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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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5년 전 (InternetArchiveBot님) - 주제: 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2월)

Map[편집]

Better than no map at all, don't you think? -- 李博杰  | Talk contribs 2009년 4월 15일 (수) 21:43 (KST)답변

I think to inappropriate. --가람 (논의 · ) 『One day, one hour』 2010년 9월 4일 (토) 20:14 (KST)답변
Cool story bro, you found something from one year ago whilst wikihounding me. -- 李博杰  | Talk contribs 2010년 9월 5일 (일) 18:33 (KST)답변
I think 'wikihounding' is inappropriate in this discussion. He just wrote his opinon.진실과 환상 (聞きたい) 2010년 9월 5일 (일) 18:44 (KST)답변

And I don't understand why Chinese territory is expanded to the Korea Peninsula. I learned, in that time, en:Four Commanderies of Han was almost recovered by goguryeo.진실과 환상 (聞きたい) 2010년 9월 5일 (일) 18:49 (KST)답변

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2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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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9년 2월 17일 (일) 12:22 (KST)답변

[1] 월지 라는 문헌도 있다는 내용은 혼선 삭제가 필요해 보입니다.[편집]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이란계 민족이 오아시스 도시로 발전시켰다. 그리스 사초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마케도니아 왕국 원정군에 끝까지 저항한 소그드인들의 도시 마라칸다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었다.

중국에서는 후한서 등의 역사서에 ‘강국’(康國)으로 나타나 있으며, 소무구성(昭武九姓)[3] 의 하나로 거론되었고, 왕족은 월지의 자손으로 언급되어 있다. 현장과 후세의 아랍, 페르시아 지리서에 따르면 소그디아나, 트란스옥시아나의 중심으로 불리고 있다. 도시 국가의 연합체였던 소그다아나는 사마르칸트의 지배자가 때로는 도시 국가 연맹 전체의 맹주가 될 수 있었으며, 8세기 초에는 사마르칸트 왕 데이워스티투가 소그드 왕을 자칭하고 있었다.

712년에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에 의해 세워진 우마이야 왕조의 아랍 연합군에 정복되어 이슬람화가 시작되었다. 이슬람 시대를 통해 부하라와 함께 마라와 안나폴의 중심도시로 발전했다. 759년 이슬람 세계 최초의 제지 공장이 운용된 것도 사마르칸트의 것으로 전해진다.

1060년에 완성한 중국 당나라의 역사서 신당서 서역전에는 강국(康國) 또는 살말건(薩末建), 실만근(悉萬斤)으로 기재가 되어 있다.

소무구성 왕실 성인 온씨가 고구려 신라 백제에 존재하고, 부여 대소왕 동생이 세운 갈사부여, 말갈, 갈족, 자갈=석씨 무관하지 않고, 월지(月氏, 月支)는 중앙아시아에 존재했던 국가지만, 그런 이유로 한반도에 까지 영향을 줬는데, 백제 시조 온조 성씨가 소무구성 강국 왕실 성씨란 점에서 부여계와 연관성있겠지만, 마한이 수장국인 목지국이 백제에 멸망했다는점에서 마한 수장국이 월지국일 수는 없습니다. 백제가 온조가 세운것이 월지국일 순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