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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네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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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왕(155-226) 재위(188-225)


백제서기 우대왕(구대왕)

구지왕(仇知王)은 서기 95년에 태어나 166년, 72세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왕후는 형수였던 개루왕의 왕후 사씨(沙氏)였다.[1]

구지왕의 어머니는 흘씨(屹氏)였다.그 어머니 흘씨(屹氏)는 졸본의 삼대 성씨 중 하나였다.


백제왕기 구지왕


諱伯古(휘백고) 己婁王第七子(기루왕제칠자) 而蓋婁王之異母弟也(이개루왕지이모제야)

寬仁有聖德(관인유성덕) 國人敬慕之曰(국인경모지왈) 仇臺王復來矣(구대왕복래의)


휘는 백고이고, 기루왕(백제3대 대왕)의 7번째 아들로, 개루왕(4대왕)과 어머니가 다른 동생이다.인자하고 성덕이 있었다. 나라사람들이 공경하고 흠모하여 (다음과 같이) 말들을 했다. 구대왕(백제온조)이 다시 부활한 것이 구지왕이다


“仇臺王復來矣(구대왕부래의)”

백성들은 그의 즉위를 반기며 구대왕(온조왕)이 다시 나타난 것이라 믿었다.


《주서》 권49 이역열전 상편 백제

백제(百濟)는 그 선대가 대체로 마한(馬韓)의 속국이며 부여(夫餘)의 별종인 듯 하다. 구태(仇台)란 사람이 처음으로 대방(帶方)에 나라를 세우니, 그 땅의 경계는 동쪽으로 신라(新羅)에 닿고 북쪽으로 고구려(高句麗)와 인접하며, 서쪽과 남쪽으로는 모두 큰 바다로 경계지어져 있다. 동서의 길이는 450리이고 남북은 900여리이다. 도읍은 고마성(固麻城)이다.


《수서》 권81 동이열전 백제

동명(東明)의 후손에 구태(仇台)라는 자가 있으니,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대방(帶方)의 옛 땅에 처음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의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도(公孫度)가 딸을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으며, 나라가 점점 번창하여 동이(東夷) 중에서 강국이 되었다. 당초에 백여 가(百家)가 바다를 건너 왔다(濟)고 해서 백제(百濟)라 불렀다. 그로부터 십여대 동안 대대로 중국의 신하 노릇을 하였는데, 이전 나라의 역사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북사》 권94 열전 백제

동명(東明)의 후손에 구태(仇台)가 있으니,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처음으로 대방(帶方)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의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도(公孫度)는 딸을 시집보냈는데, 마침내 동이(東夷) 중에서 강국이 되었다. 당초에 백여 가(百濟)가 건너 왔다(濟)고 해서 백제(百濟)라고 불렀다.


- 《수서》와《북사》에 구태, 즉 온조를 동명의 후손이라고 기록한 것은 온조와 비류형제의 부친이었던 고구려의 시조 추모대왕이 과거 두막루의 수장인 고두막한이자, 북부여를 장악한 해모수 동명을 흠모하여 본인과 비견하여 고추모 자신을 동명성왕이라 한 것을 두고 고추모의 후손인 온조를 동명의 후손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동부여에 있던 고추모의 적자 유리가 온 이후에 그가 태자로 책봉되자, 왕비 소서노는 두 아들인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하를 한다.그들이 도착한 곳은 대방 황무지땅으로 이 황무지 반천리를 비옥한 장원으로 가꾸었고, 고추모는 이를 기뻐하여 소서노를 어하라로 책호한다. 이후로 어하라는 국모인 소서노를 말하며, 동시에 대방황무지의 나라이름이 되었다. 이 어하라가 백제의 왕도인 위례성의 기원으로, 소서노가 붕한 후, 온조는 말갈과 낙랑의 공격을 피해 대능하 남쪽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위례성을 이룩한다.

위 두 책에 전하는 대방의 옛 땅은 황무지를 개척하여 고추모로 하여금 어하라로 책호받은 백제의 기원인 어하라를 지칭한다.

전한(前漢)이 조조의 위, 유비의 촉, 손권의 오로 나뉘어 이른바 삼국시대가 전개 되었고, 지리적으로 북방에 위치한 조조의 위나라는 오환,선비를 제압하고 그 영역을 넓혀 나갔다. 마침내, 고구려 태조대왕과 왕자 수성이 장악한 요동지역에 근접하고 요동 동남쪽의 백제와도 근접한다.


백제는 구지왕(仇知王) 3년(190년)에 공손도의 딸 보루(宝婁)를 구지왕 30년(217년)에는 공손도의 아들인 공손강의 여동생 보고(宝皐)를 비로 맞이한다.

이 구지왕 <백고伯古>와 신라 <지마祗摩(131-191)>왕의 외손자 길선(吉宣)(172-226)의 딸인전씨(田氏)(197-268)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초고肖古(214~274) 재위 (226-253)

출처: https://elfqkr.tistory.com/search/전씨[바람따라구름따라:티스토리]


《수서》와《북사》에 전하는 [한나라의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도(公孫度)가 구태에게 딸을 시집보냈는데, 마침내 동이(東夷) 중에서 강국이 되었다.]는 것은 위나라 조조에게 요동태수의 직책을 부여받은 공손도가 백제와 형제국인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백제 구지왕과 혼인동맹을 맺은 것을 나타낸다.

위 두책에서 구지왕을 구태 즉, 온조로 표현한 것은 구지왕이 온조가 다시 나타난 것으로 믿은 나라 사람들의 견해를 토대로 한 것이고, 또한 백제 내에서 형인 개루왕이 죽고, 동생이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것에 대해 온조와 같은 시조로서의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구려와 대치중인 요동 공손도라는 중국 한족계열의 인사와 혼인동맹을 맺어, 형제국인 고구려를 견제하는 태도를 보인 구지왕에 대해 좋은 시각으로서 평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1. “네이버”. 2024년 7월 18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