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 종가 문적

권주 종가 문적
(權柱 宗家 文籍)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
종목보물 제1002호
(1989년 5월 23일 지정)
수량일괄 (9종14점)
시대조선시대
소유권종만
위치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퇴계로 1997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
좌표북위 36° 42′ 07″ 동경 128° 48′ 39″ / 북위 36.70194° 동경 128.81083°  / 36.70194; 128.81083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권화산종가문서
(權화산宗家問書)
대한민국 경상북도유형문화재(해지)
종목유형문화재 제225호
(1986년 12월 11일 지정)
(1989년 5월 23일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권주 종가 문적(權柱 宗家 文籍)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기록물이다. 1989년 5월 23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002호로 지정되었다.[1]

개요[편집]

조선 성종 때부터 연산군 때까지 문신 권주(1457∼1505) 선생의 종손가에 소장된 고문서와 전적이다. 총 9종 14점이다.

권주는 1480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 공조정랑 등을 거쳐 승정원 도승지, 충청도관찰사 등의 벼슬을 지냈다. 성종 13년(1482)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을 때 사약을 받들고 갔다는 이유로 벼슬을 빼앗겼으나, 임무에 따랐을 뿐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면하고 귀양을 떠났다. 그러나 1505년 6월 다시 그 문제가 불거져나오자 결국 사약을 받고 죽었다. 성품이 검소하고 단아하였으며, 맡은 직무에 최선을 다하였다.

고문서로는 15∼16세기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문과급제를 알리는 교지, 권주가 충청관찰사였을 때 받은 교서, 관찰사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유서, 자식에게 재산과 노비를 나누어주면서 작성한 분배기록인 분재기로 총 4종 7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적으로는 성균관 생원, 진사들의 시문을 모은 『동방록』, 권주 선생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글들을 모아놓은 『경수첩』, 『선세수찰』등 총 5종 7책이 있다. 크기는 연도와 내용에 따라 다르다.

이 가운데 고문서는 15∼16세기 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경제사연구의 역사적 자료가 되며, 전적류는 당시 사회상황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권주가 직접 쓴 책들은 그 필체가 훌륭하여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문화공보부장관 (1989년 5월 30일). “문화공보부고시제764호(보물지정)”. 관보 제11242호 4쪽. 4쪽. 2016년 10월 16일에 확인함.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