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범어사 불교전문강원에서 4교과를 졸업한 유성갑은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성서학원중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1939년 대정대학 예과를 수료하고, 1939년 니혼대학 법문학부에 입학 후,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사진 및 「독립 선언문」을 은닉한 죄로 6개월간 감옥 생활을 하였다. 1943년 니혼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그 해 만주 퉁화현 칠도구로 가서 한인 초등학교를 창설하여 교장 직책을 역임하였다.
1948년 전라남도 고흥군 을 지역구에서 제헌 국회 의원을 지내고, 헌법 기초 위원과 법제 사법위원, 3·1 구락부 상임간사, 무소속 구락부 상임간사, 이정회 상임간사, 대한노동당 원내부위원장, 대한국민당 간사,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 감찰위원장을 지냈다.
6·25 전쟁 중인 1950년 9월 28일 북한군에 잡혀서 광주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1950년 10월 6일에 형무소원이 쏜 총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