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Storytel/작업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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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tel의 작업장

위키 한달간의 문서작업에 대한 반성[편집]

(이 글은 잡담과 근황에 글을 쓰려다가 길어질 것 같아서 이곳에서 옮겨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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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3일 후면 한달이다. 위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뭘 했던 걸까, 잠시 생각해봤다. 그리고 내 기여목록을 조금 보았다. 웃음이 나온다. 아니, 내 작업이 이리도 부실했단 말인가 ? 사실 부족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3배 정도는 문서작업을 더 할 수는 있었을 텐데 싶기도 했다. 그 정도도 못했다. 프로 글쓰기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블로그로 조금의 돈이라도 벌 욕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10배 정도는 작업을 했어야 했다.

왜 그리도 작업량이 부실했을까. 적응과정에 너무 많은 시간투자를 했다. 너무 소모적인 시간이 많았고, 감정적 고생이 많았나 보다. 그게 다 내 적응력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 일들이었고 상상 이상으로 위키적응비용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독자연구와 저작권침해 문제가 특히 컸다. 내 기존의 글쓰기 방식은 통용되지 않았다. 여기서의 글쓰기는 자료준비작업이 우선임을 실감하게 한다.

이 자료준비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MBC TV베버리힐즈 아이들 단 한 두줄을 넣기 위해 얼마나 마음고생, 시간투자를 했는지 모른다. 인터넷 자료란 자료는 거의 뒤진 것 같다. 그러면서 그 방영시기가 1993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도 끝내 시작한 시점은 알아낼 수 없었다.

애초에 MBC사고나 사사 등 역사쪽 문서를 찾는 게 빨랐을 것 같다.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추가할 때마다 수많은 문서를 찾아 헤매야만 했었다. 소머즈 방영시기를 알아내기까진 또 얼마나 힘들었던가. 서부소년 차돌이의 원작만화는 찾지도 못한 것 같다.

엄격한 글쓰기, 책임있는 글쓰기가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처음으로 실감했다. 많은 시간을 소모했지만, 배우는 과정으로선 값진 경험을 했다고 믿어진다. 한때는 자유기고가를 막연하게 꿈꾸기도 했었는데, 이젠 그런 글쓰기에 도전해도 겁이 날 것 같진 않다.

소설이나 드라마를 쓰다가, 자료조사가 귀찮아 내팽겨친 글들이 많았다. 이번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이런 돈이 안되는 글에도 그 막대한 시간을 투입해 자료조사를 행하는데, 난 큰 돈을 욕심내면서도 그런 고생을 회피했으니 말이다. 앞으로 그런 작업시간이 닥쳐와도 이젠 힘들다고 도피하진 않을 것 같다.

위키적응에 고생은 많았지만, 배운 게 더 많다. 이젠 책임있는 편집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1000회 편집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 정도 문서밖에 작업하지 못했다는 것은 큰 부끄러움이지만, 다음엔 100회 편집으로도 이보다 많은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고 싶다. (토론 글들을 빼고 문서 편집만을 놓고 본다면, 같은 편집회수로 5배 이상 작업할 수 있지 않을지, 기대해 보는 것. 너무 낙관적일까 ? )

내 위키활동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문서편집량과 질적 우수성, 좋은 위키공동체 만들기 두 방향으로 보고있다. 좋은 문서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생각보단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쪽으로든 프로 글쓰기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선 이번 작업량과 질적 수준은 부끄러운 것이었으며, 내 자신의 한계를 많이 절감하게 한다. 좀 더 많은 공부량과 도전의식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위키는 나에게 여전히 좋은 학습장인 것이 틀림 없다.

나는 위키의 활동을 줄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학습의 의미로 볼 때, 어느 정도는 위키에서 계속 활동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 8,9 오후

블로그와 위키의 연계를 모색해 본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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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를 한동안 포기할 결심을 하게되자, 포기했던 블로그에 대한 미련인 남았다. 사실 위키에서는 내 글을 제대로 쓸 수 없다. 독창성과 비판성 그리고 상상력과 대안을 중시하는 내 글쓰기는 블로그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위키에서는 글을 올릴 수 없는 내용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일게되면 더 쓰고싶은 추동력을 잃곤 했었다. 독자연구나 자작권침해 문서에 해당할 수 있는 글들이 그러하다. 그런 글들을 나는 다시 블로그를 살려서 그쪽으로 올리는 방안에 대한 미련이 남곤 했다.

다만 문제는 위키의 편집과 블로그이 방식이 다르기에, 문서수정작업이 꽤나 귀찮다는 것이다. 위키의 문법을 블로그에서 살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길이 보일지 모르겠다.

또 하나는, 내 사용자문서와 블로그 문서를 링크하거나 연계하는 방식을 찾고싶은데, 그런 사용자들을 보지 못했다. 외부와연계하는 방식이 위키에서는 불법일까 ?

위키와 블로그를 연계해서 작업할 수 있다면 내 개인으로서는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길을 찾을 수 있을지.

신상고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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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어제부터 신상문제로 고민이 많다. 예전부터 같이 일하자는 사람이 어제 오후 전화를 주어 적극적으로 부탁해오는데, 내 올해 계획을 망칠 것 같기도 해서 판단이 쉽지 않다. 지금 내 일을 밀고 나가는게 나은가, 어려운 그분을 돕고 사회경력을 쌓는게 나은가. 어떤 결정도 쉽지 않고, 미련이 남을 것 같다. 결정시간이 몇 시간 남지 않아 초조하다. 어느 쪽이든, 당분간 위키를 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시간엔 한계가 있을 듯. 내 지난날 위키활동 재검토도 필요하고, 블로그 재개도 고민거리.

오늘은 편집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최근바뀜 문서들을 보다 보니 몇개의 편집을 시도하게 되었다. 취업문제는 끝내 결정을 보지 못했다. 고민을 하다가 초저녁 잠이 들어버렸는데 멋진굵은 글씨 소설 구상을 하나 건졌다. 이를 정리마감한 시간은 9시 30분 경. 내 6-7 번째 미래소설 구상으로 앞의 3-4개 내용도 상당히 포함될 것도 같다. 내가 좋아하는 청춘감성류를 가미해서 써보고 싶다. 구상이 잘 풀리면 위키에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취업은 포기하게 되는 거고. 나로선 거의 드문 판타지물인데, 내가 그쪽을 잘 몰라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 꿈 속의 구상은 깨어보면 대부분 실망하곤 했었는데, 이번엔 기대감이 적지 않다. 다만 주인공의 나이대가 너무 어려, 연애물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나이대를 좀 더 올려야하나 고민하고 있다.

8.7 일을 할 결심을 굳히면 내쪽에서 전화를 주기로 약속했는데, 어제 저녁까지 전화를 주지 않음으로써 시간이 흐를수록 일을 포기하고 내 글쓰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또 오전에 전화가 왔다. 컴퓨터에 접속하려던 바로 그 순간에. 세차례에 걸쳐 2시간 반 정도는 통화를 한 것 같다. 애초 내 결심은 95%이상 확고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왜 이리도 마음이 흔들리는지. 지금은 오히려 70% 정도는 일을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내일 저녁이 마지막 고비다. 내가 일을 하게된다면 위키를 쉬게 될 것이다. 아르바이트 개념이 아니라 동업자 정신으로 일을 할 생각이기에. 내 마음은 아직도 흔들린다. 문학과 위키를 다 포기해야하는 이 길을 나는 가야만 하는가.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이런 글을 여기에 두어야할지, 작업장3에 넣어야할지 판단이 어렵다. 작업장 3으로 넣고, 링크를 달아볼까. => 여기까지 글을 쓰고 잡담과 근호아에서 일단 작업장3으로 문서 글을 옮겨왔다. 이쪽이 더 글을 쓰는데 마음이 편안할 것 같다.

증권의 미련을 떨치고 문학으로 승부하겠다는 결심을 확고히 하는덴 엄청난 유혹을 끊는 결심의 과정이 필요했다. 6개월 전이었다면 난 당연히 이번 일을 기꺼이 했을 것이다. 그런데 확고히 방향을 결정지었다고 믿었는데도 왜 이리도 마음의 중심을 잡기 힘드는 걸까. 선택이 너무 힘들고, 후에 어떤 마음이 될지 알 수 없다. 양쪽 모두 큰 성공 가능성과 실패가능성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아마 오늘은 뜬 눈으로 밤을 새울지 모른다. 그러고도 마지막 순간까지 갈등할지도.

쉬운 길이 어느쪽일까. 일을 하는 건 확실한 소득이 따른다. 안정성은 있다. 그리고 사업쪽으로 비젼도 없지 않다. 하지만 보람은 글을 쓰는 쪽이 더 강하다. 내가 글을 써서 성공할 수 있을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가 문제이다.

어느쪽을 선택하던 위키는 그만둬야할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쪽을 선택하더라도 내 온몸을 던져서 승부할 각오가 필요하기에. 그렇게 치열한 승부를 하지 못한다면, 나는 또 후회할지도 모르기에.

어덯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지,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내 마음 한 길을 이리도 알기 어렵다니.

8,9 어제밤 최종 포기를 확실히 했다. 사업재기전 상태를 최종 검토해 보니, 사장의 말과는 달리 발전가능성에 한계가 강했고, 내 힘이 닿지 못한 영역의 문제였다.

그 사업에 참여한다면 내 모든 걸 걸고 전념할 생각이었다. 그 길을 포기했으니 이젠 내 작업에 그런 각오와 열정을 투입해야한다 믿었다. 당분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 일에 전념할 생각이었고, 위키도 한동안 포기할 결심이었다. 20회 편집이면 1000회 편집이 눈앞이기에 조금 미련도 남았지만, 그건 별로 의미가 없다 믿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나도 식곤증이 쏟아진다. 여러 방안을 연구했다. 대청소를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내 블로그 글쓰기, 드라마나 영화보기 등. 위키의 동향도 궁금해서 한번 들어오게 되었고, 그런대로 나쁘진 않다. 앞으로도 이런 정도로만 위키에 참여할 생각이다.

어제 하루는 운동장을 많이 돌면서 내 미래인생을 많이 그려보았다. 다시금 상상력과 지력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막연히 꿈꾸는 것만으로는 그 무엇도 이룰 수가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확실히 계획하고 목표하면서,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 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상상력은 중요한 자산이다. 나는 미래를 자주 그리고 꿈꾸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그러하진 못했다. 좀 더 구체적인 상상력, 확실한 내 미래상, 욕망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젠 한달, 90일, 1년이 막연하진 않다. 생각보다 한달이 짧아보였다. 내가 하고픈 일들이 너무도 많기에, 그 시간들이 정말 아깝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구체적인 계획이 부족할 때는 시간도 막연하게 흐르곤 했었다. 정신차리고 보면 3개월 6개월이 지나곤 했었다. 내 시간들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끼지 못하고 계획적으로 살지 못한 이유였음을 이젠 절감한다.

그런데 이 초조함은 뭘까. 잠들기전만하더라도 내 지금의 식곤증과 무기력함은 계획에 없었는데. 내 시간들에 대한 계획이 막연했을까. 오늘 내일까지는 좀 더 많은 인생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으로 잡았는데,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날건달과 형님들[편집]

이 글은 아주 무서운 글입니다. 20세 미만은 절대 보지 말아주세요.

저도 이 글을 여기서 적어도 되는지, 오랜 망설임이 있었네요. 오늘 3시간도 채 자지 못한 것 같은데, 그 악몽을 꾼 이후로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혹시 여기라도 글을 써보면 잠을 이룰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영원히 내 머리 속에만 간직해야 했는지 아직은 다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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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악몽을 꾸었다. 세상 그 어떤 가장 무서운 영화도 만화나 소설도 또 현실의 끔찍함도 오늘의 악몽만은 못했다. 아니 그 충격에서 그 어떤 것도 비견할 것이 없었다. 내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다음의 글은 내 악몽을 바탕으로 소설식으로 풀어본 글입니다.

그 거리엔 무서운 형님들이 웅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그래서 그 거리에선 오래도록 세상 사람들이 숨을 죽였고 그 거리의 한 구석을 지날 때엔 누가 잡을 새라 재빠른 걸음으로 지나치곤 했다. 한 5년이 그런 식으로 지나갔다.

그런데 세상은 빨리 흘렀고 젊고 똘망똘망한 친구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 거리에서 그런 패거리들이 한 10여명 놀게 되었나 보다. 그들은 많은 것을 가졌다. 돈도 학벌도 배경도 좋았고 유들유들한 성격에 배짱과 적당한 주먹도 가졌다. 젊은 층이라 특히 여자들을 좋아했고 보이는 여자들은 다 낚으려 했다.

그런 날건달 패거리들이 어찌하다 보니 그 거리의 그 가게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나 보다. 그 무서운 형님들이 웅거하는 가게를 말이다. 아마 여자문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날건달 패거리들도 처음엔 긴장을 하긴 했다. 그 카페엔 당구대가 3-4대 설치되어 있었고 조용한 음악에 고급 술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적당히 있었고 안쪽 화장실 쪽으로 덩치들 7-8명이 3-4개의 테이블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날건달 패의 젊은 보스의 유들유들함과 배짱은 보통이 넘었다. 

엄청난 등치에 험악한 눈초리를 하는 형님들 앞에서도 결코 기가 죽지 않았다. 결국 그날의 신경전은 날건달 패거리의 판정 승리였다. 팽팽한 신경전과 긴장감 속에서도 그 젊은 보스는 형님들 중에서도 넘버 2에게 주먹 2-3방을 맞긴 했지만, 뭐... 뭔 일 있었어 ? 의 표정으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 가게를 나올 수 있었다. 그 후로 그들은 그 거리가 자신들의 것인 양 맘껏 설치기 시작했다.

보름쯤 후 그들은 다시 그 카페에서 여자들과 실갱이를 벌이게 되었다. 안쪽의 엄청난 등치들이 험악한 눈길을 주는데도 그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결국 여자는 점차 안쪽으로 도망가고 젊은 패거리들은 형님들과 또 대치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젊은 보스는 용기가 좋았다. 자신의 패거리들 7-8명과 손님들이 있는데 무슨 일 있겠냐는 자신감이었다. 또 형님들과 무서운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형님들의 분노의 눈길은 더 타오르게 되었다.

"쳐 보십시요. 그런 주먹 무서웠으면 세상 일찍 하직해야죠 ! " 젊은 보스는 능글거리며 그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기가 죽지 않았다. 이번에도 형님들 중에서 넘버 투가 뱃길에 주먹 두세 방을 먹이며 기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이 젊은 보스가 그런 주먹에 기가 죽을 인물인가. 점점 시간이 갈수록 기세가 등등하다.

형님들 중에서도 은은한 눈길로 바라보고만 있었던 큰 형님이 드디어 일어났다. " 젊은 친구, 도가 지나치구만 ! " 형형한 눈길로 바라보는 그 인물에 일시적으로 날건달 보스는 만만찮은 위압감을 느꼈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이라 생각하고 용기를 낸다.

"큰 형님 이신가 보네유... " 젊은 보스는 유들유들한 웃음을 던졌다. "형님들도 우리만한 나이대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 저희들도 형님들 무서운 것 충분히 알구유, 오늘 특별한 일이 있어 잠시 소란을 피웠으니 오늘만 눈 감아 주세유... "

형님들 패거리들이 날뛴다. "큰 형님, 저런 놈은 제가 칼을 먹이겠습니다요 ! " 서로 나서는 기세등등한 형님들의 위세에 날건달 패거리들은 그 누구도 나설 수 없었다. 오직 젊은 보스만이 특유의 유들유들함을 지키고 있을 뿐.

"큰 형님, 제가 인생 교육 한번 제대로 받아보겠습니다. 원하시는 만큼 저를 패시고, 잊어주십시요. " 형님네 패거리가 "죽여 죽여"하며 젊은 보스를 화장실 쪽으로 밀어부치는 데도 그는 기가 죽지 않는다.

큰 형님이 묻는다. "내 주먹은 보통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 버틸 수 있겠냐 ?"

"버텨 보겠습니다요 ! " 젊은 친구는 큰 형님의 테이블로 다가 섰다.

" 이를 악물고, 운이 좋아야 할 텐데 ? "

"인생 수업료라 생각하겠습니다요 " 젊은 보스는 유들유들 웃었다. 그게 그의 마지막 웃음인 줄도 모르고.

순간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주먹질 소리로는 믿기지 않은 엄청난 소리가. 그리고 젊은 친구는 ....

이후로는 차마 표현하기 힘들다. 어린 친구들이 봐서는 절대 안 될 장면이 나오기에.

나는 그 곁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멎어버렸다. 음악소리도 소음도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묘하다, 현실과 다르다. 젊은 친구는 옥수수가 5개 정도가 나갔을 뿐인데 웃음기를 머금고 정지 상태이다. 신고를 해야 하나, 의사를 불러야 하나, 죽었을지 모를 젊은 친구를 부축해야 하나...머리는 돌아가는데 발길은 커녕 눈길도 돌려지지 않는다. 왜 젊은 친구는 나가떨어지지 않고 웃음기 머금으며 정지상태인지 알 길이 없다. 그의 얼굴과 머리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함이다. ---

나는 무척 놀라서 한동안 그 꿈의 의미와 교훈을 음미하려 하다가, 잠시간이 너무도 부족했기에 다시 잠들려 해보았지만 차마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는 그 꿈으로 더 가득 차 오고, 그 악몽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내가 이곳에 글을 적는 게 잘한 일인지 알 수 없다. 내 공간에 저장해둬야 할까... 잊으려 노력해야 할까... 나는 이 글을 저장해도 되는지... 고민 중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로그인이 풀렸다면, 글을 올리지 말도록 하자. 저장 버튼을 눌러보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글이 저장이 되어버렸다. 내 오늘의 글 올림이 옳았는지는 많은 후회가 될지도 모르겠고, 이 글 삭제 문제가 큰 골치덩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런 끔찍한 꿈을 꾸게 되었을까 많은 생각을 했다. 어제의 그 처단요청 사건 때문일까, 아니면 내 오랜 인생살이의 본능적 경고였을까, 최근에 본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이었을까, 아직은 알 길이 없다.

꿈을 꾼 후 내 본능은, 세상에 대한 공포감과 두려움이었다. 한없이 겸손하게 조심스럽게 살아야한다는 교훈이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잊고, 오래도록 내 일만 하면서 조용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이 꿈은 오래도록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사실 위의 글은 내 꿈보다는 재미가 없이 풀렸다. 그 숨 막히는 긴장감과 공포감, 그리고 스릴 넘치는 신경전 등이 너무 무미건조하게 풀리고 말았다. 원래의 꿈은 훨씬 길고 신경전과 다툼이 한층 치열했었다.

글쎄, 내 소설 거리를 마련했을까도 싶기도 한데, 사실 나는 이런 공포물이나 액션물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특히 공포류에 대해선 전혀 흥미가 없던 사람이었다. 내가 잘 쓸 수 있는 타입일까, 내 자신이 믿기지 않는다.

이 꿈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교훈은 무엇이어야 할지, 오래도록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토론, 논쟁, 언쟁 그리고 동화적통합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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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쉽게 잠들 수 없는 날이다. 3시간도 잠들지 못하고 악몽에서 깨어난 이후 그 악몽에서 허우적거렸고, 소설 착상을 글로 정리한 이후로도 다시 잠들려 했지만 좀체 잠 길로 빠져들 수 없었다. 다시 컴퓨터를 켜며 글을 쓰려 하는 이 순간 피곤기와 잠이 몰려들기는 하지만 잠을 청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피곤한 상태에서 이 글을 써야하나 망설임은 있지만, 힘닿는 데까지 써보기로 하자.

이 글이 어쩌면 위키에서 한동안 마지막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벌여놓은 판을 마무리는 해야 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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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청하는데 자꾸만 옛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싸웠고 주먹다짐까지 했으면서도 끝내 헤어지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제일 친한 친구로 남아 있는 그 친구 얼굴이.

내 대학시절은 토론과 논쟁이 활발한 시대였다. 사업가가 목표였던 나는 그런 쪽에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지만 시대조류란 무서운 것이었다. 가는 자리마다 술판이 벌어지고 시국논쟁과 이데올로기 싸움이 벌어지곤 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나도 그런 시대 조류에 휩쓸리게 되었다.

대학 2학년 1학기까지는 참 고민이 많은 시절이었다. 날마다 학생운동에 헌신하며 이 한 몸을 불살라야 하느냐, 부모님의 바람대로 무난한 사회인이 되어야 하나, 많은 갈등의 밤들이 이어지곤 했다.

나라는 존재는 가는 자리마다 입장이 다른 나를 확인하곤 했다. 강경 좌파들 속에서 나는 상대적 우파일 수밖에 없었고, 평범한 학생들 사이에선 또 나는 범 운동권으로 보였으며, 부모님이나 친척들 앞에서는 앞날이 걱정스러운 좌파인물로 보이기도 했으리라.

그런 갈등은 2학년 여름에서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서전(회고록)>을 감명 깊게 읽으며 내 나아갈 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도덕관(세계관)과 시국관을 일치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난 오래도록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창하는 공리주의 입장에서 세상의 균형을 찾았고, 친구들과의 시국논쟁과 <이데올로기전>에도 대처할 수 있었다.

여러 뛰어난 친구들이 있었다. 친북파가 의심스러운 인물도 있었고 다양한 분야에 고루 앞서나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결론을 말하면 내가 가장 많이 토론하고 싸웠던 친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나는 없다. 아마도 평범한 회사원생활을 하거나 잘하면 사업가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다방면에 조예가 깊고 앞선 인물이었다. 열정과 패기도 뛰어났으며 귀족적인 카리스마도 없지 않은 인물로, 지금 생각해도 소설 속에서 톡 튀어나온 인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소설의 주인공처럼 살고 있기도 하다. 나보다 많이 앞선 친구이기에 나는 매번 엄청 깨졌다. 그러면서도 끝내 토론과 논쟁, 끝내는 험악한 언쟁이 되어도 나는 쉽게 굴복하진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친구의 논리와 감성이 내 머리와 가슴에 와 닿곤 했다. 그렇게 나는 싸우면서, 미워하면서 서서히 성장하며 변화해갈 수 있었다. 오늘날 내가 가진 많은 품성, 지식, 토론논리 등이 거의 다 그 친구의 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 언젠가, 동화적 통합이론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세상살이의 험난함을 느끼고 인간관계의 힘듦을 느낄수록 그 헌법이론은 내 인생철학이나 처세논리로 서서히 다가온 것 같다. 그렇게 싸우고 미워하면서도 결국 이해하고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그 친구처럼, 세상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그런 사람들이 뒤엉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반드시 갈등과 충돌이 벌어진다. 그런 과정을 나는 사회통합과정이라고 본다. 이념도 지역갈등도 인간관계도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가 되어가고 서로를 이해하며 같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에서든 위키에서든 그런 갈등을 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는 쪽이다. 그렇게 싸워가면서 이해해 나가고 결국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하나가 될 수 없을지라도 같이 살아가는 지혜는 배울 수 있다고.

그런데 말은 쉽지만 실천은 참 어렵다. 내 어제만 해도 그렇다. 내 머릿속으로는 동화적 통합이론으로 가득했다. 그 전날 허영과 정종섭의 글을 보면서 그런 마음이 더 커진 것도 같다. 그런데 현실과 실천은 전혀 딴판이었다.

위키에서의 분쟁이 싫어 아주 늦게야 접속을 했다. 한창 더운 날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 쓰고픈 많은 글들을 그 분쟁 때문에 쓸 수 없는 울분 때문이었는지, 내 인내심은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순간적인 감정이 시킨 일이다. 단 몇 분만의 글 공방에서의 우발적 사태였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이제 내 손길을 떠난 종이비행기는 제 갈 길을 가다가 폭락할 것이다. 그 길이 이미 예정된 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머리나 이론처럼 돌아가지 않은 감정과 현실의 무서움을 느낀다.

대학시절 운동권에 관심을 접으며 바둑을 시작했다. 어느 술자리에서 바둑선배는 말했다. “바둑실력 그거 별거 아니다. 인생바둑을 잘 둬야지. 그게 인생고수야.” 당시는 몰랐던 그 말의 진가를 가끔 떠올리곤 한다. 오늘도 그렇다. 바둑처럼 좀 더 길게 멀리 차분히 내다볼 수 있었다면, 그렇게 신중하게 행마를 했다면, 좀 더 나은 결과가 있었을 거라고.

사실 위키문제는 대단한 것은 아니다. 내 긴 인생살이에 대해 많이 고민하면서 좋은 인생행마를 찾아가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일이다.

오늘은 토론과 논쟁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금 동화적 통합이론을 어떻게 인생살이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또 인생바둑을 어떻게 현명하게 잘 둬 나가야할지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중요하고 시급한 것을 우선 해결하라, 집중하라”가 바둑에서도 인생에서도 중요하다 믿어진다. 그 길을 찾아가는데 전념하고 싶다.


인간은 어려운 존재이다, 사랑류에 대해[편집]

오늘도 이 공간에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군요. 이곳이 내 일기장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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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쓰고픈 글이 아주 많았습니다. 몸은 피곤한데 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고, 다시 컴퓨터를 켜야하나 갈등했군요. 날씨가 조금만 더 서늘했으면 컴퓨터를 켰을 것 같습니다.

왜 몸이 그리도 피곤한데, 글을 쓰고자하는 의욕이 넘쳤을까요 ? 나를 영구추방 하겠다는 상대의 글에 자극을 받았을까요. 아니면 전혀 반성과 개전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상대에 대한 미움 때문이었을까요. 하여간 나는 일어나자마자 상대를 공격하는 글을 마무리 할 생각이었습니다. 아주 큰 새로운 혐의도 추가하여 공격할 구상도 했었구요.

그런데 묘한 일입니다. 오늘도 악몽 비슷한 걸 꿨네요. 갑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이혼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넌 누구하고 같이 살래 ? 하고 물으시는 겁니다. 아버님이 슬픈 얼굴로 말이죠. 두 분 사이 아주 멀쩡하고 좋으시죠. 오늘 일어나자마자 특별히 그분들의 공간으로 가서 어머님 아버님 표정부터 살폈습니다. 아무 일 없고 좋아 보이시더군요. 안도했습니다.

이게 어떤 꿈일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되었네요. 나에 대한 경고메세지일까, 겸손하게 살라는 알 수 없는 가르침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어제 상대의 글을 보면서 내가 바라는 상대에 대한 처벌강도는 두 배로 강화되었죠. 원래는 3-12개월 정도를 생각했는데, 잠들기 전에는 6개월-2년 사이로 처벌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꿈을 꾸고 나니 또 달라집니다.

오늘 내가 느낀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척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지요. 멀쩡한 부모님이 왜 이혼하는 꿈을 꿀 수 있었을까요 ? 정말 알 길이 없는 일입니다. 내가 사고를 당한다거나, 내게 무슨 일을 당하는 꿈이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전혀 근거도 걱정도 없는 일을 꿈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보았네요. 알 수 없는 내 무의식의 세계에 그분들에 대한 걱정이 있었을까, 생각은 해봅니다만, 쉽게 이해되지 않은 꿈이었네요.

인간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흔들리는 갈대와도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내 마음도 바람결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춤을 추는 느낌도 자주 받고요. 그렇게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과 미움도 자주 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번 사건에서 내 책임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관계는 상호관계이기에 내 대응에도 문제가 있어서 사태를 이렇게 악화시킨 것이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특히 IP의 부당한 공격을 받고, 그 배후를 의심했으며, 그 존재를 끄집어내기 위해 내가 강경하게 나간 게 사실입니다. 상대는 생각보다 쉽게 나와주었죠. 전 일단 만족할 수 있었어요. 정말 배후가 궁금했으니까요.

거기서 적당히 수습할 일이었겠습니다. 당시만도 상대에게 어떤 처벌까지 바라는 마음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나는 속으로 상대의 약점을 잡은 기분이었죠. 증거는 없지만 심증적으로 너 아이피하고 같은 사람이거나 한편 아냐, 라는 생각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상대의 기를 죽이려고 강한 공격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애초에 처벌을 목적으로 시작한 다툼이 아니었으니 끝까지 더 참는 게 옳았는지도 몰랐죠. 그 당시 최대강격대응은 충동적이었군요. 그러면서도 바랬습니다. 이 정도에서 사고하고 물러나라, 라는 마지막 기대감 말이지요. 그럴 기미가 없자 나는 처단이라는 마지막 수순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합니다. 인간의 감정과 감성이란 아주 오묘하고 민감한 것이더군요. 미묘한 악기나 날카로운 칼도 인간의 마음보다도 다루기 쉬울 것 같습니다.

나는 사랑류를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중하는 한 단어를 뽑으라면, 아마도 사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나이를 들수록 그러해요. 오죽했으면 한 때는 그런 정신을 담아 신흥종교를 창시해볼까, 그런 이름으로 소설을 써볼까 많은 궁리를 했을 정도니까요.

인간이란 같은 존재이면서도 또 서는 자리나 환경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국 이해 못할 인간이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요. 아무리 흉악범이라 해도 말입니다.

인간은 그 어떤 존재로도 변신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가장 증오스러운 적이 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사회생활이고, 가장 흉악한 인간이 또 가장 불쌍해 보이고 착한 사람으로도 보일 수 있는 게 인간의 특이한 모습이에요.

그래서 나는 이번 싸움이 어떻게 끝나더라도, 나에 대한 반성의 기회로 생각할 예정입니다. 누구의 잘못이 크냐를 떠나서, 상대에게 현명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반성은 있지요. 인간을 칼로 대하면 상대도 칼로 반응하는 것이며, 따스한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면 또 그런 감성으로 대응하는 게 인간입니다.

나에겐 두 지 면이 다 있지요. 강한 칼로 상대를 응징하는 기질도 있고 한없이 큰마음으로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구요.

글쎄요, 다음에 같은 경우를 당하면 어떻게 대응할지, 선택은 쉽지 않습니다. 하여간 강공만이 좋은 길은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내가 세상의 인물을 바라보는 눈에는 그 인간의 크기를 존중하는 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돈과 권력이 많아도 그 그릇이 적다고 생각하면 전 존경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또 아무리 미천해도 그 인간의 마음이 곱고 내면에 큰 바다가 숨어있는 인물을 존중하고 크게 보지요.

그래서 인간의 포용력을 대단히 중요시 합니다. 포용력이 그 인간의 크기라고 말이지요. 포용력이 뭘까요 ? 나와 다른 존재들을 인정하고 그 가치를 존중해주는 자세가 아닐까요 ?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겠지요. 자신의 세계관이 좁은 사람일수록, 한 가지 길만이 진리요 정의라는 확신이 강할수록 다른 존재를 포용하기는 더 힘겨우리라 믿습니다.

나는 우리 사회를 바라볼 때 교육을 가장 중요시 합니다. 교육은 미래의 인간들을 만드는 과정이기에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거나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교육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이제는 평생교육입니다. 우리는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서고 나서야 진정한 교육을 다시 받게 되지요. 사회에서 배울 것은 너무도 많으니까요. 이제는 끝없는 재교육과 평생교육이 없다면 부단히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꼭 교실에서만 배우는 것이 교육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이 다 교육의 연장선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위키활동도 중요한 교육의 장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우리는 위키활동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 그리고 조직에 대한 적응능력 등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있다 믿습니다.

그렇다면 개인들의 싸움이나 처단정책도 교육의 큰 장일 수 있다 믿습니다. 형벌이나 처벌은 교화와 사회에 대한 재적응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처단 정책도 그러한 각도와 시선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죠.

인간을 교화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처벌보다는 사랑의 정신에 있다 생각합니다. 인간적으로 그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해주고 사랑하고 포용하려 노력해줄 때 그 따스한 마음으로 짐승처럼 아프고 거친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고 따스한 인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고 싶네요.

그렇게 세계 각국의 형벌의 정신이나 방법이 변화해왔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런 정신들이 위키의 정책에도 많이 도입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하여간 인간은 쉽게 변화할 수 있는 동물이고 어떤 환경과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변화해가는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좋은 자극을 끊임없이 주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위키의 목표가 있고 바라는 이상형이 나름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런 목표를 위해 어떤 환경이 중요한지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어요.

나는 종종 사용자문서들 중에서 위키의 위기와 불안한 미래에 대한 글을 접한 것 같습니다. 목표가 아직 확실한지 알 수 없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정책들이 잘 마련되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결국은 사람들이 위키의 미래를 결정할 테니까요. 좋은 글을 많이 양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사람을 많이 끌어들이고 또 기존활동가들에게 목표와 동기부여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자극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겠죠.

이런 다양한 각도로 이번 사안에 대해 대처해 나갈 생각입니다. 한 사람의 미래를 위해서 사랑하고 포용하는 게 나은지, 위키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어떠한 선례를 넘기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며 변화해 나가는 존재라 믿습니다. 그런 인간들이 모인 위키도 그러하겠지요. 내가 바라는 마음은, 위키 안에서 활동하는 사용자들이 얼마나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지가 무척 중요하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들이 위키안에서 늘 행복하고 만족하는 시간을 늘림으로써 위키가 사랑과 즐거움의 학습터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정신과 정책은 내 인생에서도 적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나는 늘 꿈만 거창했지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었지요. 내 인생에서 뭐가 문제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내 일을 하는 동안 늘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노력과 환경이 필요하다 믿어지는군요. 위키에서 쉬는 시간이 오게 되면, 이런 쪽으로 내 개인계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볼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생각을 어떻게 하는가가 그 인간이요 미래이다, 라는 깨달음을 다시금 재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현명한 인간이 되기란 쉽지 않지요. 그 노력만큼 발전할 수 있다, 믿을 뿐입니다. 내가 아직도 현명한 인간이 되지 못했음은 내 노력이 부족했다는 증거이구요. 다시 일기를 열심히 써보고 싶네요. 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늘려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