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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 초상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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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 초상 일괄
(蔡濟恭 肖像 一括)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
종목보물 제1477호
(2006년 12월 29일 지정)
수량3점
주소시복본 : 수원시 선경도서관(소유 : 수원시)
금관조복본 : 국립고궁박물관 임시보관(소유 : 채규식)
흑단령포본 : 부여박물관(소유 : 도강영당)
정보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채제공 초상 일괄(蔡濟恭 肖像 一括)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도세자의 신원 등 자기 정파의 주장을 충실히 지키면서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 인물인 채제공의 초상화이다. 2006년 12월 29일 대한민국보물 제1477호로 지정되었다.[1]

개요[편집]

수원시 소장 <시복본(1792년작)>은 채제공 73세상으로 사모에 관대를 한 옅은 분홍 색의 관복 차림에 손부채와 향낭을 들고 화문석에 편하게 앉은 전신좌상이다. 우측 상단에 '聖上 十五年 辛亥(1791) 御眞圖 寫後 承 命摸像 內入 以其餘本 明年 壬子 (1792) 粧'이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 '畵者 李命基'라고 밝혀 놓았다. 이어서 우측 상단에 채제공이 직접 쓴 자찬문이 있다.[1]

시의 내용대로 정조로부터 부채와 향낭을 선물받은 기념을 표시하기 위해서인 듯 손을 노출시켜 부채와 향낭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수원시에 함께 소장 되어 있는 유지 초본 3점 또한 중요한 자료이며 향낭도 함께 남아 있다.[1]

<금관조복본(1784년작)>은 65세 때 초상으로 왼편에 채제공의 자찬문을 이정운(李 鼎運 1743-?)이 썼다. 서양화법을 따른 명암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장식적인 금관조복을 금박, 선명한 채색, 명암법 등으로 화려하게 표현했다. 사실성과 장식성을 어우러지게 하여 조선 초상화의 뛰어난 수준을 잘 보여준다. 누가 그렸는지 밝혀져 있지 않으나 입체감이 두드러진 안면과 옷주름의 표현, 그리고 바닥의 화문석 표현기법으로 볼 때 이명기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1]

<흑단령포본>은 오사모에 쌍학흉배의 흑단령포를 입은 전신의좌상으로 본래 夫餘 道江影堂에 모셔져 있던 것이다. 그 안면의 기색으로 볼 때 부여본은 앞에 살펴본 73 세상과 흡사하다. 안면과 옷주름의 입체감 표현, 투시도법에 의한 화문석과 족좌와 의자의 사선배치는 역시 이명기의 초상화법이다.[1]

조선후기 채제공이 차지하는 역사적 위상이 높으며 초상화를 그린 이명기의 회화적 수준 역시 당대의 최고로 꼽힌다. 게다가 <채제공영정> 일괄(시복본금관조복본흑 단령포본)은 조선후기 문인 초상화의 각종 유형을 다 갖추고 있고 유지초본까지 전하여 조선시대 초상화 연구에 학술적 가치도 높다. 초상과 아울러, 정조에게 하사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향낭과 영정함도 일괄로 지정 예고한다.[1]

각주[편집]

  1. 문화재청고시제2006-112호,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6410호, 1191면, 2006-12-29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