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언신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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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언신초상
(宋言愼肖像)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
종목보물 제941-2호
(2004년 5월 7일 지정)
수량1폭
시대조선시대
소유공유
주소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 6,
경기도박물관 (상갈동)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호봉송언신영정
(壺峰宋言愼影幀)
대한민국 경기도유형문화재(해지)
종목유형문화재 제173호
(2000년 3월 24일 지정)
(2004년 5월 7일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송언신 초상(宋言愼 肖像)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의 초상화이다. 2004년 5월 7일 대한민국보물 제941-2호로 지정되었다.[1]

개요[편집]

<송언신초상>은 오사모에 단령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이다. 가슴에는 모란과 운안(雲雁) 문양을 한 흉배가 부착되어 있으며, 삽금대를 두르고 있어 1603∼14년에 정이품의 대사헌과 이조판서를 지낸 송언신의 당시 품계와 정확히 일치한다. 안면은 좌안 7분면이며 몸체는 8분면 정도이다. 공수자세를 취한 단령 사이로 흰 창의의 소매가 보이며, 의자의 손잡이는 인물의 양 편으로 뻗어 있는데, 이러한 표현형식은 이중로영정 등 정사(靖社) 공신상 보다는 앞선 형식이다. 바닥에는 채전이 깔려 있고 족좌대(足座臺) 위에는 팔자형(八字形)으로 벌린 흑피혜(黑皮鞋)가 보인다.

사모의 채색에 있어 앞쪽은 흑색으로 일관하여 시채되어 있지만 뒤쪽 솟은 부분은 진회색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이런 기법은 시대적으로 보다 뒤에 나오므로 복원 이전에 가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면은 약간 토황색(土黃色) 기운이 있으며, 눈썹의 털을 확연히 그려내고자 하였다. 안모의 외곽선을 짙은 토황색으로 윤곽 지웠으며, 눈동자는 동공은 검은 색, 그 주변은 흑회색으로 칠하였다. 얼굴에는 음영법이 거의 들어가 있지 않으며, 단지 법령과 협, 그리고 귀의 이문(耳紋) 부위에만 선으로 처리한 주변에 약간 음영을 삽입하였다. 수염 처리는 흑색 선 위에 백색 선을 올을 따라 그렸는데, 약간 곱슬거리게 표현하였다. 옷은 창의는 흰색이지만 박락부분이 있으며, 또한 흑단령과의 연접부위가 깨끗이 처리되지 못했는데, 이것은 원본을 충실히 복원하였을 것이므로 원본의 상태가 이미 그러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령의 외곽선은 부드럽게 처리한 데 반하여 공수자세 부위의 주름이나 윤곽은 각지게 처리되어 있고, 옷 주름은 몇 개의 선만을 뽑아 매우 간단히 균일한 선으로 처리하였다. 흑단령의 문양은 많이 벗겨져 있으며, 채전의 문양은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 단령의 트임 사이로 보이는 고와 단령의 안감은 뭉그러져 있다. 다소 올이 거친 비단을 사용하여 올이 완연히 드러나며, 화폭의 외곽 쪽으로 박락이 있다.

정확한 초상화 제작시기와 화제시를 쓴 시점은 확실히 단정 짓기 어려우나, 표제가 최소한 선조가 승하한 뒤인 ‘선종(宣宗)’이라는 묘호가 정해진 광해군 즉위년(1608) 이후에 쓰여진 것이며 또한 왼쪽 제시 중 ‘신해(辛亥)년 봄’이라 하였는데 이 시기는 송언신이 죽기 1년 전인 1611년 봄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광거(廣居)’ 역시 만년에 송언신이 은거했던 광주(廣州) 방암(放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초의 공신상(功臣像)으로 옷주름 표현, 채연(彩筵)을 깔고 좌안7분면(左顔七分面)의 자세로 앉아 있는 형식 등은 이 시기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지정 사유[편집]

송언신 영정은 오사모(烏紗帽)에 단령(團領)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全身坐像)으로 가슴에는 모란과 운안(雲雁) 문양을 한 흉배(胸背)가 부착되어 있으며, 삽금대(鈒金帶)를 두르고 있어 1603∼1614년에 정이품(正二品)의 대사헌(大司憲)과 이조판서를 지낸 송언신의 당시 품계(品階)와 정확히 일치한다. 17세기 초의 공신상(功臣像)으로 이 시기의 전형적인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1]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문화재청고시제2004-25호,《국가지정문화재(보물)지정》,관보 제15687호, 2004-05-07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