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리히터
칼 리히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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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출생 | 1926년 10월 15일 플라우엔, 독일 |
사망 | 1981년 2월 15일 뮌헨, 독일 | (54세)
성별 | 남성 |
직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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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리히터(Karl Richter, 1926년 10월 15일 ~ 1981년 2월 15일)는 독일의 지휘자이자 오르가니스트, 하프시코디스트이다.
일생
[편집]1926년 10월 15일 독일의 플라우엔에서 목사 크리스티안 요하네스와 클라라 헤드비히 리히터 사이에서 태어났다. 드레스덴에서 성십자십자가 합창단으로 활동하며 처음으로 음악교육을 받았다. 이후 라이프치히로 가서 1949년에 학위를 받았다.[1]
학위를 마친 리히터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27년간 음악감독으로 근무했던 장소인 성 토마스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부임한다.[2] 1952년에는 결혼하여 뮌헨으로 이사가 거기에 있는 성 마르코 교회에서 근무하며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54년에는 뮌헨 바흐합창단을, 이듬해에는 뮌헨에 있는 각 오케스트라의 뛰어난 멤버들로 뮌헨 바흐 관현악단을 결성했다. 또 안스바흐의 바흐 주간(週間)에 출연하고 있던 하인리히 쉬츠 크라이스와는 합창단을 조직했다. 1956년 안스바흐에 출연하여 주목을 모은 리히터 등은 1958년 성 금요일에 마태 수난곡을 연주하여 주목을 받았다. 1969년에 일본에서 공연을 하였다.[3]
1971년에는 심장마비를 겪는데, 비슷한 시기에 시력이 안좋아지기 시작한다. 상태가 심각해져 지휘와 연주를 기억에 의지하게 되는 상황에 다다르자 시력을 잃으리라 생각하고 수술을 받고 호전된다.[4]
주요 녹음으로 마태 수난곡, 골드베르크 변주곡 등을 남겼으며, 1981년 2월 15일, 급성심근경색으로 독일 뮌헨에서 사망했다. 사망 8일 후 취리히의 엔첼뷜 묘지에 묻혔다. 1931년 태어난 그의 아내 글래디는 2019년 사망해 같은 무덤에 안장됐다.
각주
[편집]- ↑ Wörner, Roland (2006). “Karl Richter 1926–1981 / His Life and Work” (PDF). 《Conventus Musicus》. Conventus Musicus.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12월 13일에 확인함.
- ↑ Wörner, Roland (2006). “Karl Richter 1926–1981 / His Life and Work” (PDF). 《Conventus Musicus》. Conventus Musicus.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12월 13일에 확인함.
- ↑ Martin, Johannes. “Karl Richter vor 45 Jahren - Japan (1)”. 2017년 1월 31일에 확인함.
- ↑ Lindemann, Klaus. "The Legacy of Karl Richter", Deutsche Grammophon. 11 April 2006.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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