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g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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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G44
Sturmgewehr 44.jpg
종류 소총
역사
사용국가 나치 독일 나치 독일
개발년도 1942년
제원
중량 5.22 kg

StG44 돌격소총(Sturmgewehr44 = StG44)은 2차대전나치독일에 의해 양산되고 모든 자동소총의 베이스가 된 사상 최초의 "돌격소총"이다. "Maschinenkarabiner" (기관 카빈총) 계획에 의해 개발된 소총의 최종 형태로, StG44가 개발되기 전까지 Mkb42(H), MP43기관단총 (Machinenpistole43), MP44기관단총 (Machinenpistole44)이라고 하는 시제품이 존재한다.

개발배경[편집]

제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소총들의 유효사거리는 800m 이상인 반면에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넘어오면서 '전격전'의 일환으로 급격히 짧아진 보병간의 교전거리는 400m 안팎인것을 감안, 독일군은 MP40 기관단총이 사용하는 9mm 권총탄보다 강하고 7.92mm 소총탄보단 위력이 약한 총탄을 가능한 많이 발사할 수 있는 새로운 화기의 필요성을 느겼다.

또한 독일군은 전쟁 초기에서부터 중량급의 기관총(MG34등)은 너무 커 기동력이 좋지 않다고 판명했다. 수비대는 고정 진지에 있기 때문에 기관총의 중량 제한은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육군이 재빠르게 이동, 공격을 실시하는 전격전이 확대하는데 따라 끊임없이 화력 부족에 빠져 가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 문제는 특히 시가전에서 확대됐다. 적병이 다음의 건물에 숨기 전에 제압 사격을 행하기 위한 기관총을 수반 시키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1차대전에 비해 짧아진 교전거리에 병사들은 기관단총(SMG)을 좀 더 빈번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돌격병으로서 알려진 분대가 이동 중인 적군을 재빠르게 사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9mm탄을 사용하는 독일군의 MP40 기관단총이 가진 200m의 유효사거리는 단거리여서 돌격병은 시가전에서만 가장 유용하게 운용되었다. 그 때문에 일단 시가로부터 멀어져 근교에 나오면 장거리 사격을 위해 다시 소총으로 전환 해야했다. 또한 문제는 소련 침공 시에도 발생했다. 소련군은 대전중 꽤 많은 양의 반자동소총과 자동소총인 SVT-38SVT-40, AVS-36를 배치하고 있었고 독일군의 Kar98k 소총을 압도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즉시 신형 반자동소총, Gew41(Gewehr41)을 개발을 하고 있었지만 운용에 문제가 있는 것이 판명되었다.

7.92mm × 33 "Kurzpatrone"(단소탄)

이러한 역할을 완수하기 위한 경기관총을 도입하는 몇 가지의 시도가 되었다. 그러나 독일군 제식 소총탄인 7.92x57mm Mauser을 사용했을 경우 반동이나 무게 등의 문제로 제어가 용이하지 못했다. 이 문제에의 해결책은 소총탄과 권총탄의 중간의 탄약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 중간 탄약의 실험은 1930년대부터 행해지고 있었지만 군은 남아도는 소총탄 때문에 그 사용을 끊임없이 거부해 왔다. 1941년에서야 실험용 탄약으로 7.92x33mm Kurz(단소탄)이 선택되었다.

신무기의 탄생[편집]

단소탄을 이용한 자동소총의 개발 계약은 '발터'사와 '헤넬'사 양쪽 모두에 보내졌다(설계 그룹은 휴고·슈마이저에 의해 통솔되었다). 그들은 Maschinenkarabiner 1942 (MKb42), 문자 그대로 "기관 카빈총"의 이름으로 무기를 제출하도록 요구되었다. 이렇게 개발되어 나온 두 신무기는 둘 다 다른 회사에서 제작된것에 불구하고 상당히 닮은 모양으로 설계되었다. 둘 다 철판 프레스공작으로 만든 가스작동식 이었으며 반자동과 완전자동의 발사 모드를 갖추고 있었다. 주로 반자동을 사용했으며 완전자동으로의 발사는 비상사태시 상부의 허락에만 사용이 가능했다. [1]

발터의 모델은 MKb42(W) 4,500정이, 헤넬사의 MKb42(H) 모델은 8,000정을 생산해서 동부전선의 일선부대에게 지급됐다. 두 총들이 모두 실험대에 오른것이다. 이 단계에서 발터사의 MKb42(W)은 피스톤 메커니즘에서 결함이 발견되었다. 한편 MKb42(H) 1942년 겨울 동부전선에서 고립된 부대에 이 총을 공수 보급해 주었더니 압도적인 화력으로 포위를 분쇄하고 탈출에 성공했다는 기적적인 일을 만들었다.

이에 독일군은 헤넬사의 MKb42(H)가 발터사의 MKb42(W)보다 우수한다고 판명, 군부은 몇 개의 부품 교환을 더한 다음의 버전을 헤넬사에게 요구했다. 이들을 개량하여 1942년 11월에 현장에 보내졌고 개량을 한층 더 더해 1942년 후기부터 1943 연초기에 걸쳐, 11,833정이 실전 시험용으로 양산되었다.

The early Haenel MKb 42(H), 헤넬사의 MKb42(H)
  • MKb42(H) 돌격 소총은 전장 940mm, 총열길이 364mm, 중량 4.9kg 이었으며 총구속도는 640m/sec 다. 30발 들이 탄창을 사용했으며 유효사거리는 400미터이고 분당 발사속도는 500발이다.

눈속임[편집]

신무기가 한창 개발 중인 1942년 후반에는, 제3 제국 내에서의 내부 항쟁이 최고로 격화되고 있었을 때이다. 히틀러는 더욱 더 혼란에 빠져 헤르만 괴링이 제작시킨 FG-42의 개발과 육군의 Gew41 반자동소총의 개발을 중지시킬 뿐만 아니라, 모든 신무기 개발 계획을 중지시켰다. 애석하게도 여기에는 MKb42(H)도 들어가 있었다. 이 소총은 단소탄이라는 새로운 탄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군의 배급적 혼란문제를 히틀러가 염려했던 것도 한 요인이다.

중지된 MKb42(H)는 분명 우수한 무기였음으로 총통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발을 몰래 추진하기위해 '눈속임'으로 소총탄을 사용하는 신 계획 Mkb43(G)를 착수하였다. 진실은 이것을 양산하는 의도는 없었지만 히틀러가 소총 개발 상황에 대해 물었을 때에 항상 이 소총의 시제품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 사이에 원래의 MKb42(H)는 명칭을 Maschinenpistole 43 (MP43 ; 43년형 기관단총)이라고 불러 기존의 기관단총의 개량판이라고 위장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의 진상이 밝혀지고 히틀러는 한 번 더 이 계획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1943년 3월에 이 총기의 평가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히틀러는 계획의 실행을 계속하는 것을 인정했다.

StG44[편집]

1944년 4월 6일,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a) 기존의 MG42 기관총은 이름을 그대로 유지
   b) 기존의 Gewehr43 반자동소총은 Karabiner 43 (K43) 반자동 소총으로 명명  
   c) 기존의 신무기인 MP43은 MP44으로 명명
1944년 독일 아헨(Aachen)에서 StG44로 무장한 독일병사

1944년 7월의 동부 전선의 지휘관들의 여러번의 회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라는 히틀러의 질문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좀 더 많은 신형 소총들" 이었다. 이 대답은 히틀러에게 조금 혼란을 일으켰지만, 일단 무엇이 필요한가를 히틀러가 깨달았을 때 히틀러는 MP44의 풀 생산하는 허가에 합의했다. 선전선동적으로도 승리하기 위해,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소총인 것을 강조하기 위해 문자 그대로 「1944년 형 Strumgewehr(돌격소총)」즉 StG44라고 이름 붙였다. 드디어 독일군은 현대의 돌격소총의 원조로 불리는 "StG44"를 탄생시킨 것이다.

돌격소총으로써의 StG44는 휴대에도 문제가 없었으며, 근접전에서의 유효사거리는 300m로써 충분했다. 기관단총은 200m이니 StG44는 원거리에선 보다 고정밀도의 사격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표준의 소총의 500m 이상의 장거리에서는 사정거리도 위력도 약했으나 실전에 투입된 상당수는 시가전 등 근거리에서의 전투나 삼림 지대에서의 전투였으므로 그다지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탄속은 650m/sec, 분당 발사속도는 600발로써 화력 또한 강했다. 탄환도 7.92x33k로 소총탄 보단 약하고 권총탄 보단 강해 근접전에선 더욱 유용했다.

1943년10월,ZF41을 장착한 MP43을 무장한 병사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전쟁 말기에 목재 부족 때문에 금속부품이 많이 쓰여서 무게가 총알 빼고도 5.2kg이나 나간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7.92x33mm 단소탄을 쓴다고 하지만, 현대의 소구경 소총탄과 달리 만만치 않은 반동이 있었으나, 그걸 무거운 총기의 무게가 받쳐주니 명중률 하나는 무척 좋아졌던 것이다. 또한 높은 명중률을 이용해 ZF4, ZF41 스코프를 장착할 수 있었고 총류탄 발사기를 장착해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곡사총신이라고 불리는 크룸 라우프(Krumm lauf)를 총구 앞에 달아 고정해서 쏘며 시가전이나 참호전, 전차 승무원용으로도 사용되었다. 보병용 "I"버전과 전차병용 "P"버전으로 휨각도는 30도 45도 60도 90도 가있다. 전쟁 후반이 되자, 당시 독일의 진보된 과학 기술력으로 획기적인 장치가 달리기도 했는데, 이른바 흡혈귀([뱀필]Vampir) 이라고 부르는 ZG1229 적외선 액티브 야시경으로써 심야 전투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벌지전투당시 StG44를 사격하는 독일병사

나치 독일 제 3제국에 있어서 Mkb42(H)에서 최종적으로는 StG44로서 종전까지의 프로토타입까지 포함해 425,977정이 양산되었다. 하지만 많은양이 공습에 의해, 또는 공장에서 운송도중 파괴되었다. 그러나 StG44는 특히 동부전선(이 소총이 최초로 테스트된 장소이기도 하다)에 있어 매우 훌륭한 소총인 것을 실증 했다. StG44와 함께 숙련된 병사는 MP40의 사정거리에서는 부족한 장거리에서도 또 Kar98k에서는 너무 가까운 시가전에서도 보다 개선된 소총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MP43, MP44, StG44는 사소한 개량을 더해 이름을 바꾸었을 뿐의 거의 동일한 무기이다. StG44 "Strumgewehr"(Sturm= 「돌격」, Gewehr= 「소총」)로 불려 일반적으로는 「돌격소총」이라고 번역되었다. 이 소총은, 특색으로서 기관단총과 소총을 조합한 것이다. 이 소총은 자동소총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돌격소총이란 신 개념은 1차 대전처럼 사거리 1천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싸울 이유가 전혀 없는 새로운 전장 환경에 적응한 산물이다. 2차대전 말엽에 등장한 이 StG44 덕분에 2차대전 끝나고 지금까지 전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돌격소총 이란 개념을 받아들였고, 아직까지 그 개념은 깨지지 않고 면면히 흘러내려와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전쟁 말기[편집]

헤넬사 발터사 뿐만이 아니라 마우저사도 돌격소총의 개발을 독자 적으로 착수했다. 이어서 블로우백 방식을 채용한 StG45(M)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하였다. 이전에 이미 개발된 Mauser Gerät 06(H) 돌격소총의 기계구조를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Roller-delayed 폐쇄구조를 가진 블로우백 작동방식을 이용하고 7.92 x 33 mm구경의 탄환을 분당 450발 발사할 수 있었다. 이전에 사용하던 30발 탄창과 혼용할 수 있었고 포복자세시 더욱 사용하기 편리한 10발짜리 짧은 탄창 또한 사용할 수 있었다.

StG45(M)는 StG44를 대신하여 사용될 수 있도록 예정됐다. 왜냐하면 2차대전말 떨어진 독일의 공업능력을 고려해 StG45(M)는 StG44 보다 값이 싸고 (44는 70마르크, 45(M)는 약 45마르크) 생산시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StG45(M)는 독일군에게 보급되지 못했다. 단지 30정만이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생산되었을 뿐이었다. 내부도 간단했고 고장도 적었지만, 너무 늦은 1945년이라 실전의 사용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후에, CETME, H&K G3 및 H&K MP5에 인계되었다.

전후[편집]

현재 전 세계에 뿌려진 수많은 소총들이 바로 이 StG44의 자식들 이란 말도 과언이 아니다. 소련은 특히 타국보다 신속히 돌격소총의 개념을 적응시켰다. AK47은, StG44와 같이 분류된 탄약을 사용해 설계 사상을 계승했다.

AK-47

외형으로 유추되기는 AK47는 StG44에 강한 영향을 미쳤을것 같지만 실제로도 그렇다. AK47의 개발자인 Kalashinikov는 AK47를 개발할 당시에 StG44를 몰랐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당시 StG44는 거의 모든 연합군의 총기제작 설계 데스크에 연구용 샘플로 올라왔던걸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1945년 말 독일의 패전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미군, 소련은 당시 독일 기술자 영입에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총기 공장지역이 소련군에게 점령되고 두 천재적인 총기 기술자들이 소련군에게 체포된다. MP40와 StG44를 개발한 Hugo SchmeisserMG42기관총을 개발한 Werner Gruner이다. 또한 이들은 Kalashnikov 지휘 하에 배치되었고 소련군의 개인화기 개발을 가속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AK47은 소련군이 MP40, StG44, MG42 개발자와 수만 장의 도면을 참조하고 StG44의 탄약에도 큰 영향을 받았으며 StG44의 사용목적과 개념을 그대로 따라했다. 양 탄약의 탄도 성적도 거의 비슷하다. 다만 내부의 기계적 구조는 차이가 있다. 이 AK47 소총은 돌격소총의 개념을 보다 넓히게 했다.

또한 AK47의 개발자인 Kalashinikov는 2009년이 되서야 비로서 자신이 AK47를 개발할때 StG44를 개발한 총기제작사 "Hugo Schmeisser"의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2]

G3소총의 원형인 CETME는 StG44, 45(M)의 최종 개량형이다. (사진은 G3A3)

그리고 AK47보다 M16도 기술적으로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다. M16의 프로토타입 제작 당시 StG44의 먼지덮개와 완충 스프링을 그대로 이용했다. 이외에도 독일 기술자들이 2차대전후 망명한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에서 이 총을 무단복제했는데 후일 서독군의 제식총 자리를 꿰차는 G3 소총의 원형이 되는 스페인의 세트메(CETME) 소총은 사실상 StG44, 45(M)의 최종 개량형이란 말을 들을 정도이다.

전쟁후[편집]

생산시설을 접수한 소련에 의해 전후에도 한동안 생산되어 주로 소련 위성국들에게 넘겨져 재무장 용도로 사용되었고 AK47이 등장한 후에는 제3세계에 넘겨졌다. 동독의 경우 89년 체제 붕괴시까지 일부 부대에서 현역으로 쓰기도 했다. 또한 원래 생산시설을 전쟁 배상금조로 독일에서 뜯어간 나라들이 있는데 유고슬라비아가 그 좋은 예로써, 유고 내전이나 아프리카 분쟁지역 등지에서는 지금도 모습을 드러낸다.

현재 진행 중인 이라크전에서도 몇몇 집의 지하실에서 Gew98과 같이 모습을 드러내 그것을 발견한 미군들이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1991년 모가디슈 전투(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소재)에서도 적지 않은 STG44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며, 소말리아 내전을 취재한 사진에서도 STG44를 들고 있는 민병의 모습이 종종 보였다. 레바논 전쟁 당시 PLO, 현대 레바논의 히즈불라도 적지 않은 수량을 아직 쓰고 있다.

실제로 동독군 것을 반자동 전용으로 개조한 것과 유지 부품은 지금도 민간판매용으로 시장에 나오고 있다고 하며 다만 미국의 자동 총기 규제 때문에 유럽 시장에서만 팔리고 있다. 또한 원래 STG44의 탄약은 구하기 힘들다는 것에 흔한 경기용 탄약인 .22LR 탄약을 쓰도록 개조한 개조총기 및 아예 처음부터 .22LR을 쓰도록 만든 리프로덕션 상품도 계속 나오고 있다.

StG44의 시장이 커지니 심지어는 MKb42(H)과 MP43까지도 최근에 생산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아예 7.92 X 33 MM 탄환을 발매한 탄약제조회사까지 나왔다.[3]


전시 파생형[편집]

  • MKb42(W) - 발터사의 프로토타입 돌격소총 모델이며 메커니즘에 문제가 발견되었다.
  • MKb42(H) - 헤넬사의 프로토타입 돌격소총 모델이며, 독일군에게 채택되어 StG44의 원형이되었다.
  • MKb42(A) - Anker사가 설계한 프로토타입 돌격소총으로 7.92x33 k 단소탄을 이용한다는 것 외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 MKb42(G) - Gustloff werke 사의 프로토타입 돌격소총으로 양산하는 의도는 없었지만 히틀러의 눈속임을 위해 존재한것이다.
  • MP43, MP44 - 이름이 StG44로 명명되기전 명칭으로 사소한 차이뿐 모두 같은 총기라 봐도 무방하다.
  • StG44 - 사상최초의 돌격소총으로 독일군에게 제식되어 사용했다.
  • StG45(M) - 마우저사가 제작한 프로토타입 돌격소총이다.
  • StG45(H) - 헤넬사의 간략화된 프로토타입 돌격소총으로 내부구조는 StG44와 비슷하지만 생산공정이 간략화 되었다.

참조링크[편집]

  1. "Machine Carbine Promoted," Tactical and Technical Trends, No. 57, April 1945.
  2. [1], Mihail Kalashnikov Admits German "Help" To Create The AK-47 Rifle,February 17, 2009
  3. STG44 - 엔하위키 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