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인군
이최응(李最應, 1815년~1882년)은 조선 시대의 왕족으로 흥선대원군의 형이다. 자는 양백(良伯), 호는 산향(山響), 군호는 흥인군(興寅君)이다. 남연군과 군부인 여흥민씨의 셋재 아들이자 흥선대원군의 바로 윗 형이었다. 시호는 효헌(孝憲)이었다. 본관은 전주이다.
흥녕군과 흥완군의 동생이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친형이었으나, 그는 바로 아랫 동생 이하응에게 무시당했고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뒤에 명성황후는 그가 흥선대원군과 사이가 좋지 않은 점을 이용하여 그를 끌어들인다. 헌종 때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고종 즉위 후 1866년에는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도감 당상이 되었다.
그 뒤 판의금부사, 호위대장, 좌의정, 판종정경, 영의정 등을 거쳤으며, 1881년 통리기무아문의 총리대신에 올랐다. 1881년 완은군 이재선이 사사되자 그의 백부가 되는 흥인군 이최응은 이재선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고종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임오군란 때 난군을 피하여 달아나다가 사로잡혀 살해되었다.
가족관계
- 아버지: 남연군(南延君, 1788년~18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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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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