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 데 발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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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데 발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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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데 발로이스(Isabel de Valois, 1545년 4월 2일 ~ 1568년 10월 3일)는 프랑스의 공주이자 스페인의 왕비로, 스페인 왕 펠리페 2세(Felipe II de España)의 아내이다. 결혼하기 전의 이름은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였다.

생애[편집]

1545년 프랑스 퐁텐블로 성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프랑스 국왕 앙리 2세, 어머니는 왕비 카트린 드 메디치이다. 태어나자마자 모친과 떨어져 왕족들의 양육을 독점하였던 왕의 정부 디안 드 푸아티에의 휘하에서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에는 디안의 품에서 자랐고 성장한 뒤에는 스페인으로 떠난 탓에 실질적으로 카트린 드 메디치와 함께한 시간은 많지 않았으나 천성적으로 수줍음 많고 순종적이며 다정한 성격을 지녀 동생 앙주 공작 앙리(Henri, duc d'Anjou : 후일의 앙리 3세)와 더불어 카트린 드 메디치의 편애를 받는 자녀가 되었다. 또한 두 살 연하의 동생 클로드(Claude de France : 후일의 로렌 공작 부인)와 더불어 함께 궁정에서 자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결혼과 사망[편집]

1559년 프랑스스페인 사이에 평화조약인 카토-캉브레지 조약(Traités du Cateau-Cambrésis)이 체결되면서 조약의 일환으로 14세의 나이에 스페인 왕인 펠리페 2세와 결혼하였다. 당시 두 번째 아내인 잉글랜드의 메리 1세 여왕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펠리페 2세는 처제이자 새 잉글랜드의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와의 결혼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으나 청혼의 답을 계속 미루던 엘리자베스 1세가 이를 거부하자 결국 이사벨과의 결혼을 이행하였다. 노트르담에서의 대리 결혼식과 이를 축하하는 축제 중에 열린 마상 창시합에서 신부의 아버지인 앙리 2세가 사고로 급사하는 불길한 사건이 터졌으나 결혼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결혼 당시 이사벨보다 18세 연상이었던 펠리페 2세는 어린 아내에게 다정한 태도를 유지하였고, 유일한 후계자인 돈 카를로스 왕자의 기행이 점점 심해지면서 이사벨로부터 또 다른 후계자들을 얻는 것을 간절히 바랐다. 결혼 초기 이사벨은 유산을 거듭하였으나 결국 1566년 딸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를 낳은 것을 시작으로 두 딸을 낳았다. 그러나 1568년 왕자를 사산한 뒤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자녀[편집]

돈 카를로스와의 관계[편집]

비록 펠리페 2세와 결혼하기는 했으나 원래 이사벨이 결혼하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인물은 펠리페 2세의 아들 아스투리아스 공 돈 카를로스였다. 따라서 아버지가 아들의 약혼녀를 아내로 삼은 이 결혼은 당시부터 약간의 논란을 불러왔고, 돈 카를로스 본인 역시 이 일을 두고 부왕에게 강경하게 항의하면서 부자의 사이가 크게 틀어져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또한 이사벨이 돈 카를로스에게 친밀하고 다정한 태도를 보이면서 돈 카를로스의 고모이자 펠리페 2세의 동생인 오스트리아의 후아나와 더불어 그가 신임하는 얼마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 되자 둘의 관계를 모자 관계 이상으로 의심하는 시각이 생겨났다. 이 같은 시각은 베르디의 유명 오페라‘돈 카를로(Don Carlo)’와 같은 작품에서 두 사람이 연인 관계로 묘사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