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탕강 굽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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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탕강 굽이 전투
버마 전역의 일부

1945년 8월 1일 시탕강 굽이에서 왕립 포병대BL 5.5 인치 중포를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일본군에게 쏘고 있다.
날짜1945년 7월 2일~1945년 8월 7일
장소
결과 영국의 승리[1][2]
교전국

영국 영국

일본 제국 일본 제국
지휘관
영국 몬타구 스탑퍼드
영국 프랭크 메저비
영국 프랜시스 터커
일본 제국 기무라 헤이타로
일본 제국 사쿠라이 쇼조
일본 제국 혼다 마사키
군대

영국 제12군

영국 136부대

일본 제국 버마 방면군

피해 규모
95명 사망, 322명 부상, 1,600명 비전투 사망[3] 8,500명 사망, 740명 포로, 5,000명 이상 비전투 사망[2][4]

시탕강 굽이 전투(영어: Battle of the Sittang Bend) 또는 싯탕 작전(일본어: シッタン作戦)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일어난 버마 전역에서 있었던 일련의 연계된 일본의 군사 작전들이었다. 페구 산맥으로 쫓겨난 일본군 생존자들은 영국군으로부터 후퇴하는 다른 일본군과 합류하기 위해 동쪽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일본 28군은 처음에는 33군, 나중에는 15군의 지원을 받아 탈주를 목표로 삼았다. 예비적으로, 일본 제33군은 연합군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시탕강 어귀 근처의 시탕강 굽이에 있는 연합군의 거점을 공격했다. 영국군은 탈출 시도에 대해 경고를 받았고, 이 탈출 시도는 일본인들이 많은 손실을 입음으로써 비극적으로 끝났으며, 일부 일본군 편제는 궤멸되었다.

일본군 사상자는 약 14,000명으로 절반 이상이 사망했으며, 영국군은 95명이 사망하고 322명이 부상을 입었다.[4] 일본군의 탈출 시도와 이어진 영국군과 일본군의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서구 연합군이 치른 마지막 육상 전투였다.[5][6]

배경[편집]

각주[편집]

  1. Shaw p 185
  2. Allen pp 524–525
  3. 《China-Burma-India theater, Volume 3》. University of Minnesota: Historical Division, Dept. of the Army, 1959. 329쪽. 
  4. Slim pp. 600–04
  5. Tucker p 60
  6. Saunders, Hilary St. George (1954). 《Royal Air Force 1939–1945》 III. London: HMSO. 362–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