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경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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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ㅂㅁㅋ님이 레 경종 문서를 려 경종 문서로 이동하면서 넘겨주기를 덮어썼습니다: 려는 성씨에서 나온것인데 굳이 현지음을 따라서 '레'라고 할 이유가 없고, 접근성이 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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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8일 (일) 00:42 판

려 경종(베트남어: Lê Kính Tông / 黎敬宗, 1588년 ~ 1619년 6월 23일[1])은 대월 후려조의 제17대 황제(재위: 1599년 ~ 1619년)이다. 성명은 려유신(베트남어: Lê Duy Tân / 黎維新)이다.

생애

레 경종은 레 세종의 둘째 아들이다. 1599년에 레 세종이 죽었는데, 권신 정송이 레 세종의 장남인 려유지(黎維持)가 총명하지 못함을 이유로 11세의 려유신을 황제로 옹립하였다.[2]

재위 동안 정송이 조정의 정사를 장악하였다. 정송은 자신의 딸인 정씨옥정(鄭氏玉楨)을 레 경종의 황후로 맞게 하였고, 둘 사이에서 레 신종이 태어났다. 려 경종은 정송의 전권 행위에 대단히 불만을 품었다.但黎

1619년에 레 경종은 정송의 아들인 정춘(鄭椿)과 모의하여 정송이 수도로 돌아오는 길에서 그를 죽이고 황권을 회복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암살자가 실수로 의자에 있는 상을 맞추었고, 정송은 그를 암살자를 잡아 고문하여 레 경종과 정춘의 음모를 알게 되었다. 정송은 레 경종을 협박하여 스스로 목을 매고 죽게 하였고, 경종의 장남인 레 신종을 세웠다.

《흠정월사통감강목(欽定越史通鑑綱目)》의 기록에 따르면 레 경종이 정송을 암살하려 했기 때문에 정송은 려 경종에게 묘호를 주는 것을 거부하였고, 단지 시호를 간휘제(簡輝帝)라고 하였다. 아울러 경종의 영위(靈位)에 대한 제사를 태묘(太廟)에서 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1632년에 이르러 려 신종이 자신의 생부라는 연고를 내세우자 권신 정장이 태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에 동의하였고, 마침내 묘호를 경종(敬宗), 시호를 현인유경수복혜황제(顯仁裕慶綏福惠皇帝)라고 하였다.

각주

  1. 홍정(弘定) 23년 5월 12일, 《력조헌장류지(歷朝憲章類誌)》권21·예의지(禮儀誌)·태묘전봉사각위(太廟殿奉事各位)
  2. 《흠정월사통감강목(欽定越史通鑑綱目)》권30·려세종광흥22년(黎世宗光興二十二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