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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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1세 표도로비치
Михаи́л I Фёдорович
Michael titularnik.jpg
Coat of arms of Russia in 1625.PNG
Monomakh hat.svg
제8대 전러시아의 차르
재위 1613년 2월 21일-1645년 7월 12일
대관식 1613년 7월 22일
전임자 브와디스와프 1세 바사
후임자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별칭
미하일 표도로비치 로마노프 (Михаи́л Фёдорович Рома́нов)
신상정보
출생일 1596년 7월 22일
사망일 1645년 7월 23일 (49세)
왕조 류리크조
가문 로마노프가
부친 이반 안드레예비치 슈이스키
모친 마르파 표도로브나
배우자 마리아 돌고루코바
에우독시아 스트레시네바
자녀 이리나 미하일로브나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종교 러시아 정교

미하일 1세(미하일 표도로비치 로마노프, Михаи́л Фёдорович Рома́нов, 1596년 7월 12일 ~ 1645년 7월 13일, 재위:1613 ~ 1645)는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개창자며, 그 초대 차르(1614~1645)다...

동란시대(1598~1610)을 거친 뒤에 1613년 2월 러시아의 젬스키 소보르(전국회의)에서는 새로운 차르를 선출하게 되었는데, 그때 선출된 사람이 미하일 로마노프(1596~1645)로 그가 바로 미하일 1세다. 그는 이반 뇌제(雷帝:재위 1533~1598)의 첫째 황후인 아나스타샤의 오빠인 니기타 로마노프의 손자로, 할아버지를 통하여 류리크 왕조의 마지막 차르 표도르 1세와 친척 관계다.

밀사들이 모스크바에서 미하일과 보리스 고두노프 통치 때에 수녀가 되는 강요를 당한 어머니가 함께 살던 코스트로마(Kostroma) 근처의 수도원으로 와서 3월에 미하일은 마지못하여 왕좌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20년 동안 부친인 필라레트 로마노프와 공동통치를 했는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16세의 나이로 7월 11일에 대관식을 올렸다.

그는 최고 지도자가 되기엔 마음이 심약한 사람이었다고 하며, 실권은 늘 부모와 측근 고문들에게 있었다. 재위 기간 동안엔 폴란드지그문트 3세 바사의 공격에 시달렸었다. 1617년스웨덴과, 이듬해에는 폴란드와 각각 스톨보보 조약과 디빌리노 화평을 맺어 불안을 없앴다.

1619년 정교회의 수도사인 부친이 폴란드로 잡혀갔다가 풀려나왔다. 그가 러시아에 돌아오면서 교회의 주교와 미하일과의 공동통치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1633년에 죽을때까지 서유럽과 외교, 상업, 문화적 접촉을 늘이던 미하일의 정부를 지배했고, 러시아의 재정적 궁지 해결, 중앙 정권의 권력을 늘이는 데 지방 정부 조직들의 개혁, 농노제의 강화로서 전국회의의 광범한 활용을 실시했다.

부친이 사망하자 미하일의 외가 친척들이 그의 정부에서 탁월한 역할을 맡았다. 1645년 7월 13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하였으며, 그의 아들 알렉세이가 그의 뒤를 이었다.

전임
브와디스와프 4세 바사
러시아 차르국차르
1613년 2월 21일 ~ 1645년 7월 12일
후임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