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홀 참사
빅토리아홀 참사(Victoria Hall disaster)는 1883년 6월 16일 잉글랜드 선덜랜드 빅토리아홀에서 발생한 참사이다. 이 사건은 3~14세 사이의 183명의 어린이들을 질식으로 인해 사망하게 만든 압사사고이다.
사건[편집]
1883년 6월 16일, 순회 공연자들인 페이 남매(Mr. Fay, Mrs. Fay)는 어린이들을 위한 버라이어티 쇼를 진행했다.[1][2] 이 순회 마술 공연은 진행됐던 마술들 중 한 마술에서 비롯된 연기 때문에 앞쪽 열에 있던 사람들 중 일부가 불만을 표했고 일부 아이들이 아파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공연이 끝났을 때 일정 공연표를 가진 아이들이 밖에 나가면 상을 받을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동시에 공연자들은 무대의 선물들을 극장에 있던 어린이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놓칠까 하여 극장 내 추산 1,100명의 어린이들 중 다수가 복도로 향하는 아래쪽 계단을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3]
계단 아래쪽에서 문이 안쪽으로 열렸고 이렇게 해서 개방된 틈은 한 번에 한 아이만 통과할 수 있을 만큼의 틈이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공연표를 순차대로 검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4] 순서를 관리하기 위해 동반된 성인의 수가 거의 없던 탓에 어린이들은 문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밀려들게 되었다. 앞쪽에 있던 인원들은 갇혀버리면서 뒷쪽의 군중의 무게에 눌려 압사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다.[2]
강당에 있던 성인들은 어린이들이 문에 돌진하고 있던 것을 알았지만 볼트가 어린이들 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문을 완전히 개방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고 이후[편집]
질식으로 인한 압사사고는 3~14세 사이의 어린이들 183명을 사망하게 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재해기금을 전달했다.[5]
영국 전역에서 모인 기부금은 총 £5,000(2021년 기준 가치 £535,758)였으며 어린이의 장례식과 모우브레이 파크의 기념비에 사용되었다. 죽은 아이를 안은 애통하는 어머니의 기념비는 나중에 비숍위어마우스 묘지로 옮겨졌고 점차 황폐해지고 훼손되었다. 2002년, 이 대리석 동상은 £63,000의 비용을 들여 복원되었고 보호덮개를 씌워 모우브레이 파크로 다시 옮겨놓았다.[2][6]
미디어에서의 묘사[편집]
이 참사로 인해 스코틀랜드의 시인 윌리엄 맥고나겔은 "선덜랜드의 재앙"(The Sunderland Calamity)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한 편 쓰게 되었다.[7]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 ↑ “Sunderland's Victoria Hall Stampede”. 《North Country Web》. 8 January 2007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7 January 2007에 확인함.
- ↑ 가 나 다 Sarah Stoner (2008). “Children's deaths that shocked the world”. 《Sunderland Echo》. 2008년 6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6월 13일에 확인함.
- ↑ “Victims of the Victoria Hall Calamity”. 《Genuki》. 2015년 11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1월 27일에 확인함.
- ↑ “The Victoria Hall Disaster 1883”. 《Local Studies Centre Fact Sheet》. 5호 (Sunderland City Council). 2013년 6월 15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10월 18일에 확인함.
- ↑ “Victoria Hall Disaster Toy Rocking Horse”. BBC. 2018년 6월 15일에 확인함.
- ↑ “Toy Tragedy Children Honoured”. 《BBC News》. 2002년 5월 12일. 2007년 1월 27일에 확인함.
- ↑ McGonagall, William. “The Sunderland Calamity”. 《allpoetry.com》. 2021년 12월 3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