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차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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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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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조선[1]→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
생년월일 | 1941년 4월 5일 | |||
출신지 | 일본 제국 미야기현 센다이시[2] | |||
사망일 | 1979년 7월 5일 | (38세)|||
사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청진시 |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
출신학교 | 도호쿠 고등학교 | |||
프로 입단 연도 | 1960년 | |||
첫 출장 | 1960년 | |||
마지막 경기 | 1964년 | |||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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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대표팀 | ||||
윤차랑(尹次郎, 1941년 4월 5일~1979년 7월 5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야구 선수이다.
1941년에 일본 제국 미야기현 센다이에서 태어난 그는 센다이는 도호쿠 고등학교에 입학해 야구부에 입부한 뒤 2학년 때는 핵심 선수로 활동하며 모교의 2년 연속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본선에 진출에 기여했다. 졸업 이후에는 700만엔의 계약금으로 다이요 훼일스에 입단했다.[2]
1965년 5월 23일, 그는 재일 조선인 북송사업을 통해서 가족과 함께 일본 니가타항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청진으로 떠나는 북송선을 탔다.[2]
그는 청진에서 철공소 노동자로 활동하며 실업 야구단에서 활동했다. 평양 철도체육단 야구단에 동생과 함께 소속되기도 했던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표팀 투수로 활동하기도 했다.[2]
1979년 7월 5일, 청진에서 사고사했으며, ‘사회주의건설열사’라는 칭호가 붙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