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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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철
무사 정보
출생 1585년
조선 한성
사망 1660년(74–75세)
가가번
씨족 김씨 → 와키타씨

김여철(金如鉄, 1585년~1660년)은 조선 양반 출신의 사무라이로, 일본에 살아가면서 와키타 나오카타(일본어: 脇田 直賢 (わきた なおかた))[1]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활동하였고, 생애 말년에는 여철(如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2]

조선의 한성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조선의 관료인 김시성(金時省)이었다.[2] 1592년, 그의 아버지는 임진왜란 중에 사망했으며, 한성에서 일본군에 포로가 된 후, 그는 우키타 히데이에 부대에 의해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2] 그는 '히젠 나고야성'(지금의 사가현 가라쓰시)으로 끌려간 다음 오카야마성으로 옮겨진 뒤[2] 오카야마에서부터 히데이에의 아내인 고히메에게 키워졌다. 다음해에는 고히메는 가나자와로 가서 오빠 마에다 도시나가를 만났는데, 도시나가의 아내 에이히메는 김여철을 매우 좋아했기에 그를 가나자와에서 키우기로 결정했다.[3]

1605년, 에이히메의 명에 따라 와키타 가문의 양자가 되었으며, 이름을 와키타 나오카타(脇田直賢)로 바꿨다. 그는 이후 오사카 전투에서 공을 세우며 활약했다.[2]

그는 조선의 문관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문학에서도 깊은 조예를 보였으며, 말년에 출가한 이후부터는 다시 여철(如鉄)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2]

각주[편집]

  1. (일본어)脇田直賢』 - Kotobank
  2. 笠井、188頁
  3. “玉泉園の歴史”. 《玉泉園(公式)》. 2017년 5월 20일에 확인함.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