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교육사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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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3일 (토) 14:20 판

본 문서는 교육사상으로서의 자유주의에 관한 것이다.

개요

자유주의 교육사상(自由主義敎育思想)은 개인에 대한 '구속 없는 상태'에서 개성의 자유·활발한 신장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19세기 후반에 나타난 획일적 주지주의(主知主義)의 반동으로 나타난 것으로 특히 루소(J. J. Rousseau, 1712-1778)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루소는 그의 교육소설 <에밀(Emile)>에서 "아동은 성인의 축소형이 아니다. 아동은 아동으로서의 독자적 세계와 인격이 있다"라고 하면서 아동을 억압·구속하는 기성사회·문화를 좋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자연의 과정에 따른 교육을 주장하는 자연주의 교육설을 주장하였는데,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이를 배경으로 아동 인격의 독자성과 그 내부 성능의 자유스러운 발전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있다. 교육내용과 방법도 일정한 교과목을 일정한 교실 안에서 주입하기보다 표본·실물이 있는 진열장에서 아동 스스로의 관찰을 통한 학습과 정서의 함양을 중시하고 있다. 모든 외적인 주입(注入) 및 구속(拘束) 같은 것은 낡은 교육방법으로 보고 되도록이면 아동 자신의 활발한 개성신장을 도모할 수 있는 독창적 방법을 체득한 교사를 요구한다. 그 대표적 이론가인 케이와 구를리트의 생애와 사상을 보면 다음과 같다.

케이

엘런 케이(Key. Ellen, 1849-1926)는 스웨덴의 여류사상가이며, 교육자. 대대로 루소를 숭배하는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에밀(Emil Key)은 급진파의 정치가로, 국무장관까지 지냈다. 6세에 독일어, 14세에 프랑스어를 배웠으며, 18세에 입센의 작품에 접하고 종교·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3세에 아버지 비서 격으로 유럽 각지를 여행하고, 25세에 아동교육과 여성의 자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31세부터 약 20년간 초등학교로부터 대학(스톡홀름 통속대학에서 문명사 강좌를 맡음)에 이르기까지 교직에 종사했다. 그는 교직생활 중 교육개혁과 사회 및 여성문제에 대한 저술로써 고루한 풍습과 여론에 항의했다. 1903년부터 외국 순회강연길에 나섰는데, 특히 독일에서 많은 동조자를 얻었다. 그의 주저로는 <아동의 세기(世紀)>(1900), <생명의 노선>(1903) 등이 있다. 그는 루소의 개인적 자유주의에 다윈(C. Darwin) 학파의 생물학적 원리를 가미하여 교육설을 구성하고 있다. 그의 교육사상은 <아동의 세기> 속에 전개되고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동의 선천적이며 고유한 본성을 억압하고, 다른 사람의 인격을 그 자리에 충당한다는 것은 언제나 죄악이다. 둘째, 교사의 임무는 아동의 선천적 경향성을 이해하여 그것을 교육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셋째, 아동의 생활과 인격과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이해해야만 교육이 가능하다. 넷째, 선천적 소질을 발전시켜 주지 않고 외부로부터의 강요나 압력으로 성인사회의 생활습관·인격을 부과하는 것은 억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한 본성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빗나가게 한다. 다섯째, 엄격한 생활방식·규칙적 습관을 강요하지 말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아동을 방임·고립시키는 의미가 아닌, 최선의 안정된 사회환경에 놓아 두고, 그곳에서 타인의 권리와 충돌하지 않는 한에서 자유로운 자기활동을 하게 해야 한다. 일곱째, 성인의 생활방식을 가르칠 경우 성인 스스로 모범을 보여 아동으로 하여금 자연적 모방을 하게 해야 한다. 그는 아동 본래의 선성(善性)의 자기발전력을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사회환경에서 격리된 고립된 환경보다는 사회안에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자기활동을 통한 교육을 주장하고 있다. 또 그는 당시 학교교육의 결함과 체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먼저 학교의 결함에 대해 그는 ① 학교는 아동이 지니고 있는 관찰욕·지식욕·독립정신과 같은 것을 학교를 떠나기 전에 완전히 없애 버리는 곳이며, ② 낡은 주입식 교수방법과 엄격한 훈련 때문에 아동의 인격은 질식해 버리고, ③ 가장 순종적이고 무기력한 아동이 가장 모범적으로 간주되는 곳이라고 했다. 또 학교에서의 체벌 사용은 ① 아동의 향상·발달을 저해하는 무지·무능한 교사의 소치이고, ② 교사는 자기들이 어린시절에 당한 체벌의 공포를 아동의 입장에서 생각지 못하며, ③ 회초리를 사용하면 아동의 인내력을 기른다고 생각하나 이것은 잘못이며, ④ 오히려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하며, 사고력의 발달을 저해시키고, 부도덕을 낳게 하며, 자유의 미덕보다 노예적 습관을 기르게 한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이상으로 하는 교육을 <아동의 세기> <미래의 학교>편에서, ① 입학 연령의 낮춤, ② 능력별·기호별 적성교육의 실시, ③ 교실을 대신하는 박물관·연구실의 설치 등으로, 미래의 학교는 무학급·무교과서·무시험·무증서(無證書)·무훈계의 완전한 자유교육체제를 통해 아동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곳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그의 교육사상은 그 뒤 신(新)루소주의로 불리면서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독일의 구를리트, 이탈리아의 몬테소리의 '몬테소리법(法)', 벨기에의 데크롤리(O. Decroly, 1871-1932)의 '데크롤리법', 미국 파커스트(H. Parkhust, 1887-1959)의 '돌턴 플랜(Dalton plan)' 등의 새로운 교육방법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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