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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켈 작업중/ 역사 중간[편집]

헨켈(독일어: Henkel AG & Co. KGaA)은 전 세계적인 사업망을 갖춘 독일의 종합 생활용품 업체이다. 본사는 독일 뒤셀도르프에 있으며,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DAX 지수 평균을 구성하는 30대 기업의 하나이다. 주 사업분야로 세제&홈케어, 뷰티케어, 접착 테크놀러지스가 있다.


사업영역[편집]

헨켈은 세 가지 사업부문으로 이루어져있다.

세제&홈 케어[편집]

가정에서 쓰이는 세제살충제 등 청소용품들이 주를 이룬다. 자회사로 크로락스 코리아를 인수합병해 사명을 변경한 헨켈 홈케어 코리아(유)가 있다.

뷰티 케어[편집]

샴푸, 치약, 염색약 같은 화장품 제품과 구강관리 용품들이다. 녹차사업

접착 테크놀러지스[편집]

접착제밀봉제 그리고 기능성 코팅제품들을 판매한다. 자회사로 원래 헨켈 코리아를 2009년 7월에 사명을 변경한 헨켈 테크놀러지스(유)가 있다. 원래 이전까지는 헨켈 코리아 오토모티브, 럭키실리콘 등 여러 자회사들이 있었지만, 테크놀러지스가 생길 때 흡수 통합되었다.

브랜드[편집]

국내에 정식 판매되고 있는 브랜드들만 기술하였다.

세제&홈 케어[편집]

대표적인 브랜드로 헨켈의 가장 유명한 브랜드인 퍼실이 있다. 퍼실은 1907년에 최로로 출시된 자동 세탁세제이며, 이 이름은 주된 재료인 perborate(과붕산염) 과 silicate(규산염)의 앞자리를 따서 지어졌다. 또 섬유유연제인 버넬과 주방 세제 프릴 등이 있으며, 국내의 홈키파, 홈매트, 컴배트로 잘 알려진 크로락스 코리아의 살충제 사업 분야를 2004년 11월에 인수하였다.

뷰티 케어[편집]

염색약이나 샴푸등 다양한 상품의 SYOSS와 염색약 Diosa/Freshlight등이 있다.

접착 테크놀러지스[편집]

접착제인 록타이트/파텍스, 이밖에도 기업용 브랜드인 BONDERITE/TECHNOMELT등이 있다.

역사[편집]

설립~2차세계대전 전[편집]

  • 1876년 9월 26일, 28세의 프리츠 헨켈은 동업자 두명과 함께 독일 아첸(Aachen)에 헨켈& 키(Henkel &Cie)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최초 제품으로 물유리(water-glass)로 만든 파우더 세제를 판매했다. 당시 무게 단위로 판매되던 다른 세제와 달리 헨켈의 이 중질 세제는 간편한 포장에 담겨 판매되었다.
  • 1878년, 독일 최초의 브랜드 세제 헨켈의 ‘표백 소다(Bleich-Soda)’가 탄생했다. 물유리와 소다를 이용해 만든 표백소다는 프리츠 헨켈이 직접 연구해 개발한 상품이었다. 소다는 뒤스부르크(Duisburg)의 기업 마테스 앤 베버(Matthes &Weber)로부터 구입했다.(1917년, 헨켈은 이 회사를 인수한 뒤 1994년에 매각했다.) 또한, 효율적인 운송 연결로와 판매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헨켈은 루르(Ruhr) 지역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라인(Rhine)강 근처 뒤셀도르프(Düsseldorf)로 회사를 옮겼다. 루르 지역은 19세기 이후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공업 단지가 되었다. 
  • 1879년, 프리츠 헨켈이 기업의 유일한 소유주로 등록되었다. 헨켈 표백소다 판매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뒤셀도르프의 슈첸슈트라쎄(Schützenstraß)에 헨켈은 철로를 갖춘 자체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 1883년, 기업의 유동성을 개선하고 판매 직원들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프리츠 헨켈은 세제와 더불어 다른 상품들도 판매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1884년부터 파란색 염색제 울트라마린(colorant ultramarine), 글로스 스타치, 액상 청소 용액, 청소용 포마드, 소고기 추출물, 헤어 포마드를 판매 했다.
  • 1884년, 원자재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기업 자체의 고품질 물유리(water-glass)를 개발하기 위해서 프리츠 헨켈은 이전 제휴 업체들로부터 라인 바세르글라스파브릭(Rheinische Wasserglasfabrik)공장을 구매한 뒤 이 공장과 모든 기기 장비를 뒤셀도르프로 옮겼다.
  • 1885년, 헨켈은 최초로 외국에서 열린 박람회에 참여했다. 1886년, 네덜란드 앤트워프(Antwerp)에서 열린 국제 산업 박람회에 참여하여 명예의 인증서를 수여 받았다. 또한 헨켈은 오스트리아에 최초로 해외 판매점을 열었고 이를 위해 칼 파테(Carl Pathe)가 전년도에 헨켈 대표로 비엔나를 방문했다. 
  • 1889년, 헨켈은 네덜란드와 스위스에서 최초로 사업 활동을 개시했다.
  • 1893년, 헨켈은 영국 및 이탈리아와 최초로 사업 제휴를 맺었다. 또한 헨켈은 설립당시부터 가족경영 체제였기에 17세의 프리츠 헨켈 주니어((1875 - 1930)가 수습 사원으로 헨켈에 입사했고, 헨켈에서 판매 훈련을 마친 그는 곧 판매 분야에서 아버지의 오른팔이 되었다. 그는 헨켈의 브랜드 제품 사업을 더욱 견고하게 다졌으며 이미 성공을 거두고 있는 광고 분야를 더욱 발전시켰고 헨켈의 현장 서비스 분야를 담당했다.
  • 1895년 3월 9일, 헨켈의 등록 상표에 사자 마크가 삽입됐다. 1896년 헨켈의 ‘표백 소다’ 상표가 등록됐다. 1878년 이후 헨켈의 상표명인 ‘표백-소다’와 사자 마크, 종이 포장은 헨켈의 합법적인 등록 상표이다. 
  • 1904년 7월 25일, 프리츠 헨켈 주니어가 헨켈의 파트너가 되었으며 헨켈은 합명 상업 회사 체제(general commercial partnership)로 전환됐다.
  • 1905년 4월 25일, 프리츠 헨켈의 막내 아들, 휴고 헨켈 시니어 박사(1881 - 1952)가 화학자로 헨켈 기업에 입사했다. 그는 화학 제품 및 기술부 책임자가 된 뒤 체계적인 연구의 바탕을 마련하고 첨단 기술과 새로운 원료를 도입했다. 1908년에 그는 헨켈 기업의 연대 책임 파트너(liable partner)가 됐다.
  • 1907년 6월에 세계 최초의 세탁기 전용 세제이자 최초의 자가활성세제인 퍼실(Persil)이 탄생했다.
  • 1910년 헨켈은 증발 설비를 갖춘 글리세린 공장을 설립했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헨켈은 유럽 최대의 글리세린 생산 기업이 됐다.
  • 1911년 헨켈의 최초의 기름 추출 공장이 가동되었다. 또한 새로운 판지 상자 공장과 시험용 세탁장을 건설했다. - 삭제고려중
  • 1912년 뒤셀도르프-홀트하우젠의 총 생산량은 49,890톤으로 증가했다. 퍼실의 생산량은 출시 5년만에 19,750 톤으로 총 생산량의 40%를 차지했다. - (1907년 문단과 병합 고려중)
  • 1913년 1월 29일에 헨켈은 스위스 바젤-프라텔른(Basel-Pratteln)에 최초의 계열사 헨켈 &키 AG(Henkel &Cie AG)를 설립했습니다. 1923년까지 이 계열사는 해외에 건설한 유일한 계열사였다.
  • 1916년 헨켈은 홀트하우젠에 새로운 물유리 공장을 세웠으며 이 공장은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다. 원자재 부족과 정부의 지방(fat) 규제로 인해 9월 1일부터 비누를 첨가하지 않은 산소 함유 세제인 전시(wartime) 수준의 퍼실만이 공급되었다.
  • 1917년 헨켈이 메테스 앤 베버(Matthes &Weber)의 모든 주식을 인수함에 다라 뒤스브르크(Duisburg)에 위치한 이 소다 공장은 독일에서 헨켈의 첫번째 계열사가 되었다. 또한 막바지로 치달아가는 전쟁으로 인해 원자재 품귀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 1918년 헨켈은 퍼실 생산을 모두 중단하고 대신 전쟁을 위한 가루 비누를 생산했다.
  • 1920년 지방(fat)에 대한 정부 규제가 해제되자 헨켈은 정상적인 품질의 퍼실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붉은 색 타원형 모양의 기업 마크가 처음으로 포장지에 등장했다.
  • 1921년 마그데브루크(Magdeburg)와 베를린 사이에 위치한 겐딘(Genthin)에서 8월 4일 헨켈 GmbH 겐딘(Henkel GmbH Genthin) 공장 설립을 위한 주춧돌이 놓여졌다. 이로써 1920년대 독일에서 가장 근대화된 세제 공장 시설이 설립되었다. 이 공장은 1945년에 정부에게 강제 몰수 된 뒤 1949년에 GDR의 국영 기업이 되었다가 1990년에 헨켈이 다시 매입했다.
  • 1922년 퍼실의 가장 유명한 광고 캐릭터인 화이트 레이디(Whilte Lady)를 처음 도입했다.
  • 1923년 1월 11일 프랑스와 벨기에 군대가 라인부근을 점령했다. 그러자 퍼실의 제품 포장에 쓰이던 접착제의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헨켈은 접착제 자체 생산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헨켈은 접착제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6월 26일에 최초로 인근 기업에 접착제를 판매했다.
  • 1929년 휴고 헨켈 박사는 미국 방문에 영감을 얻어 1928년, 금속 표면 처리에 인산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테스트를 실시했다. 산업용 및 전문가용 청소 세제 생산이 1929년 이른 봄부터 시작되었으며 P3 라는 브랜드명으로 판매되었다. -삭제고려중
  • 1930년 1월 4일 프리츠 헨켈 주니어 박사가 5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3월 1일에는 헨켈 창립자이자 상업 고문관 프리츠 헨켈 시니어가 8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이후 휴고 헨켈 박사가 헨켈의 경영직을 계승했다. 1933년 휴고 헨켈의 장남 조스트 헨켈(Jost Henkel, 1909 - 1961)박사가 헨켈 기업에 합류했다. 경제학자인 그는 1942년부터 2차 세계 대전 내내 헨켈을 이끌었다. 
  • 1937년에 헨켈은 오스트리아, 벨기에, 체코슬로바키아, 덴마크,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스웨덴, 스위스 등 유럽 12개 국가에 기업을 소유하고 있었다. 전쟁 후에 이 기업들은 모두 징수당하거나 정부 기관으로 편입되었다.
  • 1938년 국가 사회주의자들의 압력에 따라 휴고 헨켈 박사는 새로 설립된 고문 위원회 및 감독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헨켈 가족 3대가 기업의 운영권을 맡게 되었다.
  • 1939년 9월 1일 2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독일 정부는 일반 가루 세제만 사용해야 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헨켈은 퍼실 등 200여 개 이상의 제품들을 현격하게 줄이거나 재정비해야 했다. 전쟁 중 헨켈 또한 전쟁의 포화를 비켜갈 순 없었고, 수많은 공장들이 폭격을 맞았다. 또한 전쟁기간동안 외국 민간인 노예 노동자들과 전쟁포로들은 공장에서 일을 했었다. 그에 따라, 헨켈은 전쟁 후 손해 배상에서 큰 몫을 차지했다.
  • 1941년 연말에 전쟁 복무로 소환된 직원들을 대신하여 343명의 외국인과 194명의 전쟁 포로들이 뒤셀도르프-홀트하우젠의 공장에서 일했다. -삭제 고려중
  • 1942년 연말에 435명의 외국인과 127명의 전쟁 포로들이 뒤셀도르프-홀트하우젠에서 일했다. -삭제 고려중
  • 1945년 4월 16일에 미군이 헨켈의 뒤셀도르프 시설을 점령하여 1/3을 몰수했다. 6월 5일, 뒤셀도르프에 있는 영국군 지휘 본부가 미군으로부터 점령권을 인계 받았다. 7월 20일부터 영국 군정부는 제품 생산을 점차적으로 허용했다.
  • 1945년 9월 20일, 헨켈의 가족 5명과 경영 위원회 및 감독 위원회의 일원 7명이 억류되었다. 1947년 11월 21일 억류된 헨켈 일원들이 기업으로 복귀했다.1948년 휴고 헨켈의 둘째 아들 콘라드 헨켈 화학 박사(1915 – 1999)가 헨켈 기업에 합류했다. 1960년대부터 그는 헨켈을 주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가족 기업의 특성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기업 그룹으로 바꾸었다.
  • 1954년부터 일본 내 헨켈 제품 판매권 부여를 시작으로 헨켈은 일본에서의 사업영역을 넓혀나갔다.
  • 1960년 스탠다드 케미컬 프로덕트(Standard Chemical Products)를 합병한 헨켈은 미국 화학제품 시장에 진출했다. 미국 기업 로드 코퍼레이션(Lord Corporation) 으로부터 라이센스 허가를 받은 헨켈은 고무와 금속을 결합하는 접착제(브랜드: 케모실) 시장에 진출했다.1969년 세계 최초의 스틱형 접착제 프릿(Pritt)이 처음 출시되었다. 같은 해 프릿의 수출이 시작되었고 프릿은 헨켈의 가장 성공적인 글로벌 브랜드가 되었다.
  • 1973년 퍼실 제조 방식이 바뀌었다. 1959년 이후 처음으로 헨켈은 퍼실이라는 이름과 개발 년도를 제품명에 사용하던 방식을 포기하고 브랜드명에 더욱 중점을 두었다.
  • 1975년 헨켈(Henkel GmbH)은 주식 합자 회사 (KGaA) 및 금융 지주회사가 되었으며 70개의 자회사 및 계열사를 보유하게 되었다. 정식 합자회사가 되면서 1985년에 주식 시장에 상장될 수 있었다.
  • 1980년 콘란드 헨켈 박사가 감독 위원회 및 주주 총회 위원장 직을 인계받았다. 콘라드 헨켈은 헨켈 가족 중 마지막으로 헨켈의 회장 겸 CEO가 되었다. 그의 자리는 헬멋 실러(Helmut Sihler) 박사가 이어 받았다. 
  • 1985년 헨켈의 주식 상장으로 헨켈 우선주가 주식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헨켈은 최초로 전세계에 헨켈 재정 보고서를 발표했다. 1986년 6월, 처음으로 연간 주주 총회가 열렸다.
  • 1990년 콘라드 헨켈(Konrad Henkel) 박사가 감독 위원회 및 주주 총회 위원장직을 헨켈 창립자의 증손자인 알프레흐트 뵈스테(Albrecht Woeste)에게 넘겨 주었다. 중부 및 동유럽의 공산주의 시대가 끝이 나면서 러시아의 침보로크노(Chimvolokno) 세제 공장의 주식 보유를 시작으로 헨켈의 동유럽 진출이 시작됐다.
  • 1997년 헨켈은 록타이트 코퍼레이션의 모든 주식을 취득하고 합병했다. 록타이트를 합병한 헨켈은 전세계 접착제 시장의 선두 기업이 되었다.
  • 2004년, 헨켈의 다이얼 코퍼레이션 (Dial Corporation) 인수는 헨켈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 기록이었다. 미국 일류의 세제 및 소비재 제조 업체인 다이얼의 인수로 헨켈은 북미 시장에서의 지위를 강화했다. 또한 헨켈은 헨켈이 보유한 클로락스의 지분 28.8%(대략 6140만주)와 헨켈 이베리카(Ibérica)에 대한 클로락스의 참여 지분 20%, 현금 약 21억달러를 댓가로 클로락스의 신규 계열사와 소프트 스크럽, 살충제 컴배트, 홈매트, 홈키퍼 등의 사업체를 매입했다. 
  • 2008년 연례 주주총회 이후 Henkel Management AG는 Henkel KGaA의 sole personally liable partner가 되어 Henkel AG &Co. KGaA로 재탄생했다.
  • 2011년 조디 랩(Jyothy Laboratories)는 헨켈 인디아의 지분 51%를 구입했다.[1] 그리고 2013년 조디 랩은 헨켈 인디아를 합병했다.[2] - 이것도 굳이 있어야 하나 의문

링크1 http://www.livemint.com/Companies/lzVcai5nbKXnOfsE2RDRYJ/Jyothy-buys-5097-stake-in-Henkel-India.html 링크2 http://www.business-standard.com/article/companies/jyothy-labs-henkel-merger-to-be-completed-by-march-end-113020701291_1.html

2013 9월에 헨켈은 중국 상하이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장을 설립했다. 헨켈에서 “Dragon Plant”으로 알려진 새로운 공장은 150,000 제곱미터의 넓이의 규모이며 현재 중국 및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산업용 접착제의 생산 부문에 있어 중심적 역할을 한다. - 삭제 고려 2010년 헨켈은 헨켈은 새 비전 “브랜드와 테크놀러지스를 보유한 글로벌 리더”를 수립하였다. 헨켈은 고객×직원×재무 성과×지속가능성×가족이라는 다섯 가지 가치를 중요시했다. 2012년, 2016년까지의 새로운 전략과 재무 목표를 발표했다. 그것을 위한 Outperform(잠재력 향상)-Globalized(성장가능성 높은 지역 주력)-Simplify(운영 효율성 지향)-Inspire(글로벌 팀 강화)의 4가지 우선순위를 정했다.

이 부분 4가지 우선순위는 위키에 올릴 때 한글(영어)-한글(영어) 이런식으로 해서 올리려고 합니다. 이상할거 같지만 위키 양식 지키는거 때문에

1876년 독일 아헨에서 프리츠 헨켈(Fritz Henkel)이 설립하여 세제를 생산하였다. 1907년 세탁세제 퍼실(Persil)을 출시하여 큰 인기를 모아 퍼실은 지금까지도 헨켈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본사는 독일 뒤셀도르프에 있으며,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DAX 지수 평균을 구성하는 30대 기업의 하나이다. 사업 분야는 세제 & 홈 케어, 화장품 & 세면 용품, 접착 테크놀러지스의 세 분야로 나뉘며,[3] 세계 120여개 국에 진출해 있다. 퍼실 외에 주방세제 프릴(Pril), 순간 접착제·브레이크액 록타이트(Loctite) 등의 제품이 유명하며, 세계 최초로 샴푸를 대중화한 독일의 슈바르츠코프(Schwarzkopf)와 미국의 유명 비누 제조 업체 다이알(Dial)을 인수하여 산하 브랜드에 두었다. 대한민국에는 접착 테크놀러지스를 담당하는 헨켈 테크놀러지스(유)와 세제 & 홈케어를 담당하는 헨켈홈케어코리아(유) 그리고 화장품을 담당하는 얼리스킨코리아, 남경화장품의 네 현지 법인으로 진출해 있으며, 생산 공장도 두고 있다.(단, 얼리스킨코리아와 남경화장품 제외) 대한민국 내에서는 동화약품의 살충제 브랜드였던 홈키파·홈매트의 제조 생산권을 인수하여 이들 제품을 생산·판매하며, 대한민국 살충제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4]

주석[편집]

  1. http://www.livemint.com/Companies/lzVcai5nbKXnOfsE2RDRYJ/Jyothy-buys-5097-stake-in-Henkel-India.html
  2. http://www.business-standard.com/article/companies/jyothy-labs-henkel-merger-to-be-completed-by-march-end-113020701291_1.html
  3. [1]
  4. [2]

바깥 고리[편집]

주식회사 레인보우브릿지에이전시[편집]

㈜레인보우브릿지에이전시(RainbowbridgeAgency, Inc.)는 대한민국의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작곡가 김진우를 대표로, 김도훈, 황성진, 김형규, 최갑원 등 한국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모여 2010년 03월 설립되었다. 아티스트 인큐베이팅 전문기업으로 아티스트 프로덕션, 아티스트 에이전시, 해외방송기획 및 제작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양질의 컨텐츠 제작을 목표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새로운 영역을 선도하는 핵심 리더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Earthcops[편집]

Earthcops(지구방위대)는 국립법인대학 UNIST(Ulsan National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의 중앙 축구 동아리이다.

UNIST가 개교한 2009년에 창단하였으며,

해석 실패 (어휘 오류): E=E_0+\frac{2.303RT}{zF}\logγC

요구르트맛잇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