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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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기는 사람의 음성언어를 약속된 부호를 사용하여 발언에 따라 기록한 후 이를 다시 문자언어화하는 과정이다.

정의[편집]

다른 사람의 말이나 자기의 의사표시를 어떤 특정한 부호문자인 속기문자로 정확하게 빨리 필기하여 이것을 일반문자로 번문하는 활동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일반문자(한글 알파벳 등)로는 사람의 말하는 것을 모두 다 기록할 수 없다. 음성언어를 따라잡기에는 문자를 구성하는 획선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에 음성언어를 빠짐없이 기록할 수 있는 부호문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의회정치의 본산인 영국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사람은 국왕과 국회의장 그리고 재판관과 속기사다' 라는 속언이 있다. 속기문자는 어떠한 음도 1획으로 쓸 수 있게끔 일음일필(一音一筆)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모든 기본문자를 하나의 직선과 곡선인 두 개의 선으로 구성시켜, 그 길이와 각도로 구별하여 써서 읽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각 기본 약기법 외에 동사·형용사의 활용 및 약기법의 응용도 겸한다. 보통의 문자보다 4배∼6배 빨리 쓸 수 있으며, 사람의 말속도와 일치하거나 능가할 수 있도록 고안한 특수문자이다.

종류[편집]

속기는 그 방식에 따라 수필속기(手筆速記)와 기계속기(機械速記 : 타자속기, 녹음속기)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러한 속기방식에 의해 속기하는 기술을 속기술, 속기술에 의해 속기부호화 해 놓은 상태를 속기록, 속기부호를 문자언어화하는 것을 번문(飜文) 또는 반문(反文), 속기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속기사, 속기사를 양성하는 것을 속기교육, 속기와 관련된 이상의 모든 부문을 그 발전과정을 살피고 현재의 속기이론을 언어현실에 비추어 비교분석하고 속기문자를 개량해 나감으로써 보다 나은 미래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연구하는 것을 넓은 의미에서 속기학이라 한다.[1]

역사[편집]

그레그식과 그 외의 속기법으로 쓰여진 영어 주기도문

속기술은 기원전 10세기경 페르시아, 이집트, 히브루, 그리스 등의 고대국가에서 이미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러한 논증은 희박한 실정이고, 어느 정도의 체계를 갖춘 속기법이 창안된 때는 로마의 웅변술이 번성했던 B.C 1세기 경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B.C 63년 당시 정치가이자 유명한 웅변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Marcus Tullius Cicero)가 원죄로 사형언도를 받았다가 구사일생으로 죄를 면하여 각 지방을 유세하고 다닐 때 그의 제자였던 타이로(Tiro)가 로마자의 머리글자와 끝글자를 적당히 약기하는 방법으로 시세로의 연설을 받아 적어 공표하였는데, 타이로의 이 약기법이 속기법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속기법으로는 영국에서는 [피트맨]식과 [테일러]식, [거니]식이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1888년에 발표된 [그레그]식이, 프랑스에서는 1878년 [쁘레보]식을 개량한 [쁘레보 듀로네]식과 1862년에 창안된 [듀플로]식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1796년 세이 카이루가 고안하여 1834년 가벨스버거에 의해 완성된 [가벨스버거]식이 널리 사용·보급되고 있다. 동양에 속기가 보급된 것은 1882년 다쿠사리가 [그라함]식을 응용하여 [다쿠사리]식을 고안하여 사용한 것을 기점으로 한다. 영어의 속기는 오른쪽 그림과 같다.

한국어 속기[편집]

한글 속기 - 류승화의 예

한국어 속기의 기원은 외국속기에 비해 매우 뒤떨어져 있다. 그 이유는 세종이 우리 민족 문화의 독립과 조선 백성의 무식을 없애서 생활의 자유를 위하여 위대한 한글을 창제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식자들이 한자우월사상에 사로잡혀 한글을 등한시하여 한글의 다각적인 연구나 속기에 대한 인식은 제쳐두고서라도 무엇보다도 고유문자인 한글을 수백 년 동안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열심히 쓰지 않았던 영향이 가장 컸으리라 본다.
한국어 속기를 발달사적으로 구분할 때 1945년 광복을 기점으로 8.15 이전의 속기를 아마추어(비전문)속기, 그 이후를 프로(전문)속기로 나누고, 속기의 완성도,전문성,창의성,독창성에 따라 창안속기와 계열속기로 크게 구분된다. 오늘날과 같은 필체를 가진 한국어 속기는 기록에 의하면 1909년 박여일이 하와이 한인거류민이 간행하는 한국어 신문 신한일보에 조선속기법의 초보이론을 발표한 것이 시초이다. 국내에서는 1920년 5월 방익환이 매일신보에 '조선문의 속기술'을 처음 발표하였고, 이후 중국 상해에서 1922년 김두봉이 깁더조선말본의 부록에 '날젹', 1927년 김환터가 신조선 창간호에 '우리말속기술'을, 같은 해 엄정우가 동광에 '조선속기술', 1930년 박 송의 '조선속기식', 1934년 김용호가 동래고보교우회지에 '조선어속기법'을, 1935년 강준원이 동아일보에 '조선어속기법신안'으로 각각 연구발표했으나 속기법을 완성하지 못하고 아마추어속기에 그치고 말았다. 이러한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속기여건과 시대적 상황속에서도 국가적이나 사회적으로 인정된 공식속기록을 가장 먼저 작성했던 것은 1919년 중국 상해에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법기관인 임시의정원(국회)에서 의회속기록을 작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광복 후 1946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과 1948년 제헌국회 개원으로 한글체계의 속기라는 기록적 과업과 우리말을 순우리식으로 창안된 진정한 의미의 독립속기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한글식속기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해방 후 최초의 프로속기는 일본어속기사 출신인 일파(逸波) 장기태(張基泰)가 1946년 6월 이전 미완성으로 발표된 다선자미문자를 기본으로 한글의 자모와 소리변화에 따르는 복잡한 현상을 변자, 실용약자, 음절약자로 구성하는 실용적인 '일파식 우리말속기'를 부분 출판함과 더불어 동년 9월 일파식속기사양성소를 설립하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1948년 다선자두문자를 근원으로 해방속기를 저술한 후 동방속기학관을 설립해 후진양성에 노력한 일본어속기사 출신인 이동근(李東根)의 '동방식속기학', 1989년 9월 일음일필의 동선속기문자를 세계 최초로 창안하고 국내에 속기를 널리 전파한 하림(下林) 류승화(柳承和)의 '한글속기학' 등이 대표적인 창안속기이다. 그 외 다양한 방향을 제시하는 속기법식들이 있으나 창안과 단순한 속기 형태를 지니는 저술의 구별은 연구해야 될 사항으로, 대표적인 계열속기로는 일파계열의 고려법식, 의회법식과 조선계열의 남천식 등이 있다. [2]

컴퓨터 속기[편집]

컴퓨터의 발달에 따라 1970년대부터 컴퓨터속기가 연구되어 제대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이며 그 뒤로 컴퓨터 속기 능력자를 배출하기 시작하였다.

1994년초에 '워드픽쳐(CAS)', '감퓨타', 1996년에 '모아치기'를 내놓으면서 본격화되었다. '워드픽쳐'와 '감퓨타'는 애초부터 키보드의 자판배열이 일반키보드와 다른 독자적 속기용 기계를 지향한 반면 모아치기는 일반 자판배열을 그대로 쓰고 있다.

컴퓨터 속기는 특별한 속기 부호가 아니라 바로 글자로 나타나는 것과 빠른 속도가 장점이다. 컴퓨터 속기는 특정 표준이 없다.

주석[편집]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개념·용어, 문자·언어, http://100.nate.com/
  2. 류승화 한글속기학연구소, 간추린 한국어 속기의 역사

바깥 고리[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