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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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

로테르(Lothaire) 또는 로타르(Lothar, 941년 - 986년 3월 2일) 또는 로타르 4세(Lothar IV)는 카롤링거 왕조 출신의 프랑스 왕으로 954년부터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었다. 아버지는 루이 4세이고 어머니는 독일 왕 하인리히 1세의 딸 게르베르가이다.

아버지 루이 4세의 정적이던 위그 르 그랑의 섭정하에 있었으나 그와 수시로 갈등하였고 독일에 있던 외삼촌 브루노 대주교를 자신의 자문으로 삼았다. 독일과 전쟁을 벌여 푸아티에를 손에 넣는 한편 동프랑크 왕국때 넘어간 로트링겐을 되찾기 위해 오토 2세와 전쟁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베르됭 조약 이전의 로타르 1세프랑크 왕국 전체의 왕으로 간주할 경우 로타르 2세(Lothar II) 또는 로테르 2세(Lothair II)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 로타르 1세는 서프랑크의 왕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생애[편집]

즉위 초반[편집]

로테르
로테르 2세 (왼쪽), 성 미하일 주교(가운데), 노르망디 공작 리처드 2세(오른쪽)

로테르 2세는 서프랑크의 왕 루이 4세독일 국왕 하인리히 1세의 딸인 게르베르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동생은 로렌의 샤를이다. 루이 4세의 맏아들인 로테르는 954년 아버지가 말을 타다가 낙마 사고로 갑자기 죽은 뒤 13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960년까지 공작 위그섭정으로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정적인 대 위그의 영향력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독일에 있던 외삼촌 브루노 등과 비밀리에 연락했다.

955년 위그와 로테르는 푸아티에를 손에 넣었으나 위그는 곧 죽었고, 그는 카를 마르텔을 기념하여 푸아티에를 성역화하였다. 그뒤 로테르는 위그의 아들 위그 카페와 동생 오토-앙리의 사이를 중재했다. 위그 형제의 갈등으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그는 자신의 후견인으로 독일에 있던 외삼촌 브루노를 서프랑크로 초빙했다. 956년부터 로테르는 외삼촌이자 오토 1세의 형제인 쾰른 대주교 브루노의 보호아래 있었다.

독일과의 전쟁[편집]

962년부터 로테르는 플랑드르 지방을 복속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동 프랑크 왕국으로 넘어간 로타링기아를 다시 복속하려고 몇 차례 시도하였다. 보호자 부르노가 죽자 로테르는 독일과 대항하였고 978년 아헨에서 기습적으로 공격을 감행하여 오토 2세를 거의 붙잡을 뻔하였다. 오토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를 공격하여 거의 파리까지 진격하였고 도중에 수아송, 랭스 등을 유린했다. 그러나 위그 카페등 강력한 귀족들이 로테르의 편을 들었기 때문에 결국 퇴각하고 980년 오토와 로테르는 평화조약을 맺었다.

후에 오토 2세는 그의 동생 로렌의 샤를과 로테르의 갈등을 유도하여 혼란을 부추겼으나 실패했다. 이탈리아의 왕 로타르 3세아델라이드의 딸 엠므와 결혼하여 아들 루이 5세를 얻었다.

사후[편집]

979년 아들 루이 5세를 공동 국왕으로 선포하였다. 986년 3월 2일에 로테르는 죽었고 왕위는 아들 루이에게 돌아갔다. 987년 아들 루이는 후사없이 사망했고, 둘째 아들 외드는 986년에 사망했으며 셋째 아들 혹은 서자인 랭스의 아르눌프위그 카페에 의해 강제로 머리깎여서 랭스 성당의 부제가 되었다. 이로써 그의 직계는 단절되었다.

가계[편집]

관련 항목[편집]

전 임
루이 4세
서프랑크의 왕
954년 - 986년
후 임
루이 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