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5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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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5왕(倭五王)은 중국의 고대 사료에 나타나는 송나라와 남조에 사신을 보낸 일본의 왕으로 이 왕들은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중국 황제로부터 관직을 요청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찬(讃.贊), 진(珍), 제(濟), 흥(興) 및 무(武)이다.

왜 5왕에게 부여된 관직들[편집]

서기 (AD) 중국왕조 중국력 왜왕의 이름 설명 중국사서
413 동진 (265년 ~ 420년) 義熙 9 미상, 양서의 찬, 諸夷伝 왜왕이 조공을 보내옴 진서, 安帝紀,
421 (420년 ~ 479년) 永初 2 찬이 송에 조공을 보내옴. 무제가 "멀리서 온 정성이 크므로, 제수(除授)를 내려야 할 것이다."라고 함 송서, 倭国伝
425 元嘉 2 왜왕 찬 사마 조달(曺達)을 사신으로 보내 표를 올리고 방물을 바침 송서, 倭国伝
430 元嘉 7 1월에 왜왕이 조공을 보내옴 송서, 文帝紀
438 元嘉 15 왜왕 찬이 죽고 그의 동생 진이 계승하여 스스로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六國諸軍事(6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國王(왜국왕)이라 자칭하며 정식으로 임명해주기를 요청함. 하지만, 진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문제는 安東將軍(안동장군)倭國王(왜국왕)이라는 관직만을 제수함. 문제는 왜왕 진의 신하들에겐 平西(평서)征虜(정로)冠軍(관군)輔國(보국)將軍(장군)이라는 관직을 정식으로 임명해 달라는 요청을 허락함 송서, 文帝紀와 倭国伝
443 元嘉 20 왜왕 제가 사신을 보내어 봉헌하므로, 安東將軍(안동장군)倭國王(왜국왕)으로 삼음 송서, 倭国伝
451 元嘉 28 왜왕 제가 安東將軍(안동장군)과 더불어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六國諸軍事(6국제군사)에도 임명됨. 7월에 아울러 23인의 신하들도 군(軍)과 군(郡)을 제수함 송서, 文帝紀와 倭国伝
462 大明 6 3월 왜왕 제의 왕자 흥을 安東將軍(안동장군)倭國王(왜국왕)에 임명함 송서, 孝武帝紀와 倭国伝
477 昇明 1 11월에 왜왕이 조공을 보내옴
왜왕 흥이 죽고 그의 동생 무가 위를 이음. 무는 스스로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백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七國諸軍事(7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國王(왜국왕)라 자칭함
송서, 順帝紀와 倭国伝
478 昇明 2 무가 스스로 開府儀(개부의)同三司(동삼사)라는 문관1품 관직을 임시로 제수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적당히 가수(假授)한 관직을 정식으로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함. 순제가 무를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六國諸軍事(6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王(왜왕)에 제수함
[*]왜왕 무가 요청한 관직중에서 백제가 빠진 것은, 이미 425년 문제가 백제 19대 왕인 구이신왕에게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百濟諸軍事(백제제군사)鎭東大將軍(진동대장군)百濟王(백제왕)이라고 관직을 제수하였기 때문에 무의 요청중 일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송서, 順帝紀와 倭国伝
479 남제 (479년 ~ 502년) 建元 1 고제가 왜왕 무를 鎮東大將軍(진동대장군)으로 승격시킴 제서, 倭国伝
502 (502년 ~ 557년) 天監 1 4월 무제가 왜왕 무를 征東大將軍(정동대장군)으로 승격시킴 양서, 武帝紀

일본 역사책과의 비교[편집]

중국의 사서에 기록된 왜왕의 이름들은 일본서기의 천황의 이름들과 매우 달라 어느 천황이 어느 왜왕인지 논쟁이 계속되어 왔다. 이나리야마의 칼에다 후나야마 칼의 금석문을 근거로 왜 무왕이 유라쿠(웅략) 천황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나머지 왕들에 대해서는 중국 사기의 기록을 어림잡아 다른 천황에 비정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들 왕이 5세기경 야마토 조정(현재의 천황가의 조정)이 아닌 다른 왕조의 지배자들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 왕조들은 현재 천황가에 의하여 멸망되었다고 보고 있으나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다.

조공 기록[편집]

찬(讃,贊)[편집]

  • 晉安帝時,有倭王贊 遣使 朝貢。[1]

진 안제때, 왜왕 찬이 사신을 보내 조공함

  • 高祖永初二年,詔曰:「倭贊萬里修貢,遠誠宜甄,可賜除授。」[2]

고조 영초2년, 조서에 이르길 : 왜찬이 만리먼길에서 (송에) 조공을 보내옴. (송나라 무제가) "멀리서 온 정성이 크므로, 마땅히 제수(除授)를 내려야 할 것이다."라고 함

  • 太祖元嘉二年,贊又 遣司馬曹達 奉表 獻方物[2]

태조 원가2년, 왜왕 찬이 또 사마 조달(曺達)을 사신으로 보내 표를 올리고 방물을 바침

진(珍)[편집]

  • 贊死,弟珍立,遣使貢獻。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왜왕 찬이 죽고 그의 동생 진이 계승하여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스스로 칭하길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六國諸軍事(6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國王(왜국왕)이라 함.

  • 表求除正,詔除安東將軍、倭國王。

정식으로 임명해주기를 요청함. 하지만, 진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송나라 문제는 安東將軍(안동장군)倭國王(왜국왕)이라는 관직만을 제수함.

  • 珍又求除正 倭隋等 十三人 平西、征虜、冠軍、輔國將軍號,詔並聽。[2]

송나라 문제는 왜수(倭隋)등 13인에게 平西(평서)征虜(정로)冠軍(관군)輔國(보국)將軍(장군)이라는 관직을 정식으로 임명해 달라는 요청을 허락함

제(濟)[편집]

  • 二十年,倭國王濟 遣使 奉獻,復以爲安東將軍、倭國王。[2]

20년, 왜국왕 제가 사신을 보내어 봉헌하므로, 安東將軍(안동장군)倭國王(왜국왕)으로 삼음

  • 二十八年,加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將軍如故。並除所上 二十三人軍、郡。[2]

28년, 왜왕 제가 安東將軍(안동장군)과 더불어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六國諸軍事(6국제군사)에도 임명됨. 아울러 23인의 신하들도 군(軍)과 군(郡)을 제수함

흥(興)[편집]

  • 濟死,世子興 遣使貢獻。[2]

왜왕 제가 죽고,세자 흥이 사신을 보내 조공함.

  • 世祖大明六年,詔曰:「倭王世子興,奕世載忠,作籓外海,稟化寧境,恭修貢職。新嗣邊業,宜授爵號,可安東將軍、倭國王。」[2]

세조 대명6년 조서에 이르길 : 왜왕세자흥 역시 安東將軍(안동장군)倭國王(왜국왕)에 임명함

무(武)[편집]

  • 興死,弟武立,自稱 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七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2]

왜왕 흥이 죽고 그의 동생 무가 위를 이음. 무는 스스로 칭하길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백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七國諸軍事(7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國王(왜국왕)라 함

  • 順帝升明二年,遣使上表曰:「封國偏遠,作籓於外,自昔祖禰,躬擐甲胄,跋涉山川,不遑寧處。

순제 승명 2년, 사신을 파견하여 왜왕 무가 표문을 올리기를 신의 나라는 구석지고 먼 곳에 봉 받아 밖의 번신이 되었습니다. 옛 조상 때부터 몸소 갑옷을 입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편히 쉬지 못하였습니다.

  • 東征毛人五十五國,西服衆夷六十六國,渡平海北九十五國,王道融泰,廓土遐畿,累葉朝宗,不愆於歲。

동쪽으로 모인 55국을 정벌하고, 서쪽으로 중이 66국을 복속시키고, 바다 건너 북으로 95국을 평정하여 왕도가 무륵익어 태평하고, 땅은 서울에서 멀리까지 넓혔으며, 해마다 세공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 臣雖下愚,忝胤先緒,驅率所統,歸崇天極,道遙百濟,裝治船舫,

신이 비록 어리석지만, 선대를 이어 나라를 평안하게 통솔하고 있으며, 천극으로 가는 길은 백제를 통해 가야하기에 배를 타고 가야합니다.

  • 而句驪無道,圖欲見吞,掠抄邊隸,虔劉不已,每致稽滯,以失良風。

그러나 고구려는 무도하여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려하고 변방을 침략하고 약탈하여 근심이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늘 일이 막히고 거슬리는 바람에 어진 풍속을 잃고 있사오니,

  • 雖曰進路,或通或不。

비록 나아갈 길은 있지만 그 길이 혹은 통하기도 하고 혹은 통하지 않기도 합니다.

  • 臣亡考濟實忿寇仇,壅塞天路,控弦百萬,義聲感激,方欲大舉,奄喪父兄,使垂成之功,不獲一簣。

신의 죽은 아비 제는 고구려가 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천자에게 자주 문안드리지 못함을 분통히 여겼으며, 활을 당기는 백만의 의로운 소리에 감격하여, 바야흐로 군사를 크게 일으키고 싶었으나, 갑자기 아비와 형을 잃어, 이루려는 공이 흙 한 삼태기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 居在諒暗,不動兵甲,是以偃息未捷。

신은 양암(빈소)에 거처하였기에, 군사를 움직이지 못하였고 그 때문에 그들과 싸우지 못했습니다.

  • 至今欲練甲治兵,申父兄之志,義士虎賁,文武效功,白刃交前,亦所不顧。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병기를 연마하고 군사를 훈련하여, 부형들의 뜻을 펴보고자 하옵는데, 의롭고 용맹스러운 군사들이, 문무를 가릴 것 없이, 공을 나타내려 합니다. 눈앞에 흰 칼날이 번쩍이는 다급함이 있더라도, 또다시 되돌아다볼 필요는 없사옵니다.

  • 若以帝德覆載,摧此強敵,克靖方難,無替前功。

만일 황제의 덕을 입는다면, 이 강한 적을 꺾어 없애고, 어려운 무리들을 이기시어 조용하게 하시면 전대의 공에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 竊自假開府儀同三司,其餘鹹各假授,以勸忠節。」

삼가 스스로 임시로 개부의동삼사의와 그 나머지 모두에게도 관작의 제수를 원하였다.」

  • 竊自假開府儀同三司,其餘鹹各假授,以勸忠節。」

무가 스스로 開府儀(개부의)同三司(동삼사)라는 문관1품 관직을 임시로 제수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적당히 가수(假授)한 관직을 정식으로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함.

  • 詔除武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王。[2]

순제가 무를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六國諸軍事(6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王(왜왕)에 제수함


  • 建元元年,進新除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王武號爲鎮東大將軍。[3]
  • 齊建元中,除武 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鎮東大將軍[1]

고제가 왜왕 무를 鎮東大將軍(진동대장군)으로 승격시킴

  • 梁武帝即位,進武 號征東大將軍。[1]

무제가 왜왕 무를 征東大將軍(정동대장군)으로 승격시킴

  • 順帝升明二年,遣使上表曰:「封國偏遠,作籓於外,自昔祖禰,躬擐甲胄,跋涉山川,不遑寧處。東征毛人五十五國,西服衆夷六十六國,渡平海北九十五國,王道融泰,廓土遐畿,累葉朝宗,不愆於歲。臣雖下愚,忝胤先緒,驅率所統,歸崇天極,道遙百濟,裝治船舫,而句驪無道,圖欲見吞,掠抄邊隸,虔劉不已,每致稽滯,以失良風。雖曰進路,或通或不。臣亡考濟實忿寇仇,壅塞天路,控弦百萬,義聲感激,方欲大舉,奄喪父兄,使垂成之功,不獲一簣。居在諒暗,不動兵甲,是以偃息未捷。至今欲練甲治兵,申父兄之志,義士虎賁,文武效功,白刃交前,亦所不顧。若以帝德覆載,摧此強敵,克靖方難,無替前功。竊自假開府儀同三司,其餘鹹各假授,以勸忠節。」詔除武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王。

함께 보기[편집]

참고[편집]

  1. 南史/卷79#東夷 倭國
  2. 宋書/卷97#東夷 倭國
  3. 南齊書/卷58#東夷 倭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