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레티
조지아의 역사 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ს ისტორია |
---|
헤레티(조지아어: ჰერეთი)는 조지아-알바니아 국경지대의 중세 캅카스에 있던 역사적인 속국이다. 그 왕국의 영토는 조지아의 카케티의 남동부 끝 지역과 아제르바이잔의 북서부 구역의 한 부분과 거의 일치한다.
역사
[편집]그 지역에는 헤르족(에르족 이라고도 함), 수즈족, 칠브족, 르빈족이 가장 먼저 거주했다. 그 부족들은 총체적으로 헤르족(헤레티인)이라고 불리며, 기원전 5세기에 이베리아 왕국의 통치 하에 들었다. 인구 대부분이 북부 아르메니아에서 이주해 왔고 후일에 헤레티인들의 선조가 된 것 같다. 또는 거꾸로 말하면 헤레티와 북 아르메니아(아마도 예라시키 계곡과 예레반을 포함) 에르시라는 지명의 지역은 근본적으로 에르 영토의 일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BCE 6세기에 시작된 북 아르메니아(또는 차라리, 아르메니아 공화국의 북부 지역 뿐만 아니라 현대의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의 작은 지역들 까지도 포함)의 에르족은 대규모로 사라진듯 하며(완전히 사라졌거나 아니면 곧 동질화되어 소수만 남았거나), 에르족의 후손들이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헤르족이며, 그들은 헤레티를 성립했다. 지명에 따르면, 에르족은 현대 바이나크인들(체첸인, 체첸계-조지아인과 인구시인), 현대 바츠비, 역사상의 말크족과 혹시 다른 사람들과 혈족인 나크인들이 된 듯하다.
그리하여, 그 지역은 점진적으로 5세기에 이베리아 왕국의 한 공국의 형태로 합병되었고, 마침내 그 지역 사람들은 조지아인들로 완전히 융합되었다. 조지아 자료들에서 헤레티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때가 그 때였다. 전통의 기록에 따르면, 속국의 이름은 알라자니강에 헤레티의 도시(후일에 코란타로 알려짐)를 설립한 타르가모스의 아들인 전설적인 족장 헤로에스에서 기원되었다고 한다. 아랍 점유자들에 대항한 투쟁에서 공헌에 대한 보상으로, 카르틀리의 통치자(에리스타바리) 아르칠은 740년대~750년대에 헤레티를 바그라티오니 귀족 가문에게 주었다. 마지막 에리스타바리들인 존과 주안셰르가 죽은 후에, 헤레티의 군주들은 그들의 봉토들을 확장했으며, 787년에 섀키를 수도로 독립 공국(삼타브로)을 이뤘다. 그 공국은 893년에 들어 하맘 왕자가 왕좌에 오름이 허락되어 의미심장한 세력과 명성을 얻었다. 헤레티 왕국의 증가하는 세력에 놀란, 이웃 카케티 공국의 통치자 그비리케 1세(891~918년)는 그스스로 압하스의 콘스탄티네 3세와 동맹을 맺었고, 915년에 헤레티의 아다르나세 2세 파트리키오스 왕(897~943년)에 대항하여 군사 작전을 펼쳤다. 그 동맹국들이 나타나 나라를 분할했지만 아다르나세 짧은 기간 동안이었고, 곧 아다르나세 파트리키오스가 잃어버린 지역들을 재정복했다. 그의 아들이며 후계자인 이슈카니크(943~951년)는 그의 모친 디나르, 대 마기스테르 구르겐 4세의 누이, 클라르제티의 왕자(918~941년)와 같이 모두 다함께 나라를 통치했다. 그들의 통치 하에서, 헤레티는 강력한 이웃 나라인 살라르 왕조(이란령 아제르바이잔)에 의해 통치되는 델리암의 공국의 우위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950년에, 이슈카니크는 살라리즈 왕국에서 쓰라린 권력 투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했고, 효과적으로 그의 독립을 복원하여 공물의 진상을 중지하였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에는, 헤레티인들이 그들의 단성설의 믿음을 버리고 조지아의 정통 크리스트교로 개종했다.
그 다음 헤레티의 통치자 존(아오아네 세네케림, 951~959년)은 그의 왕국에 이전 알바니아 왕국의 지역과 동조지아의 산악 지방 차나레티를 더했다. 그가 죽은 후에, 지역 왕조의 실재는 끝난 듯 했고 왕국은 카케티의 시골 주교 크비리케 2세 밑으로 들어갔다. 그 무렵, 그 지역은 모든 조지아의 영토를 단일 군주국으로 가져오기를 염원하던 그의 계승자 다비트(976~1010년)와 조지아의 왕 바그라트 3세와의 경쟁 지역이었다. 그 다음 카케티의 통치자로 이미 왕의 칭호가 있던 크비리케 3세 대제(1010~1037년)는 1020년대에 마침내 헤레티를 그의 "카크와 란의 왕국"으로 흡수했다. 조지아의 왕 건설자 다비트가 1104년에 왕국을 그의 통제 하로 가져왔을 때, 헤레티는 조지아 왕국의 영역안에 속한 사에리스타보(예를 들면, 공작령)가 되었다. 1466년에 통일 조지아 군주국이 마지막으로 분열된 후에, 헤레티는 카케티 왕권 아래로 들어갔다. 그 후 공국의 자국의 이름은 역사상의 기록과 공공의 어법에서 점점 사라져갔다. 헤레티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까지 그 권리가 충분했던 카케티의 공작령 공국의 부분이었다. 그 후의 헤레티는 정치적인 불확실성으로 인해 강제로 아제르바이잔의 변두리로 밀려났다.
통치자들
[편집]- 사힐 이븐 숨바트 (815~840년)
- 아다르나세 1세 (840~865년)
- 하맘 (865~893년)
- 아다르나세 2세 파트리키오스 (897~943년)
- 이슈차니크 (943~951년)
- 잔 세네케림 (951~959년)
같이 보기
[편집]외부 링크
[편집]- ჰერეთის სამეფო[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조지아어)
참고 문헌
[편집]- Papuashvili, T. Problems of Heretian history. Tbilisi, 1970. (조지아어)
- Papuashvili, T. Kingdom of the Rans and Kakhs. Tbilisi, 1982. (조지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