴 합니다만 천하의 올바른 도리는 어겼습니다.”[2]라고 하였다. 유비는 방통이 살신성인을 이뤘다고 화를 내며 장존을 면직시켰다. 얼마 뒤에 병사하였다.

평가[편집]

양희는 장존이 계책을 깨우쳤다며 지방에서 그윽한 향기를 풍긴 인사 중 하나라 하였다.[3]

각주[편집]

  1. 자치통감》67권 한기 제59 헌제 건안 19년
  2. 統雖盡忠可惜, 然違大雅之義
  3. 양희, 《계한보신찬》 ; 진수 저, 《삼국지》45권 촉서 제15 양희에 인용

참고 문헌[편집]

  • 삼국지》45권 촉서 제15 양희
  • 《삼국지》32권 촉서 제2 선주 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