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에를리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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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0일 (일) 16:1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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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에를리히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1854년~1915년)는 독일미생물학자·면역학자·화학요법의 창시자이다. 슐레지엔에서 출생, 브로츠와프, 스트라스부르, 프라이부르크, 라이프치히의 각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청년 시대부터 색소에 의한 조직 염색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고, 가열 염색 결핵균 표본이 기연(機緣)이 되어서 코흐의 연구소에 초빙되어 면역학(免疫學) 연구에 종사했다. 뒤에 베링의 청에 응하여 항독소 혈청 제조 기술의 개량에 성공, 베를린 교외 스테그리츠 국립 혈청검정 겸 혈청연구소 소장이 되었으며, 이어서 이 연구소의 규모를 확대하여 이전(移轉)한 프랑크푸르트의 실험치료법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그 동안 혈청 검정법·면역 단위를 확립하여 오늘날 각국에서의 검정법의 규범을 만들었다. 또 면역 반응의 이론으로서 측쇄설(側鎖說)을 제창했다. 이와 같은 면역학에 대한 업적으로, 1908년 메치니코프와 함께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1906년, 스파이엘 부인의 기증에 의하여 연구소를 설립하고, 여기서 색소요법으로부터 화학요법에로 연구를 추진하고, 1910년 606호(살바르산)을 창제하여 화학요법의 길을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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