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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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량(劉漢良)은 조선의 관료이다. 본관은 강릉이고, 조선 개국공신 유창의 증손자이다. 자(字)는 충겸(忠謙)이며 호(號)는 은재(隱齋)이다.

생애[편집]

효성으로 천거되어 돈녕도정(敦寧都正)에 제수되고, 무장현감(茂長縣監)을 지내다가 1571년(선조 4년) 탄핵되었다.[1]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이 진주(晉州)를 지킨다는 소식을 듣고, 김준민(金俊民)과 함께 좌의부장(左義部將) 장윤(張潤)의 진(陣)에 나아가 적(賊) 수명(數名)을 베었다. 화살이 떨어지자 죽창으로 대전했지만,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남강(南江)에 투신(投身)하였다.[2]

사후[편집]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고, 고창(高敞)의 검암사(儉巖祠), 장성 송계서원에 배향(配享)되었다.

가족[편집]

  • 증조부 : 유창(劉敞)
  • 증조모 : 광주 이씨 -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증 좌찬성(左贊成) 이집(李集)의 딸
    • 조부 : 유인통 - 사섬서 령(司贍署令), 이조판서
    • 조모 : 평양 조씨 - 판선공감사, 선산도호부사를 지낸 조진(趙瑨)의 딸
      • 아버지 : 유계주 - 유인통의 삼남. 자(字)는 국헌(國憲), 호(號)는 성재(省齋) 이조좌랑(吏曹佐郞) 역임.
      • 어머니 : 연안 김씨 - 대사간(大司諫) 육(堉)의 딸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