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KIWI/2024년 6호/위키이슈
지난 2023년 연말부터 올해초까지 한국어 위키백과를 달군 이슈는 통신사 IP의 편집을 전면차단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통신사 IP는 스마트폰 등 무선통신망을 이용하는 기기에 이동통신사가 배정하는 IP 주소입니다. 문제는 스마트폰 등 무선기기의 네트워크를 껐다 켜는 것만으로 다른IP가 배정된다는 것입니다. 위키백과가 성장하는데는 로그인하지 않고 활동하는 IP 사용자들의 공헌 또한 컸지만, 무작위로 바뀌는 IP에 기대어 차단을 회피하거나, 문서 훼손을 이어가는 일 또한 빈번하게 나타나왔습니다.
통신사 IP 차단에 찬성하는 사용자층은 문서 훼손이 주로 통신사 IP에서 발생하고 있고, 정상적인 기여를 하는 사용자가 피로를 쉽게 느끼며, 관리자들의 관리 여력을 갉아먹는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을 차단하되 계정생성은 막지 않는 쪽을 선호하였습니다. 선의의 사용자는 회원가입을 통해 위키백과에 쉽게 합류할 것이라 보았습니다.
통신사 IP 차단에 반대하는 사용자층에서는 자유로운 접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이라는 위키백과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하였습니다. IP기여를 막고 회원 가입을 필수로 만드는 장벽은 사소한 호기심을 가지고 첫 편집을 해보려는 사용자들의 발걸음은 돌리지만, 악의를 가진 훼손자들에게는 기존과 달라질 것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픈 프록시조차 단기간 차단을 하는 것이 원칙인데, 통신사 IP에 전면적인 편집차단을 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나 대안이 충분히 검토되었는지, 차단 시의 부작용에 대한 숙고, 재단에 요청을 통한 그동안의 IP 대역 차단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데이터 수집 등 객관적인 지표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동통신사 IP의 편집을 차단하되, 로그인 편집 및 계정 생성을 막지 않는다는 정책을 신설하자는 투표는 찬성 25표, 반대 17표로 유효투표수의 3/4를 넘지 않아 부결되었습니다.
발제자의 기고
안녕하세요, 이번에 통신사 IP 차단과 관련하여 의견 수렴을 주관했던 고영진입니다.
이번 통신사 IP 차단 의견 요청이 열리게 된 것은 한국 문화권에서의 반달리즘의 특수성이 주요한 원인이 있었습니다. 통신사 IP는 매번 접속할 때 마다 새로운 IP 주소를 받게 되는 특징으로서 기여의 연속성을 측정하기 힘들고, 장치를 껐다 켜는 것 만으로도 자신의 IP 주소를 바꿀 수 있어 여러 관리자들이 반달 대응에 어려움이 있었고, 심각한 경우 우리의 관리 체제를 실험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포르투갈어에서 IP 차단을 실시했고, 이에 대한 만족도는 적어도 조사된 사용자 층에서는 높은 것으로 알려졌고 커뮤니티 또한 더 건강해졌습니다.
제 주위에 있던 여러 관리자께서 이러한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해 주셨는데 저는 한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과연 통신사 IP의 모든 편집을 차단하는 것이 위키백과의 건강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까?” 라는 것에 대해서 가능한 많은 사용자의 의견을 들어봐야 했다고 생각이 들었고 이에 의견 요청을 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실행함으로서 우리가 손해 보는 것도 있습니다. 선의의 사용자들은 거의 대부분 집/회사등 고정적인 IP를 통해서 기여하고 계정을 만들어서 기여하면 되기에 찬성하시는 사용자분도 많았지만, “소수의 반달 사용자들 때문에 왜 기존에 잘 기여하고 있는 다수가 피해를 입어야 하나” 라는 논리를 가진 반대하는 사용자도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이러한 이유는 “모두가 기여할 수 있는 자유 지식 운동"을 만들기 위해서 라는 점에서 큰 실리가 있다고 생각되며, 우리 커뮤니티는 모두가 편집할 수 있는 열린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원활한 관리 환경 조성과 건강한 커뮤니티 만들기"와 “모두가 편집할 수 있는 열린 백과사전"의 가치를 지키자는 두가지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 보여집니다. 물론 이번 의견 조사 이후 2년간 차단하자고 바로 조치하는 투표를 열었다는 것이 성급하다는 의견이 있듯, 통신사 IP 차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데이터와 실험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때 시행하는 것이 맞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2주간 시범적으로 적용해본다, 통신사 IP 대역으로 편집하는 비율은 얼마인가 등 여러 데이터가 생기면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본 의견 수렴에 참여해 주신 모든 사용자분들께 감사드리며, 더 건강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