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니 쓰네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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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니 쓰네스케
무사 정보
시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중기
출생 간기(寛喜) 원년(1229년)※
사망 조오(正応) 5년 8월 2일(양력 1292년 9월 14일)※
개명 쓰네스케(経資)→정혜(浄恵, 법명)[1]
별명 무토 쓰네스케(武藤経資)
막부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지쿠젠(筑前) ・ 지쿠고(筑後) ・ 부젠(豊前) ・ 히젠(肥前) ・ 히고(肥後) ・ 쓰시마슈고(対馬守護)
주군 고레야스 친왕(惟康親王)
씨족 쇼니씨(少弐氏)
부모 아버지 : 쇼니 스케요시(少弐資能)[1]
형제자매 쓰네스케(経資), 가게스케(景資)[2], 모리스케(盛資)[1][2], 무네스케(宗資)(실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3]
자녀 스케토키(資時), 모리쓰네(盛経)[1], 도키쓰네(時経), 모리우지(盛氏), 사다스케(貞資)

쇼니 쓰네스케(일본어: 少弐 経資 しょうに つねすけ[*])는 일본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중기의 무장(武将) ・ 고케닌(御家人)이다. 쇼니 2대 당주 쇼니 스케요시(少弐資能)의 아들로 쇼니 씨 집안의 3대 당주이다.

생애[편집]

쓰네스케의 이름 「쓰네」(経)는 가마쿠라 막부 4대 싯켄(執権) 호조 쓰네토키(北条経時)의 이름자 한 자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쓰네스케에게 같은 글자를 받은 4대 쇼군 후지와라노 요리쓰네(藤原頼経)가 출가한 간겐(寛元) 3년(1245년)부터 쓰네토키가 사망하는 이듬해(1246년) 사이에 쓰네스케는 원복을 마쳤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2] 쓰네스케의 생몰년에 대해서는 1229년 ~ 1292년설, 1226년 ~ 1289년설이 있는데[4] 원복은 10대에 이루어지는 것이 통례이므로 전자가 맞다고 여겨진다.[2]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부터 함께 기타큐슈(北九州)의 통치를 맡았고, 몽골 침공 때에는 이국경고(異国警固) 체제를 굳건히 하며 몽골의 사자에 대한 내응이나 규슈 고케닌들을 지휘, 석축지(원구방루) 축조 공사 통괄, 몽골군과의 합전에서의 훈공에 대한 배분 및 그 조사 등을 행하였다. 사료상으로 쓰네스케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비교적 늦은 40세 때인 분에이(文永) 6년(1269년) 9월자 문서이다.[5]

분에이 11년(1274년)에 있었던 제1차 일본 원정(일본명:분에이의 역文永の役)에서 쓰네스케의 동생 가게스케(景資)가 작금의 대장(日の大将)으로써 일본군을 지휘하였으나, 이때의 쓰네스케의 동향에 관한 사료가 없어 상세한 것은 알 수 없다. 45세 되던 그 해 8월까지 쓰네스케는 다자이노쇼니(大宰少弐)로 임관하였다.[6] 이듬해인 분에이 12년(1275년) 아버지로부터 가독과 소령(所領)을 넘겨받았다. 고안(弘安) 4년(1281년) 제2차 일본 원정(일본명:고안의 역弘安の役)에서는 이키섬(壱岐島)에서 벌어진 몽골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가면서 몽골군을 상대로 분전해 승리하고 이키섬에서 몽골군을 쫓아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아들 스케토키(資時)를 잃었다. 이후에도 오토모 요리야스(大友頼泰)와 함께 진제이부교(鎮西奉行)의 한 사람으로써 규슈의 군정을 맡았다.

고안 7년(1284년) 8대 싯켄 호조 도키무네(北条時宗)가 사망한 것을 계기로 출가해 정혜(浄恵)라는 법명을 사용하였다. 이듬해 벌어진 시모쓰키 소동(霜月騒動)에서는 나이칸레이 다이라노 요리쓰나(平頼綱)를 지지하여 고케닌 아다치 야스모리(安達泰盛)를 지지하던 동생 가게스케와 야스모리의 아들 아다치 모리무네(安達盛宗)를 이와토 성(岩門城)에서 쳤다(이와토 합전). 이 전투의 결과로 호조 도쿠소케(北条得宗家)의 진제이 지배는 강화되었고, 거꾸로 기존에 규슈 지역을 지배해오던 쇼니 씨의 지배는 꺾여서 지쿠고(筑後) ・ 부젠(豊前) ・ 히젠(肥前) ・ 히고(肥後) 4개 구니의 슈고(守護)직을 잃었다.

고안 9년(1286년) 진제이 담의소(鎮西談議所)의 부교로 오토모 요리야스、우쓰노미야 미치후사(宇都宮通房)、시부야 시게사토(渋谷重郷)와 함께 임명되었다.

조오(正応) 5년(1292년)에 사망하였다. 장남 쓰네토키가 앞서 전사하였기에 쇼니 집안의 가독은 모리쓰네(盛経)가 이었으며, 모리쓰네의 동생 도키쓰네(時経), 모리우지(盛氏)는 각기 시가 씨(志賀氏)、히라이 씨(平井氏)로 분가하였다.

각주[편집]

  1. 『尊卑分脉』第2篇・P.391。
  2. 服部、2014年、P.416。
  3. (元)의 왕휘(王惲)가 쓴 『범해소록』(汎海小録)에 일본측 장군으로 「太宰藤原少卿弟宗資」 즉 다자이노쇼니 쓰네스케(大宰少弐経資)의 동생인 무네스케를 포로로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해당 사이트를 참조) 하지만 일본측 사료나 쇼니 씨의 계도에는 해당 인물이 나오지 않으며, 실재성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川越泰博「汎海小録の弘安の役記事について」、『軍事史学』第11巻第1号、錦正社、1975年6月、 26-34頁。服部、2014年、P.414-416에서.
  4. (일본어)少弐経資』 - Kotobank 사이트 참조. 어느 쪽이든 쓰네토키의 향년이 64세였다는 점은 일치하고 있으며, 사망한 해에서 역산해 보면 생년이 판명된다. 服部、2014年、P.416에는 『지쿠고국사』(筑後国史) 지쿠쓰 계도(筑紫系図) 등에 조오(正応) 2년(1289년) 64세로 졸하였다고 되어 있는 것을 들어 1229년생이라고 보기도 하나, 이는 계산이 맞지 않는다. 다만 추정할 수 있는 당시 일본인들의 원복의 연차에 따르면 핫토리의 주장대로 1229년생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5. 服部、2014년、P.416. 전거는 『武雄神社文書』(『鎌倉遺文』 제14권 ・ 10503호 문서).
  6. 服部、2014년, P.416. 전거는 『宗像大社文書』(『鎌倉遺文』제15권 ・ 11674호 문서)

참고 문헌[편집]

  • (일본어) 安田元久 편 『鎌倉・室町人名事典 コンパクト版』(新人物往来社、1990年)
      P.607 ~ 608「武藤経資」 항목(집필:田村憲美)
  • (일본어) 服部英雄『蒙古襲来』(山川出版社、2014年)
  • (일본어) 黒板勝美・国史大系編修会 編『新訂増補国史大系 ・ 尊卑分脉 第2篇』(吉川弘文館)
전임
쇼니 스케요시
제3대 쇼니씨 당주
후임
쇼니 모리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