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웨인 웨이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Dwyane Wade2.jpg

드웨인 웨이드(영어: Dwyane Tyrone Wade, 1982년 1월 17일 ~ )는 미국의 농구선수이자, 미국 프로 농구 마이애미 히트 선수이다.

NBA 선수로서의 드웨인 웨이드[편집]

2003년 드래프트를 통해서 NBA에 입성하여 마이애미 히트의 5번 픽을 받게 된다. 당시 뽑힌 가드로는 가장 높은 순위로, 1번에 데뷔하면서 부터 King이라는 별명을 얻은 르브론 제임스. 2번은 백인센터 다르코 밀리시치. 3번은 시라큐스를 우승으로 이끈 카멜로 앤서니. 4번은 크리스 보쉬가 뽑혔다.

웨이드는 듀얼-가드로서 처음에는 포인트가드로 뛰었다. 인상적인 루키 시즌을 보여주며 관심을 받았고, 특히 플레이오프에서 더욱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년차에 마이애미는 젊은 코어들(라마오덤, 캐런 버틀러,브라이언 그랜트)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샤킬 오닐을 영입한다. 드웨인 웨이드는 팀내의 최대의 득점원이 되어 팀을 동부결승까지 이끈다.

2007년 3년차의 물오른 드웨인 웨이드는, 시즌 중 샤킬오닐의 부상으로 불안한 히트를 이끌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다시한번 동부의 패권에 도전하여 동부 우승을 이뤄내며, 서부토너먼트를 헤치고 올라온 댈러스 매버릭스를 맞아 분전하나 오닐의 부진등으로 인해 2패를 먼저 맞이한다. 하지만 3차전 부터 프리롤을 받은 드웨인웨이드가 분전, 역대 최고의 파이널 퍼포먼스[1]라고 불리는 활약으로 nba사상 최초의 2-0상황에서의 4연승을 이뤄내고 파이널 엠브이피를 얻는다.

비교적 관심을 더 받던 제임스나 카멜로보다 먼저 우승을 이뤄내면서 바로 전국구 스타가 된 웨이드지만, 이듬해 샤킬오닐의 부상, 핵심 벤치 멤버던 포지의 이적, 게리 페이튼의 은퇴등 많은 문제들이 히트의 성적을 곤두박질 치게 만든다. 이어 이후에 오닐이 이적한 뒤, 히트는 기나긴 암흑기에 빠지며, 심지어 드웨인 웨이드마저 부상에 허덕인다.

드웨인 웨이드가 빠진 히트는 최악의 성적을 내며 암흑기를 보낸다. 08-09 시즌을 앞두고 벌어진 올림픽에 웨이드가 복귀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러나 연습에 모습을 드러낸 웨이드는 몸을 그 전에 비해 과하게 불어 있었다. 팬들은 플래시라고 불리던 그의 날렵한 플레이를 볼 수 있을지 우려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식스맨으로 출전한 웨이드는 출전시간당 최대효율(거의 1분당 1점)을 보여주며 동기인 카멜로 앤서니와 함께 올림픽 득점 1위를 기록하고, 미국은 올림픽에서 우승한다.

08-09시즌에 복귀한 웨이드는 게임당 30.2득점(득점왕) 5리바운드 7.5어시스트에 2.2스틸 1.3블락을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팀의 모든 것에 기여한다. 웨이드 외에는 스타가 없는 암울한 상황에서 기대치 않았던 히트는 동부 4위로 시즌을 마친 히트는 애틀란타 호크스와 경기를 가지지만, 7차전까지 가는 혈투끝에 패배하고 만다. 웨이드는 이 시리즈에서 29득점 5.3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09-10시즌, 히트는 전체 2픽으로 운동능력과 슛터치가 좋은 포워드 마이클 비즐리를 픽한다. 하지만, 비즐리의 트위너적 성향과 낮은 수비력은 기대했던 만큼 기여를 하지 못한다. 히트는 전체 5위를 기록하며 이번에는 빅스리가 있는 동부의 강호 보스턴 셀틱스를 플레이오프에서 만나게 된다. 웨이드는 대놓고 더블팀, 트리플팀을 붙이는 리그최고의 수비팀중 하나인 보스턴을 맞아 33.2득점 5.6리바운드 6.8어시스트 어시스트에 56.4퍼센트 야투율로 무시무시한 활약을 펼치지만, 다른 선수들의 부진으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2년 연속으로 낙마하고 만다.

오프시즌, 카멜로 앤서니를 제외한 03드래프티들이 모두 프리에이전트로 풀리게 되는데, 웨이드는 팀에 남겠다고 단언한다. 히트는 부저와 아마레 그리고 크리스 보쉬 중 하나를 영입하여 웨이드와 콤비를 이룰 프런트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는 듯 했다. 크리스 보쉬가 결국 팀에 오도록 했고, 히트 팬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리그 최고의 선수로 2년 연속 MVP의 주인공인 르브론 제임스가 The Decision 이라는 쇼를 그는 마이애미 히트행을 표명한다. 르브론을 사로잡기 위해 프랜차이즈의 모든것을 걸었던 클리블랜드에서는 배신감과 실망감으로 시민들이 르브론의 저지를 모아서 불태우기까지 하고, 결국 프랜차이즈를 옮기는 것을 대대적으로 방송하는 셈이 된 르브론은 숱한 헤이터를 가지게 된다.(이 방송은 ESPN에서 르브론에게 제시한 것으로 수익을 모두 기부하기로 되어 있었다. 르브론은 거취를 결정하기 전에 이 방송을 하기로 이미 결정한 상태였고, 방송에서 르브론은 최대한 점잖은 옷을 입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결정을 통보한다.) 이후 히트가 방문하는 모든 경기장에서 그를 위한 야유가 쏟아졌다.

10- 11시즌 마이애미 히트는 시즌 개막 후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패배하여, 비난의 중심이 되었다. 당초 우려대로 동선이 비슷한 웨이드와 르브론이 각자 공격을 한번씩 하는 형태가 되었던 것. 하지만 NBA최고의 두 선수는 매우 영리하고 이타적이었다. 그들은 서로 공존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고, 특유의 디펜스를 더 강화하여 동부최고의 수비팀중 하나가 된다. 후반기에 승승장구한 히트는, 전체 2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된다. 플레이오프에 올라서 필라델피아를 4-1로 손쉽게 잡아내고 일년전 웨이드와 르브론을 차례로 패퇴시킨 보스턴 역시도 4-1로 물리친다. 동부 결승에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MVP로즈의 시카고도 잡아내며 동부우승을 이뤄내고, 파이널 라이벌인 매버릭스와 또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전까지 훌륭한 활약을 보이던 르브론이 이해할 수 없는 부진에 빠진다. 웨이드가 크게 분전하며 강한 경기에 뛰어난 면모를 증명하지만, 르브론이 거의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균형있게 강한 매버릭스의 작은 가드들의 기동력과 챈들러가 중심인 골밑의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그 와중에 웨이드와 르브론이 감기에 걸린 덕 노비츠키를 조롱한 영상[2]이 비난을 받게된다. 이들은 올스타멤버가 모이고도 우승하지 못했다는 비난까지도 들어야 했다.

다음 시즌인 11-12 시즌 부상으로 다소 결장한 웨이드는 르브론제임스에게 롤을 다소 양보하고 스텟이 하락하지만, 르브론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동부 2위로 정규시즌을 마친 후, 플레이오프에서 동부의 라이벌들을 힘겹게 물리치고, 결승전에서 듀란트와 웨스트브룩의 오클라호마를 상대로 4-2로 승리하여 우승을 차지한다.

참조[편집]

  1. http://espn.go.com/nba/playoffs/2012/story/_/page/FinalsPerformances-1/greatest-finals-performances-no-1
  2. http://www.youtube.com/watch?v=LoOXKha7uL4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