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성사 앞 저격 사건
단성사 앞 저격 사건은 제1공화국 1955년 1월 29일 자유당과 결탁한 이정재의 폭력 단체 동대문 사단 소속 김동진이 조봉암, 신익희 등 40여 명의 인물의 암살 명단을 폭로한 뒤 단성사 앞에서 저격당한 테러 사건이다.[1]
사건 개요
이정재는 자유당에 지시받은 세칭 제삼세력살해음모 계획을 했고 자신의 부하 김동진에게 조봉암, 신익희 등 40여 명에 인물들을 암살하라는 지시했다. 그러나 김동진은 이 명단을 폭로하면서 시경에 신고하였다. 이후 김동진은 잠적한 뒤 영화를 보기위해 단성사를 찾았고 영화가 끝난 후에 단성사 앞에서 이정재의 부하이자 재종질 이석재에게 저격당해 중상을 입었으며 이석재는 곧바로 구속, 검찰은 김윤도 검사의 지휘로 이 사건을 수사하여 이정재를 살인교사죄로 구속되었으나, 곽영주와 자유당의 방해로 새로운 검사로 교체되면서 이정재는 다시 석방되었으며 이석재만 구속기소되었다.[2][3][4][5][6][7][8]
주석
- ↑ 22年(연) 그발자취 경향신문 1967년 8월 15일 작성
- ↑ 殺人敎唆與否糾明 오늘 地檢서 綜合審問에 着手 團成社앞 狙擊事件 동아일보 1955년 2월 7일 작성
- ↑ [團成社앞 狙擊事件 來六日에 四回公判 동아일보 1955년 5월 27일 작성
- ↑ 李(錫載)氏에 七年求刑 「團成社앞 狙擊事件」 結審公判(寫) 동아일보 1955년 6월 23일 작성
- ↑ 團成社(단성사)앞 狙擊事件再起(저격사건재기) 경향신문 1960년 5월 28일 작성
- ↑ 이번엔 第三勢力造作陰謀(제삼세력조작음모) 對象人物暗殺(대상인물암살)계획 동아일보 1960년 6월 2일 작성
- ↑ 證人審問키로 團成社앞 狙擊事件//搜査難關逢着 李錫載逃避로 동아일보 1960년 6월 3일 작성
- ↑ 背信(배신)했다고 날狙擊(저격) 경향신문 1960년 8월 6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