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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 저택(궁전) (스페인어: Palau Güell)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천재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구엘 백작을 위해 지은 건축물이다.

구엘저택의 전경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이자 바르셀로나가 낳은 가장 위대한 인물 안토니오 가우디 여러 장인과 수공업자들의 도움을 받아 친구인 카탈루냐의 섬유 사업가 에우제비 구엘 백작을 위해 지은 저택이다. 이 저택은 구엘 가문이 대대로 살아온, 그다지 세련되지는 않은 뒷골목에 있으며, 안토니오 가우디의 새로운 사상과 형태에의 탐구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첫 번째 대규모 작품이다.

구엘 저택은 구엘 백작이 안토니오 가우디에게 그가 확고한 입지를 다지도록 하게 해주기 위해 의뢰한 건축물이다. 안토니오 가우디는 카탈루냐 애국주의의 정점에서 이 저택을 설계했으며, 이후에도 이러한 기조를 이어가 스페인에서 가장 저명한 교회 건출물인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탄생하게 된다.


에우제비 구엘과 안토니오 가우디 및 건설배경[편집]

에우제비 구엘은 섬유산업을 비롯하여 다양한 사업을 벌여 부를 획득한 인물로 그가 지향했던 삶은 부르주아가 아닌 귀족의 삶이었다. 그래서 그는 귀족의 품위를 얻고 싶어했고, 이에 가우디의 예술적인 건축물은 그가 원했던 귀족의 품위를 표현하는 데에 적합했다.
이를 통해 에우제비 구엘은 여러차례 가우디에게 건축물을 의뢰했다. 구엘 저택은 구엘 별장에 만족한 에우세비 구엘이 가우디에게 두 번째 의뢰한 것으로 당시 젊은 건축가였던 가우디에게 상당히 의미 깊은 작품이다. 그가 맘껏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에우세비 구엘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거주지인 저택이자 가문의 상진인 건축물을 가우디에게 의뢰했다는 부분에서 알 수 있다.[1]
구엘저택의 출입문

구조[편집]

<외부>
외부에서 보면 두 개의 거대한 우화와도 같은 아치가 출입문 구실을 하며, 아래쪽 파사드를 지배하고 있다.
대문은 정교한 주철로 만들어졌으며 주인의 이름 머리글자, 그리고 그 사이에는 카탈루냐 문장이 새겨져 있다.
지붕 위에 올라가면 깨진 도기 파편으로 장식한 20개의 감각적인 형상—거의 고딕 에 가까운—의 굴뚝과 환기 갱을 볼 수 있다.이러한 구조는 카사 밀라의 옥상에서도 볼 수 있는데, 카사 밀라보다 21년 전에 지은 구엘 저택에서도 맛볼 수 있다. 총 18개로 구성된 굴뚝과 환기탑에는 가우디의 기법이라 불리는 트렌카디스를 활용해 다채로운 색상으로 구성했으며, 이로 인해 동화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옥상은 구엘 저택 내외부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도 흥미롭다.
<내부>
출입문을 통과하여 웅장한 수직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이 공간을 덮고 있는 것은 별 모양 창을 낸 커다랗고 아름다운 우화적인 이다. 
이 주위로 가우디는 다른 호화로운 메인 공간—살롱, 거실, 대리석 기둥이 있는 통로, 귀중한 목판화로 장식한 천장, 철 공예, 스테인드글라스 창, 회화, 스타일리시한 가구 등—을 배치했다.
구엘 저택의 출입구 중 마차가 들어오는 문을 통과하면 나선형의 비탈길 또한 만날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도착하게 되는 것이 지하실인데, 벽돌을 쌓아 만들어진 허리가 두터운 기둥, 그리고 기둥이 만나 아치를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2]


기타특징 및 정보[편집]

구엘저택은 198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또한 현재는 바르셀로나 시의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바르셀로나의 주요 여행지중 하나이기도 하다.
관광지로써 휴관일은 일요일,월요일,국경일이며 지하철 3호선 liceu 역에서 도보로 5분정도 거리에 있다.

갤러리[편집]

각주[편집]

  1. 이승미 (2015). 《가우디와 떠나는 바르셀로나 여행》. 
  2. 마크어빙 외 공저 (2009). 《죽기전에 꼭 봐야 할 건축 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