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생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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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런스 마크 "래리" 생어

직업 위키아 공동 설립자
위키미디어 재단의 공동 설립자

로런스 마크 "래리" 생어(Lawrence Mark "Larry" Sanger, 1968년 7월 16일 ~ )는 2001년 1월 15일에 시작된 위키백과의 공동 창립자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1] 그는 누피디어의 책임 편집자였으며, 누피디어를 계승한 위키백과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 조직가였다. 그는 2006년 9월 15일 위키백과의 파생판인 시티즌디움을 제안하여 2007년 3월 25일에 창립하였다.

리더였을 당시 스타일[편집]

생어는 위키백과의 건전한 기여자들을 몇몇 악플러들과의 싸움 때문에 잃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비정상적인 사용자들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간섭하려고 했다. 이는 지미 웨일스의 방식과 달랐다. 지미 웨일스는 상대적으로 간섭을 하지 않고, 위키백과 공동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아주 심각한 문제에만 관여했다.

컹크테이터 사건[편집]

2001년 10월 '컹크테이터'라는 사용자가 생어와 편집 분쟁을 일으켰다. 그는 생어의 위키백과에 대한 권한을 문제 삼았다. 싸움이 계속되자 결국 생어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내가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로부터 권한을 꽤 광범위하게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최근까지 나는 위키백과 사용자들로부터 그런 권한을 받았습니다. 나는 내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 이유를 대라고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존중을 받고 도움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커뮤니티에서의 이 자리가 나를 리더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내 일이니까요.

컹크테이터는 이 글을 보고 계속해서 생어를 독재자 같다며 비꼬는 글을 남겼다.

위키백과를 떠나다[편집]

2001년 12월, 생어의 결혼 몇 주 뒤, 생어는 해고를 당했다. 보미스[2]가 어려워지면서 지미 웨일스가 생어의 고용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생어는 2002년 3월 완전히 그만두기 전까지 위키백과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생어는 위키백과에 ' '악질적인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들, 악플러들,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없었다면 여전히 위키백과에서 자원봉사자로 기여했을 것'이라고 했다. 생어는 위키백과가 잘 되길 바랐지만, 이 프로젝트의 미래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 제니퍼 졸린 앤더슨. 《위키피디아》, 초판, 과학동아북스. ISBN 978-89-6286-088-7 76-79p.

주석[편집]

  1. 이광일 논설위원, 〈위키와 시티즌디움〉, 《한국일보》, 2006년 11월 2일.
  2. 지미 웨일스와 그의 동업자들이 운영했던 검색 사이트로, 지미 웨일스는 이 웹사이트에서 얻은 광고 수익으로 누피디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