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체코슬로바키아 기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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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체코슬로바키아 기갑여단
Československá samostatná obrněná brigáda
활동 기간1943년 9월 1일 ~ 1945년
국가체코슬로바키아의 기 체코슬로바키아
소속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
병과기갑
종류여단, 독립부대
규모1개 연대, 5개 대대
명령 체계제21집단군
참전제2차 세계 대전

제1 체코슬로바키아 기갑여단(Československá samostatná obrněná brigáda)은 1943년 9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 제1보병여단을 기갑여단으로 재편하여 창설되었다. 1944년 여름까지 영국에서 계속 훈련을 받았으며, 병력 수는 약 4천명까지 늘어났다. 그 해 여름, 노르망디 상륙 작전노르망디로 이동 배치되어 영국 제21집단군에 배속되었다. 10월 초 여단은 덩케르크로 전진하여 캐나다 제1군에 배속되어 독일군이 점거하고 있는 요새를 포위한 캐나다군을 지원했다.

제1기갑여단은 던커크에서 전쟁의 남은 기간을 강력한 독일군 수비대를 공격하기도 하고 공격도 받아가며 보냈다. 그 기간 동안 체코슬로바키아 기갑여단은 프랑스 국내군(FFI, 프랑스어: Forces Francaises de l'Interieur)의 지원을 받았다. 10월 15일, 여단을 지원하던 FFI 병력은 프랑스 제110보병연대의 2개 대대로 통합되었고, 1945년 1월 24일 연대는 제51보병연대로 바뀌고 4개 대대 규모로 확장되었다. 다양한 영국군 및 캐나다군 부대가 한 번 이상 포위전을 지원했다.

11월, 여단은 캐나다 제1군을 건너뛴 버나드 몽고메리의 제21집단군 직할 부대가 되었다. 1945년 봄, 제1기갑여단은 해방된 프랑스에서 애국자들을 모집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인 장교 및 사병 5900여명으로 증강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독일군에서 강제로 복무하다가 연합군에 포로로 잡힌 자들이었다.

독일군 덩케르크 수비대는 1945년 5월 9일까지 항복하지 않았고, 항복 시에 독일군 15,500명과 3척의 유보트가 체코슬로바키아 여단에 포로가 되었다.

편제[편집]

제1 체코슬로바키아 기갑여단은 다음과 같이 편제되었다.

1944년 9월 1945년 5월
  • 제1 체코슬로바키아 전차대대
  • 제2 체코슬로바키아 전차대대
  • 제1 체코슬로바키아 차량화보병대대(2개 중대)
  • 포병연대 (2개 대대)
  • 대전차대대
  • 공병대대 (2개 중대)
  • 수색대대
  • 제1 체코슬로바키아 전차대대
  • 제2 체코슬로바키아 전차대대
  • 제3 체코슬로바키아 전차대대
  • 제1 체코슬로바키아 차량화보병대대(3개 중대)
  • 포병연대 (3개 대대)
  • 대전차대대

1944년과 1945년을 비교하면, 1945년에 1개 전차대대와 기계화보병 1개 중대, 1개 포병대대가 증강되었다.(수색대대는 1944년 이후, 제3 체코슬로바키아 전차대대로 재편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