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영
이헌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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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37년 |
사망 | 1907년 |
국적 | 조선 |
별칭 | 자 경도(景度), 호 경와(敬窩) 시호 문정(文貞) |
학력 | 1870년 문과 급제 |
직업 | 문신 |
종교 | 유학 |
이헌영(李𨯶永, 1837년 ~ 1907년)은 조선 후기 개화기 시대의 문관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덕흥대원군의 후손이다. 자는 경도(景度), 호는 경와(敬窩), 동련(東蓮), 시호는 문정(文貞).
생애[편집]
1867년(고종 4년)에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1] 1870년(고종 7년)에 대과 문과 과거시험에 급제하여[2] 홍문관 수찬을 거쳐 1877년에 당상관인 정3품 병조참지를 지냈다. 이후 1881년에 신사유람단 일원인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 12명 가운데 1인으로 발탁되어 민건호 등과 함께 4개월간 일본을 시찰하여 개화파의 일원이 되었다. 귀국 후 통리기무아문의 주요 직책을 맡았으며, 승정원 우부승지, 암행어사, 이조참의 등을 거쳐 1883년에는 부산 지역에 처음 설치된 감리서의 책임자인 감리(監理)로 임명되었다.[3] 1884년에 의주부윤, 1887년에 병조참판, 1889년에 대사헌, 1890년에 이조참판, 1894년에 한성판윤과 공조판서, 1896년에 평안남도관찰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907년에 사망하였으며, 1910년에 '문정(文貞)'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경력[편집]
- 1867년(고종 4년), 소과 합격 (진사가 됨)
- 1870년(고종 7년) 4월, 정시(庭試) 문과 급제, 홍문관 수찬 임명
- 1877년(고종 14년) 4월, 정3품 병조 참지
- 1878년(고종 15년) 3월, 경기암행어사
- 1883년(고종 20년) 6월, 이조참의
- 1883년(고종 20년) 8월, 감리부산항통상사무 (부산항 감리)
- 1884년(고종 21년) 8월, 의주부윤
- 1886년(고종 23년) 1월, 참의내무부사(參議內務府事)
- 1888년(고종 25년) 8월, 종2품 사헌부 대사헌
- 1890년(고종 27년) 1월, 이조참판
- 1890년(고종 27년) 7월, 성균관 대사성
- 1890년(고종 27년) 12월, 경상도 관찰사
- 1894년(고종 30년) 1월, 형조참판
- 1895년(고종 32년) 윤5월, 정2품 내부대신
- 1896년(고종 33년) 6월, 평안남도 관찰사
- 1898년(고종 35년) 7월, 중추원 일등의관
- 1899년(고종 36년) 7월, 장례원경
- 1900년(고종 37년) 6월, 의정부 찬정
- 1901년(고종 38년) 7월, 의정부 참정
- 1902년(고종 39년) 6월, 경상북도 관찰사
- 1903년(고종 40년) 11월, 내부대신
- 1905년(고종 42년) 1월, 종1품 승진
- 1906년(고종 43년) 1월, 궁내부 특진관
- 1906년(고종 43년) 12월, 판돈녕사사
가계[편집]
- 고조부 : 이련(李槤), 이명희의 부
- 증조부1 : 군수 이명희(李命喜), 이서헌의 양부, 증 이조참의
- 증조부2 : 이명혁(李命赫), 이서헌의 생부
- 조부 : 이서헌(李書憲), 증 이조참판
- 부: 학생 이정태(李鼎台), 증 이조판서
- 모 : 조씨(趙氏) - 조재희(趙在禧)의 딸
- 본인 : 이헌영
- 첫째부인 : 심씨(沈氏) - 심충봉(沈衝浲)의 딸
- 둘째부인 : 여흥 민씨(閔氏) - 민영집(閔泳集)의 딸
- 아들 : 이수일(李秀一)
- 조부 : 이서헌(李書憲), 증 이조참판
저서[편집]
- 《일사집략(日槎集略)》
- 《일본문견록(日本聞見錄)》
- 《일본문견별단초(日本聞見別單草)》
- 《일본세관시찰기(日本稅關視察記)》
- 《조선국수출입반년표(朝鮮國輸出入半年表)》
- 《나가사키세관규식초(長崎稅關規式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