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의 대한민국 국군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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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의 대한민국 국군 포로베트남 전쟁의 기간 동안 전투 중 월맹군베트콩에 생포되거나 항복한 한국군 포로를 말한다.

귀환 문제[편집]

베트남 전쟁의 기간 동안 베트남 인민군에 의해 포로가 된 대한민국 국군을 주월 국군포로라 한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1973년 3월 27일의 발표에서 1965년 4월초부터 철군이 완료된 1973년 3월 15일까지의 8년 동안 연병력 31만 5천여 명 중 2명의 장교를 포함한 7명이 실종되었다고 공식 발표하였는데[1]이들은 모두 비전투 중 실종되었고, 1973년 3월 25일 귀환한 유종철 일병만이 전투 중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다고 덧붙였다.(유종철 일병은 실종자 7명 명단에 포함 안 됨)[2]

1992년 2월, 베트남 인민군에 포로가 되었다가 1969년 귀환한 박정환 육군 소위의 증언과 미국 베트남 전쟁 참전 전우회에 의하면 총 6명의 국군 포로가 1987년까지 생존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이들은 모두 1973년 국방부가 발표한 실종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3]

이 6명 중에 3명은 박우식 대위, 박성률 병장, 김인수 상병이고 나머지 3명은 신원 미상이었다. 1992년 5월 후속 기사로 한 명이 더 살아있는데 신원은 북한에 억류 중인 안학수 하사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4]

1993년 서울대 전경수 교수가 2개월 동안 하노이 현지 답사에서 발견한 베트남 정부의 전투상보와 포로 사진을 증거자료로 제시, 국군 포로의 숫자가 상당수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5]

1994년 5월, 국내에서 제기된 의문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의 확인 요청에 대해 베트남 정부는 포로나 실종자에 관해 이미 밝혀진 것 이상은 없다는 즉 베트남 내에 한국군 포로는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는 보도가 있었다.[6]

한편 미국 중앙정보국(CIA) 문서에는 1966년에 포로가 된 10여명의 한국군 포로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여기에는 한국군 병장 키 155, 한국군 군의관 키 170’이라는 신체 묘사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미국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적어도 18명의 포로가 남베트남 전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MBC이제는 말할 수 있다 베트남전의 포로, 실종자들”편(2000년 7월 30일 방영)에서 다뤄진 또 다른 미국 중앙정보국(CIA) 문서에는 한국군 포로 23명이 기재되어 있었으며, 다낭(5명), 푸깟(3명), 닌호아(3명), 호이안(이하 1명), 쭐라이, 빈케, 송까우, 뚜이호아 등의 전투에서 포로가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귀환자[편집]

※ 계급은 포로가 되었던 당시 계급

현황[편집]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가 된 후 북한으로 강제납북 된 소수의 포로들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각주[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