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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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폰
E. I. du Pont de Nemours and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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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분야 농업, 영양, 전자, 통신, 안전과 보호, 생활용품과 건축, 수송
창립 1802년
본사 미국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
핵심 인물 회장 Charles O. Holliday, Jr / Ellen J. Kullman
종업원 60,000명

듀폰 (정식 명칭 - E. I. du Pont de Nemours and Company)은 미국화학회사이다. 1802년 6월 Eleuthère Irénée du Pont에 의해 화약 공장으로서 설립되었다.

본사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존재한다.

1802년에 창업했으며, 자본금은 111억 3600만 달러이다. 안전 및 보건, 환경보호, 윤리준수, 인간존중을 기업 이념으로 삼고 있다.

연혁[편집]

프랑스 혁명을 피해 일가가 미국으로 이주한 엘 테일은, 앙투안 라부아지에로부터 영향을 받은 후, 화약 공장으로서 듀폰 사를 설립했다. 철저한 품질관리와 안전 대책, 그리고 고품질을 무기로 미국 정부의 신뢰를 얻어, 이윽고 20세기에 들어서 다이너마이트나 무연 화약 등을 제조하게 되었다.

제 1, 2차 세계대전에서는 화약이나 폭탄을 공급한 것 외에도, 맨해튼 계획에 참가해 테네시 주오크리지 국립 연구소에서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제조하는 등 미국의 전쟁을 지원했다.

듀폰 가에서는 해군 군인 새뮤얼 프랜시스 듀폰 등을 배출했고 또 듀폰 가는 초창기 자동차 산업에 주목해, 1914년에는 피에르 S. 듀폰1908년에 창업한 GM 사에 출자했고, 후에 그는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의 지휘와 듀폰 사의 지원아래에서, GM 사는 전미 1위의 자동차 회사로 성장했다. 또, GM에 대한 지원과는 별도로, 1919년부터 1931년에는, 자사에서도 자동차를 생산했다. 엔진은 주로 콘티넨탈 사의 것을 사용했다.

그러나 셔맨 반트러스트법에 따라 1912년에는 화약 시장의 독점이, 1950년대에는 GM사 주식의 보유가 문제시 되어 화약 사업의 분할이나 GM주 방출 등을 강요당하고 있다.

1920년대 이후는 화학 분야에 힘을 쏟아, 1928년에는 폴리머의 연구를 위해서 월리스 캐러더스 박사를 고용했고, 그에 의해서 합성고무나일론등이 발명되었다.

또한 1930년대 GM의 알프레드 슬로안을 스카우트해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테플론 등의 합성섬유, 합성수지, 농약, 도료 등도 연구, 개발하여 취급하게 되었다. 2세기에 걸치는 역사에서, 전형적인 미국의 복합 기업체라고 할 수 있다.

듀폰 코리아[편집]

듀폰이 국내 시장에서 제품과 기술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1977년부터이며, 2005년 현재 약 380여명의 직원들이 서울, 울산, 이천등지에서 근무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첨단 생산 설비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와 더불어 주요 산업용 기초소재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서울사무소의 마케팅 본부는 제품과 솔루션에따라 5개의 부서로 나뉘는데 농업&영양 사업부, 전자&통신기술 사업부, 포장재/산업용폴리머 사업부, 코팅&컬러기술 사업부, 안전&보호소재 사업부로 구성되어있다.

울산의 엔지니어링 폴리머 컴파운딩 공장은 자이텔, 델린 등의 엔지니어링 폴리머를 생산한다. 뷰타싸이트 공장에서는 자동차와 건축용 접합안전유리의 소재인 뷰타싸이트 PVB 수지 시트를 생산한다. 그밖에도 울산에는 건축물이나 자동차, 선박 등을 단장해주는 페이트의 안료인 타이퓨어 (이산화티타늄) 기술지원센터가 있다.

이천의 센타리와 스피스 헥커 기술지원센터에서는 각 공업사의 도장 관련 기술자들을 대상으로 각종 도장 실습교육과 품질보증을 위한 교육, 그리고 공업사 경영자를 위한 매니지먼트 과정을 제공한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