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산 노씨
나라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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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황해북도 곡산군 |
시조 | 노원(盧垣) |
원시조 | 노수(盧穗) |
중시조 | 노조(盧兆) |
집성촌 | 황해도 곡산군 황해도 옹진군 서면 외전산리 경기도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 |
주요 인물 | 노경린 |
인구(2000년) | 1,367명 |
곡산 노씨(谷山盧氏)는 황해북도 곡산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노원(盧垣)는 당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고 신라로 건너온 도시조(都始祖) 노수(盧穗)의 아홉째 아들로서 신라 말 곡산백(谷山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역사[편집]
시조 노원(盧垣)은 당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고 신라로 건너온 도시조(都始祖) 노수(盧穗)의 아홉째 아들로서 곡산백(谷山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원(垣) 이후에 계대를 알지 못하므로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노조(盧兆, 1300년 ~ 1367년)를 1세조(一世祖)로 한다.
인물[편집]
- 노경린(盧慶麟, 1516년~1568년 5월 16일(음력 4월 20일)) : 1539년(중종 3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박사를 거쳐 공조·예조·호조·형조의 낭관(郎官)을 역임하였다. 그 뒤 사헌부지평에 올랐으나 진복창(陳復昌)의 탄핵을 받아 좌천되어 나주목사·성주목사 등을 지냈다.
과거 급제자[편집]
곡산 노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명을 배출하였다.[1]
- 고려 문과
노조(盧朝)
- 문과
노경린(盧慶麟)
- 무과
노극겸(盧克謙) 노극제(盧克悌) 노극준(盧克俊) 노문표(盧文彪) 노세웅(盧世雄) 노의봉(盧儀鳳) 노제신(盧齊愼) 노중빈(盧重彬) 노태기(盧泰錡)
- 진사시
노관하(盧觀河) 노의석(盧義錫)
- 역과
노태일(盧泰鎰)
- 율과
노상욱(盧尙郁) 노학진(盧學鎭)
- 의과
노덕수(盧德水) 노상철(盧尙哲)
인구[편집]
- 1985년 1,704가구 7,453명
- 2000년 443가구, 1,367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