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태자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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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태자 단(燕太子丹, ? ~ 기원전 226년)은 연나라의 마지막 태자이다. 연왕(燕王) 희(喜)의 아들이다.

생애[편집]

희단(姬丹)은 어린 시절을 조나라에서 보내 졌다. 태자 단(丹)은 진나라의 볼모로 가게 된다. (丹)은 진(秦)나라에 볼모 생활에 반감을 품다가 연나라로 도망쳐 온다. (丹)은 진(秦)나라에 적개심이 있었다.

(秦)나라 장군 왕전(王翦)이 초나라을 무너뜨리고, 그의 아들 왕분(王賁)이 연나라을 공략하였다. 연나라 태자 (丹)은 나라가 위험에 처하자 시황제을 암살하기 위하여, 위나라 출신의 자객 형가(荊軻)와 연(燕)나라 장수 진무양(秦舞陽)을 진나라에 보낸다. 형가(荊軻)는 본래 노구천을 대동할 생각이었으나, (丹)의 천거로 진무양(秦舞陽)을 대동한다.

번어기(樊於期)는 진(秦)나라 장수로, 진시황제의 출생의 비밀에 의혹을 제기하며 반란을 일으킨 사람이다. 번어기는 진시황제의 공격을 피하여 연나라로 도망간다. 연(燕)나라는 진(秦)나라의 공격을 막기 휘해 협상을 시도하고, 진(秦)나라는 번어기의 목을 가져오라고 한다.

형가(荊軻)는 번어기(樊於期)의 목을 가지고 진시황제와 접견한다. 이 순간에 진무양(秦舞陽)은 시황제을 보자마자 겁이 집어먹어 벌벌 떨기 시작하였다. 진무양(秦舞陽)은 13세에 사람을 죽이고도 당당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겁이 많았다.

진무양(秦舞陽)이 겁을 먹고 벌벌 떨자, 진(秦)시황제는 상황을 눈치 챘다. 다급한 형가(荊軻)는 시황제을 공격하다가 실패하였다. 시황제는 형가(荊軻)와 진무양(秦舞陽)은 그 자리에서 죽였다.

진시황제는 형가의 암살 사건을 계기로 연나라와 대대적인 전쟁을 시작한다. 10개월 만에 연나라의 수도가 함락되고, 연왕 (喜)와 태자 (丹)은 요동으로 도망쳤다.

진(秦)나라가 연(燕)나라 잔존 세력을 계속하여 추격하자, 연왕 (喜)는 전쟁의 발단이 된 태자 (丹)을 죽이고 그의 목을 진시황제에게 바친다. 하지만 시황제요동까지 연(燕)나라 잔존 세력을 추격하여 연나라를 멸망 시켰다.

진(秦)나라는 요서에 이르는 지역을 통합하고 그 주변으로 만리장성을 축조한다. 연나라 잔존 세력은 만주 동쪽에 일부 남아 있었다. 그들은 환인 사상, 즉 하늘의 자손이라는 사상으로 무장하고 진나라에 맞선다.

(丹)은 연(燕)나라의 마지막 태자로서, 그 잔존 세력이 만주로 도망쳤다. 이후 진(秦)나라는 제나라을 공격하여 멸망 시켰는데, 그 잔존 세력들도 동아 지역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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