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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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흥사단 원동위원부 창립식, 맨앞줄 가운데는 흥사단 원동위원부의 조선지부 책임자 이광수

흥사단의 역사

창립

흥사단은 1913년 5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이 중심이 되어 8도 대표를 발기인으로 하여 창립 되었다. 흥사단(興士團)이라는 명칭은 1907년 유길준이 설립한 '흥사단'을 이어받은 것이고, 그 이념과 목적은 1907년에 조직된 신민회와 1909년 조직된 청년학우회를 계승한 것이다. 1907년 11월 30일에 발표된 유길준의 '흥사단취지서'에 의하면, 문명의 진보 속도는 국민의 지식 계발과 도덕의 수양 정도에 따라 결정되며, 국민의 지식 계발과 도덕의 수양 정도에 따라 결정되며, 국민의 지식 계발과 도덕의 수양은 교육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흥사단이 기르고자 하는 선비(士)는 직업과 신분을 초월하여 전문지식과 염치와 도덕을 갖추고 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신민회는 ①국민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②동지를 발굴하여 조직화함으로써 국민운동의 역량을 축적하고, ③교육기관을 각지에 설립하여 청소년 교육을 진흥하고, ④각종 상공업 기관을 설립하여 경제력을 증진하고, ⑤나아가서 항일 독립운동을 추진하여 궁극적으로 공화정을 수립하려는 원대한 목적 하에 설립된 조직이었다. 청년학우회는 "무실ㆍ역행ㆍ충의ㆍ용감의 4대 정신으로 인격을 수양하고 단체생활 훈련에 힘쓰며, 한 가지 이상의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반드시 학습하여 직업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매일 덕육ㆍ체육ㆍ지육에 관한 수련에 힘쓴다"라는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신민회와 청년학우회의 공통점은 도덕성과 애국심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 조직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이다. 도산은 독립협회, 공립협회, 신민회, 대성학교 등의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많은 민족지도자와 함께 민족운동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인격적 기초의 중요성과 국민적 소양을 갖춘 인재의 단결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여기서 도산이 요구하는 인격이란, 서로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정직성을 갖추고 아울러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생산기술이나 전문지식을 갖춘 인격을 의미한다. 이런 인물들을 훈련하고 조직화하여야 비로소 실질적인 독립운동도 가능하고 장기적으로 부강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망명지 미국에서, 교민자치와 독립운동을 위한 대한인국민회와 별도로 민족운동에 헌신할 인재의 양성과 훈련을 위한 단체로서 흥사단을 창립한 것이다. 특히 지방색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8도 대표를 발기인으로 하였는데, 창립 당시 적절한 인물이 없었던 충청도 대표는 1년 후에 입단한 조병옥으로 충원했다. 아울러 흥사단은 삼권분립의 원리에 따라 치밀한 조직체계와 규약을 갖춘 민주적인 단체로 출범했다. 흥사단의 창립 취지와 특징은 도산이 구상한 종합적인 민족운동방향 속에 분명히 드러난다. 1906년 말~1907년 초 공립협회 시절에 도산이 친필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방략도에 의하면, 도산은 민족운동의 전 과정을 기초, 진행준비, 완전준비, 진행결과, 완전결과의 5단계로 설정하였다. 제1단계인 기초단계는 자질 있는 청년들을 모아 조직적으로 인격훈련과 단결훈련을 시켜 민족운동의 핵심 간부로 양성하는 것이다. 독립운동과 건국사업에 헌신할 핵심 인물은 먼저 건전한 인격을 바탕으로 공고한 단결력을 갖추어야 한다. 인격훈련과 단결훈련을 흥사단의 2대 강령으로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인격의 근본 덕목은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의 4대 정신과 주인정신이다. 제 2단계는 기초단계를 통해 배출된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학업단과 실업단을 만들어 실력을 양성하는 단계이다. 제3단계는 학업단과 실업단의 활동에 의해 각 부문의 전문인재가 배출되고, 필요한 재정이 비축되는 단계이다. 제4단계는 확보된 인력과 재정을 바탕으로 독립전쟁을 결행하고, 동시에 새로운 정치체제를 수립하는 단계이며, 마지막 5단계는 일제를 몰아내고 조국광복을 실현하여 번영된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독립운동기(~1945)

흥사단은 창립 이후 빠른 속도로 조직이 확산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흥사단의 조직은 LA, 다뉴버, 로간, 하와이, 멕시코 등지로 퍼져나갔고, 단우의 수는 1920년까지 미국에서만 약 150명으로 늘어났다. 3ㆍ1운동 후 중국으로 건너간 도산은 상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1920년 상해에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를 설치하고, 이광수, 주요한, 박현환, 김여제, 유상규, 백영엽, 손정도, 이용설 등을 포함하여 1924년까지 50여 명을 추가로 입단시켰다. 또 1922년 2월에는 이광수, 박현환, 김윤경 등이 중심이 되어 서울에 '수양동맹회'를 조직하고, 1923년 1월에는 평양에서 대성학교 출신 김동원, 김성업, 김병연 등이 중심이 되어 '동우구락부'를 조직했다. 1926년 1월에는 수양동맹회와 동우구락부가 '수양동우회'로 통합하였으며, 1929년 11월 '동우회'로 개칭하였다. 이처럼 국내 조직은 총독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단순한 수양단체로 가장하여 활동을 계속했으나, 1936년7월 일제가 이른바 '동우회 사건'을 일으켜 70명의 회원이 옥고를 치르고 1937년에 동우회는 강제로 해체되었다. 1945년까지 미국, 멕시코, 중국, 국내에서 입단한 단우의 수는 모두 590여 명으로 추산된다.

민족부흥운동기(1945~1963)

해방과 건국의 격변기에 흥사단은 국내 조직을 재건하고 회관을 매입하여 1948년 6월 미국 LA에 있던 본부를 서울로 이전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고, 1946년부터 1950년 6ㆍ25 발발까지 584명이 새로 입단하였다. 흥사단은 단우의 인격수련과 함께 대외 사업으로 언론, 출판 등의 문화 운동과 강연회, 독서회, 영어강좌, 교양강좌와 같은 다양한 사회교육 활동과 장학사업을 전개했다.

특히 1954년 4월부터 시작된 '금요강좌'는 당대 최고의 강사진으로 이루어진 공개강좌로 이후 1,400회를 이어오면서 국민계몽과 시민교육의 장으로, 한편으로는 자유당 독재에 대한 비판의 장으로 작용했다. 흥사단이 발행하던 월간 잡지 《새벽》은 《사상계》와 더불어 한국 지성인의 대변지로 부단히 자유당 독재를 견제해 왔다.

한편 광복 직후 미군정기와 4ㆍ19 이후에 흥사단의 많은 인재가 민족부흥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나, 이승만 정권 12년 돈안은 흥사단의 암흑기라고 할 정도로 많은 제재를 받았다.

민주화운동기(1963~1987)

1963년 흥사단이 창립 50주년을 맞는 해이며, 5ㆍ16으로 중단되었던 사회단체 활동이 재개되는 해였다. 그동안 초창기와 일제강점기 미국과 상해 혹은 국내에서 입단했던 단우들은 대부분 고령화되어 젊은 층의 영입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리하여 청년 학생을 대상으로 '아카데미'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아카데미'는 흥사단의 영문 표기를 'Young Korean Academy'라고 한데서 기인하지만, 1963년 이후에는 특히 학생조직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1963년 9월 1일에 제정된 〈세포의 주직과 운영요강〉에 따라 서울, 부산, 인천, 대구, 광주, 대전, 청주, 원주, 전주, 진주, 여수, 제주 등지에 흥사단 분회와 학생 아카데미가 창립되었다. 각 지역 분회 직할로 설립된 아카데미는 1968년부터 학교단위의 조직으로 분화되어 나갔다. 본부 직할로 출발했던 '대학생서울아카데미'는 점차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숭실대, 중앙대 등의 대학별 아카데미로 분화되었다. 전성기에는 전국의 대학생아카데미가 70여 개, 고등학생아카데미가 80여 개에 달했으며, 50년 동안 500여 개의 아카데미를 통하여 배출된 인물은 대략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시민운동기(1987~2013)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고 1993년 문민정부가 시작되면서 다양한 시민운동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게 되었다. 참여정부에 와서는 NGO에 대한 재정지원까지 이루어져서 시민운동 단체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고 정부의 정책결정에 대한 영향력도 한층 더 증대되었다. 흥사단 역시 공명선거운동, 교육개혁운동, 환경운동 등에서 유관 시민단체와의 연대 활동을 확대해 나가는 한편 지역별로 다양한 시민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청소년 생활문화 공간 조성(서울, 광주 지부), 청소년 유해환경 고발센터 운영(서울지부), 독서생활문화 가꾸기(수원지부), 생명존중 교통운동(대전지부), 향토문화 가꾸기(전주지부), 건강한 가정 꾸미기(대구지부), 청소년 환경ㆍ교통 감시단(부산지부), 존경받는 부모 되기 시민모임(진주지부), 푸른 제주ㆍ우리 얼 가꾸기 시민운동(제주지부) 등이 1990년대에 실행한 대표적인 시민운동 사례들이다.

창립 100주년 흥사단, 새로이 나아가는 힘찬 도약(2013~)

흥사단은 2013년 5월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한국인에 의한 자생적 민족운동단체로 오로지 애국애족의 길을 걸으며 한 세기의 역사를 이어온 민간 조직은 흥사단이 유일하다.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이기도 하다. 지난 100년은 우리 민족사를 통틀어 가장 극심한 수난과 격변의 시기였으며, 고난과 영광이 함께한 세기였다. 국권 상실로 인한 이민족의 압제, 조국 광복을 위한 끈질긴 저항과 투쟁, 광복과 동시에 찾아온 국토 분단과 민족 분열, 정부수립과 동족상잔의 비극 등 수난의 연속이었다. 그 후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이룩한 부흥과 재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눈부신 경제성장, 이를 토대로 한 민주화와 성취는 세계가 괄목할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이 시기에 흥사단은 언제나 민족과 더불어 영욕을 함께하며 시대의 문제를 안고 씨름했다. 국권상실기에는 국권회복을 위하여, 광복 후에는 조국의 부흥과 재건을 위하여, 독재정권 하에서는 민주화를 위하여, 민주화 이후에는 성숙한 시민사회 건설을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흥사단의 정신

흥사단의 창립 목적

약법 전문

오랜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이 발전적인 민주 사회를 이룩하려면 먼저 국민 각자가 올바른 정신적 자세와 왕성한 부흥 의욕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정신적 자세는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 모든 분야의 여건의 변화에 영향을 받으나 사람은 또한 환경을 개선 창조하는 원동력을 가졌다.
그러므로 민족을 부흥시키려면 참되고 진취적이며 협동적이고 용기 있는 일꾼들이 민족적 사명감을 가지고 실천 봉사하여야 하며 이런 일꾼의 양성을 위한 의식적이요 계속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창한 구국 이념으로서 민족을 살리는 참된 길임을 확신하는 우리는 자신의 사회적 직무와 위치에 구애됨이 없이 흥사단 운동에 평생을 바치기로 이에 동맹한다.

약법 제2조(목적)

우리 단의 목적은 무실역행으로 생명을 삼는 충의 남녀를 단합하여 정의를 돈수하며 덕, 체, 지 삼육을 동맹수련하여 건전한 인격을 지으며 신성한 단체를 이루어 우리 민족 전도 번영의 기초를 수립함에 있다.

2대 강령

- 건전인격 : 단우가 각자가 건전한 힘, 자아역량을 갖도록 노력한다.

- 신성단결 : 단우간 신의를 지키고, 서로를 사랑하고 환난상구한다.

3대 수련

1. 인격훈련 :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의 정신으로 덕성을 함양하고 신체를 단련하며 전문 지식을 습득하여 건전한 인격을 만드는 일
2. 단결훈련 : 우리 단의 규율을 지키고 단우 간에 신의를 존중하며 서로 도와 신성한 단체를 이루는 일(단결훈련) 
3. 민주시민훈련 : 시민운동과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자치 능력과 공동체 의식을 가진 민주시민으로서의 품격을 갖추는 일

4대 정신

흥사단의 4대 정신은 무실(務實), 역행(力行), 충의(忠義), 용감(勇敢)이다. 이것은 흥사단의 철학적 기초이며, 핵심 가치이자 브랜드 이미지에 해당한다. 이것은 도산 선생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평생 가르침의 내용으로 흥사단 창립 초기부터 사용해 왔다.

1. 무실 : 거짓을 버리고 참을 사랑하는 정신이요, 실질을 존중하는 정신

2. 역행 : 빈말보다 실천을 강조하고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노력하는 정신

3. 충의 : 충성되고 신의를 지키는 정신으로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고 사람에 대해서는 신의를 다하는 정신

4. 용감 : 매사에 굳은 의지를 가지고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정신을 발휘하며 탐구와 진리를 추구하는 정신

흥사단의 조직

흥사단은 국내의 25개 지부와 미주위원부 산하 9개 지부에 약 6,000명의 단우가 활동하고 있으며, 전국 14개 지역에 190여 개의 초ㆍ중ㆍ고등학생 및 대학생 아카데미 조직과 약 7,000명의 회원이 있다. 본부 산하에 도산아카데미, 교육수련원, 사회봉사단, 흥사단청소년재단, 평생교육센터, 시민사회연구소 등 67개 부설기관, 그리고 전국 각 지역에 20여 개의 청소년 시설을 수탁하여 운영하고 있다.

역대 지도부

역대 이사장

역대 총재

3대 운동본부

1990년대 후반부터 시민운동을 좀 더 체계화, 전문화하기 위하여 출범한 민족통일운동본부, 투명사회운동본부, 교육운동본부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사회 시민운동을 선도하고 있다.

민족통일운동본부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구국이념을 바탕으로 민족통일 촉진과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창립(1997년)하였다. 금요통일포럼, 동북아 북중러 탐방대, 대학생 통일아카데미, 희망릴레이 청년쇼, 다양한 세대 평화통일교육, 동북아 평화백일장, 대학생 통일의식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도산통일연구소 운영, 흥민논평 발행 및 여러 통일단체들과 다양한 연대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투명사회운동본부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라는 말씀에 따라 우리사회의 부정과 부패, 비리와 거짓을 없애기 위해 창립(2001년)하였다. 사회의 부패사건을 조명하고 성명과 논평, 토론회 등을 통해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반부패 정책 활동’과 우리사회의 주인이 될 청소년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정직의 가치를 심어주는 ‘투명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운동본부

흥사단 교육운동본부는 시민과 청소년이 함께 건강한 교육과 청소년 육성을 위한 대안을 만들어 실천하고자 창립(2002년)하였다. 독서토론회, 교육정책시민토론회, 인권감수성교육, 민주시민교육전문가양성과정, 평생교육실습 등을 하고 있으며, 풀뿌리교육모임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양한 흥사단 사업

지역 흥사단 활동

지역 현안에 따른 다양한 의제를 개발하여 더불어 사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의 다른 시민 단체들과 연대하여 풀뿌리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동맹수련활동

동맹수련은 높은 이상과 목적을 가지고 공동의식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수련이다. 동맹수련 활동으로는 정기산행, 독서 토론, 역사 답사, 환경 보호 활동 등이 있다.

독립유공자후손돕기운동

흥사단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사회에 알리고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을 예우하기 위해 장학금 지급, 캠페인, 인성교육 캠프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아카데미 청소년 사업

아카데미 운동은 1963년부터 도산 정신과 흥사단 이념을 보급하기 위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개했으며, 현재 약 10만 명에 달하는 회원이 사회 각 분야에서 지도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도 초·중·고·대학 등 전국 200여개 학교에서 흥사단아카데미 활동을 하고 있다.

사회교육, 출판, 장학 사업

시민들을 대상으로 강좌, 토론회 등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인재양성을 위해 장학생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도산 안창호 전기 등을 출판·보급하고 있다.

같이 보기

주석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