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명
| 김홍명 Kim Hong-Myeong 빙그레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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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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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 | |
| 출신지 | |
| 생년월일 | 1962년 6월 16일 (50세) |
| 신장 | 193 cm |
| 체중 | 100 kg |
| 선수 정보 | |
| 투구·타석 | 좌투좌타 |
| 수비 위치 | 투수 |
| 프로 입단 연도 | 1981년(일본), 1988년(한국) |
| 드래프트 순위 | 드래프트 3차 (야쿠르트 스왈로스) |
| 첫 출장 | KBO / 1988년 월 일 구장명 대 상대 팀전 |
|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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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명(金弘明, 1962년 6월 16일 ~ )은 전 한국 프로 야구 빙그레 이글스의 선수이다.
1988년 입단하여 1992년 시즌까지 활동하였다. 재일 한국인으로 한국 프로 야구 리그에서 활동하였으나, 일본의 인기 주간지에서는 원래 일본인이었다는 이야기도 제기되었다. 일본명은 '미야기 히로아키'(宮城弘明)이다.[1]
목차 |
일본 프로야구 시절 [편집]
'점보 미야기' 1979년 갑자원에 진출해서 4강까지 진출했던 요코하마상고의 2학년 에이스투수였던 김홍명을 부르던 애칭이었다. (갑자원 4강은 한국에 왔던 투수중에 김일융 다음가는 최고의 성적.) 키 193, 몸무게 100 엄청남 체격의 김홍명은 니혼햄에 입단한 슈퍼신인 다르빗슈 유(195센티)가 나타나기 전까지 갑자원 역사상 최장신투수 기록을 가지고 있던 선수였다. 대형투수가 되리라는 기대속에 81년도 야쿠르트에 드래프트 3번으로 입단했으나 체격에 걸맞지않는 어정쩡한 스피드로 기량의 발전을 보이지 못하고 1군무대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한채 퇴출되었다.
한국 프로야구 시절 [편집]
빙그레에 김영덕감독이 감독으로 부임한 해인 88년에 입단해서 좌완이라는 이점을 살려 선발로 활동했는데, 첫해 8승에 13패를 기록한 이후 통신전적에 승리보다 패배수가 한개 많을 만큼 기복이 있는 스타일이었다. 김홍명은 나이 30일 넘어갈 시점이던 91년이후 급격한 부진을 보이면서 결국 92년시즌후 계약을 종료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정치계 입문 [편집]
이른 나이에 야구계를 떠난 김홍명은 일본으로 돌아간 이후 느닷없이 정계에 입문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운동선수출신들이 많았던 스포츠평화당(스포츠로 평화로운 세상을 구현하자는 이념을 가진 정당으로 유명한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가 창설자다.) 시의원의 보좌관으로 근무하다가 뒤에 여당인 자민당으로 옮기게 된다.
국적 논란 [편집]
2003년에 '슈칸베이스볼'이라는 잡지에 김홍명은 원래 재일교포가 아니었으며, 귀화한 교포들의 진위를 확인할 길이 없는 한국야구계의 규정을 교묘히 이용해서 한국인 행세를 할 수 있었다는 쇼킹한 기사가 게재되어 KBO와 빙그레를 곤혹스럽게 했던 일이 있었다. 호시노감독이나 기요하라 가즈히로와 같이 한국인의 혈통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선수들이 본인의 입으로 말하지 않는 이상 밝혀질 수 없는 것처럼, 순수 일본인이면서 본인이 한국인의 피를 받았다고 하면 정말로 그렇게 믿어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 분명히 제도적인 허점은 있지만 은퇴한지 10년이 넘은 김홍명이 갑자기 한국계가 아니라고 한 것에는 의심이 가지않을 수가 없었다.
출신 학교 [편집]
- 일본 요코하마상고
주석 [편집]
- ↑ '쿵쾅쿵쾅' 프로야구 '빅맨 전성시대', 《연합뉴스》, 2009년 5월 2일 작성.
바깥 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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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이글스 〈1986 ~ 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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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감독 | |
| 역대투수 | |
| 역대포수 | |
| 역대내야수 | |
| 역대외야수 | |
| 역대 팀기록 |
493승 427패 22무 (승률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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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최우수 선수 |
1991년, 1992년 장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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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신인왕 |
1987년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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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골든 글러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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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리즈 준우승 1988년, 1989년, 1991년, 1992년 플레이오프 진출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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