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Kirschtaria/탐바판니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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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바판니 왕국(싱할라어: තම්බපණ්ණිය රාජධානිය)은 기원전 543년 비자야 왕조의 시조 비자야에 의해 탐바판니를 수도로 건국된 후 기원전 437년까지 존속한 스리랑카 최초의 싱할라계 왕국이다.

배경[편집]

팔리어로 기록된 연대기인 마하밤사에 따르면, 인도아리아인들이 스리랑카로 이주하기 이전 스리랑카에서는 야크샤나가가 살고 있었다고 하며,[1][1] 기원전 600년 이전에 사용된 고대 무덤 유적과 문명의 징후도 스리랑카에서 발견되었지만, 이 시기 이전의 스리랑카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2][3] 전통적으로 싱할라 역사 및 스리랑카 역사시대에서는 반전설적인 왕자 비자야가 700명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스리랑카로 도착한 날짜를 기원전 543년으로 잡고 있다.[4]

전설에 따르면 비자야가 섬 기슭에 착륙했을 때 모래에 입을 맞춘 다음 이 땅의 이름을 '탐바판니'라고 부르고 땅에 사자를 묘사한 깃발을 심었다고 하며, 인도의 유명한 산치 대탑은 비자야 왕자가 상륙한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5] 탐바판니에 상륙한 비자야는 야크샤의 아름다운 여왕인 쿠벤니를 만났다고 하며, 이 여왕의 진짜 이름은 세샤파티였다.[6]

역사[편집]

기록에 따르면 최초의 싱할라인 왕인 비자야와 그의 추종자 700명이 석가모니가 죽은 날에 스리랑카 섬에 상륙한 후 오늘날 만나르 근처 지역에 해당하는 칠라우 지역에서 탐바판니 왕국을 건국하였으며,[7][8] 비자야는 탐바판니를 자신의 수도로 주장하며 곧 섬 전체가 이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탐바판니는 원래 야크샤가 거주하고 통치하던 곳으로,Yakkhas 이들의 수도인 시리사바투(Sirīsavatthu)에 쿠벤니가 있었다.[9]

우파티스사가마(Upatissagāma)는 왕국의 두 번째 수도였는데, 이전 수도인 탐바판니에서 북쪽으로 7 ~ 8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10][2][1] 비자야의 추종자이자 고위 장관인 우파티샤에 의해 설립되었다.

후계자를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비자야는 치세 말기에 그의 동생 수미타를 왕좌에 초대하기 위해 고향인 신하푸라에 있는 그의 조상에 편지를 보냈으며,[2] 그 편지가 목적지로 도착하기 이전에 비자야가 죽자 그의 수석 장관이었던 우파티샤가 왕위를 계승하고 1년 동안 왕으로 통치하였다.[11]

각주[편집]

  1. Senaveratna 1930.
  2. Blaze 1933.
  3. Ariyadasa 2015.
  4. The Mahavamsa 2019.
  5. Naizer 2009.
  6. Manathunga 2007.
  7. Mittal 2006.
  8. King Vijaya (B.C. 543-504) and his successors 2009.
  9. palikanon.com 2019.
  10. Codrington 1926.
  11. Malalasekera 2017.

참고 문헌[편집]

[[분류:남아시아의 옛 나라]] [[분류:기원전 437년]] [[분류:기원전 54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