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Hyeong0610/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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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희랍인 조르바)
Zorba The Greek, Alexis Zorbas
감독마이클 카코야니스
각본마이클 카코야니스
제작마이클 카코야니스
출연이렌느 파파스(미망인 役), 릴라 케도바(마담 오스탕스 役), 소티리스 모우스타카스(미미토스 役)
촬영월터 래샐리
편집마이클 카코야니스
음악미키스 테오도라키스
개봉일1964년
시간141분
국가그리스의 기 그리스영국의 기 영국미국의 기 미국
언어영어

줄거리[편집]

버질(앨런 베이츠)의 영국에서 건너온 그리스, 영국인 혼열의 작가이다. 그는 그리스 아테네 항구에서 크레타 섬에 가기 위한 섬에서 출항을 기다리다 열정적인 일꾼이자 음악가인 조르바(앤소니 퀸)을 만나게 된다. 버질은 자신의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크레타 섬을 갈탄 광산 재개발을 위해 여행한다고 조르바에게 설명한다. 이에 조르바는 바질에게 자신의 광산 경험을 설명하며 자신을 데려갈 것을 설득한다.

이 둘이 자동차를 타고 크레타 섬에 있는 작은 마을에 들어서자 많은 농민들이 나와 환영을 한다. 그들은 늙은 프랑스 출신의 미망인(릴라 케도바)이 운영하는 "호텔 리츠"에서 머문다. 조르바가 버질에게 마담과 함께 춤을 출 것을 권하지만 버질은 마다하고 조르바는 그 기회에 마담과 춤을 추며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 후 계속해서, 버질과 조르바는 기존의 갈탄 광산에서 일을 해보지만 자꾸 무너지는 광산 탓에 진전이 되지 않는다. 계속 낡은 광산에 대해 고민하던 조르바는 우연히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수도원을 발견하고 그 땅의 나무들을 이용하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그는 집에 돌아와 버질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한편, 비 오는 어느날 버질과 조르바는 한 가게에서 미망인을 발견하게 된다. 수많는 남성들이 재혼하지 않은 마을 미망인을 희롱한다. 그러한 미망인에게 버질은 자신의 우산을 건네주고, 조르바는 버질에게 그녀와 함께 갈 것을 제안했으나 수줍은 버질은 끝내 거절한다.

버질은 조르바의 수도원 계획에 동의하여 그에게 케이블과 기타 부속품을 사기위한 돈을 주고 니아의 큰 도시로 보냈다. 조르바는 버질과 그에게 빠진 호텔 마담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난다. 하지만 조르바는 니아에서 버질의 돈으로 카바레에 가 젊은 댄서와 눈맞힌다. 버질은 조르바의 편지를 보고 조르바가 마담을 버렸음을 알았으며, 자신의 돈을 낭비함에 분노해 호텔 마담에게 조르바가 청혼하고 곧 결혼하려 한다고 거짓말을 친다. 한편 젊은 미망인은 우산과 크리스마스 쿠키를 동네 바보를 통해 버질에게 돌려준다.

조르바가 돌아와 버질이 저지른 일에 대해 놀라 화낸다. 또한 조르바가 버질에게 지난밤의 행적을 묻는다. 그날 밤, 버질은 젊은 미망인의 집을 찾아갔고, 사랑의 밤을 지낸다. 마을사람들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 소문이 돌았다. 이에 젊은 미망인을 짝사랑하던 동네 청년이 자살을 해버린다.

동네 청년의 장례식에 젊은 미망인이 눈에 띄지 않게 참석하려하다가 마을사람들에 의해 차단된다. 결국 안뜰에 갇혀 청년의 자살에 대한 책임으로 마을사람들에게 돌팔매질 당한다. 버질은 자신이 개입하기엔 두려워 조르바에게 알린다. 조르바는 자살한 청년의 친구인 미미토스가 칼을 들고 미망인을 죽이려하자 그를 저지한다. 그 때, 자살한 청년의 아버지가 칼을 가져와 미망인을 죽인다. 버질이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 한탄하자 조르바는 죽음의 공허함에 대해 설명한다.

비 오는 날, 마담 오스텐스가 버질과 조르바의 집에 찾아와 그들을 기다린다. 결혼식에 진전이 없자 조르바에게 불평을 하자. 조르바는 당장 결혼식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마담도 그에 동의하여 간단한 결혼식을 올린다.

얼마 후, 마담은 폐렴에 걸려 임종 직전까지에 이르렀다. 버질과 조르바는 그녀의 곁에서 간호한다. 한편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타지인'이 죽어감에 확신하자 집으로 몰렸온다. 위로가 아닌 그녀의 물건을 탐하기 위해 몰려들어왔다. 그녀가 죽기를 기다리며 전전긍긍 집 주변을 서성인다. 그녀가 죽자 마을사람들은 소리지르면 물건들을 훔치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녀의 방에까지 들어와 물건들을 모두 가져간다. 가져갈수 있는것은 다 가져간 후 떠나간 사람들을 보며 조르바는 홀로 한숨을 쉰다. 조르바는 그녀 옆에 있던 새장의 앵무새를 들고 떠난다.

조르바가 계획했던 나무운반은 완료되어, 양고기를 구으며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수도사들의 축복에 이어 조르바는 공기총을 쏘아 시작을 알렸다. 그러자 통나무가 빠른 속도로 케이블을 타고 내려오다가 박살나 아주 조금의 일부만이 남아 내려왔다. 이에 조르바는 당황하지 않고 두번째로 공기총을 쏘아올리자 다음 통나무가 내려온다. 그러자 이번에도 엄청난 속도로 내려와 바다에 빠지고 만다. 조르바는 다시 공기총을 쏘고 통나무는 또다시 무서운 속도로 내려와 무대를 박살낸다. 수도사들과 마을주민들은 이미 버질과 조르바를 떠나 도망갔다.

버질과 조르바는 구운 양고기를 먹으로 해안 옆에 앉았다. 조르바는 자신이 큰 도시를 여행할 것이라며 이야기한다. 조르바가 곧 떠날때 버질도 함께 떠날 것을 요청하였다. 조르바는 버질의 영국행 출항에 슬퍼하며, 그에게 광기가 사라졌음을 아쉬워한다. 버질은 조르바에게 춤을 알려줄 것을 요청했고, 조르바는 그에게 춤을 알려준다. 버질은 자신의 바보같은 춤사위에 크게 웃는다. 이야기는 두 남자가 열정적으로 해변에서 춤을 추는 것으로 끝난다.

주제[편집]

인생의 행복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완벽한 자유를 구가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인가?[2]

등장인물[3][4][편집]

마이클 카코야니스 안소니 퀸 앨런 베이츠 이렌느 파파스 릴라 케도바 소티리스 모우스타카스
감독 알렉시스 조르바 役 버질 役 미망인 役 마담 오스탕스 役 미미토스 役

인용문[편집]

 Basil: 난 말썽 일으키기 싫어요. 
 Alexis Zorba: 인생은 원래 말썽입니다. 죽어야만 끝나죠. 허리띠 풀고 말썽 찾아다니는게 인생이라니까.
 Alexis Zorba: 젊은 이들이 왜 죽죠? 사람은 왜 죽죠? 말해줘요. 
 Basil: 나도 몰라요.  
 Alexis Zorba: 책을 읽고도 그거 하나 몰라요? 책이 그런 걸 못 가르쳐주면 대체 뭘 가르쳐주죠? 
 Basil: 책은 가르쳐주죠. 조르바의 질문같은 물음들에. 대답할 수 없는 인간의 고뇌에 대해서. 
 Alexis Zorba: 그런 고뇌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Alexis Zorba: 선생은 생각이 너무 많아요. 그게 문제라니까. 약아빠진 사람들과 장사꾼들은 뭐든 저울질을 하죠.

수상기록[5][편집]

1965 Academy Awards, USA

1966 David di Donatello Awards

1965 Laurel Awards

  • Golden Laurel - Sleeper

1964 National Board of Review, USA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논평[편집]

춤의 의미[편집]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중요한 의미로 등장하는 '춤'은 인간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인생을 하나의 유희판으로 여기려는 태도, 가치관과 관계된 것이다. 이는 희극과 비극이 교차되어 일어나는 인생이라는 무대에 스스로가 충실한 희극배우임을 깨우치며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하는 하나의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가 영향을 받은 니체의 철학을 빌려 설명하자면, 니체는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6]에서 춤을 출 줄 아는 신만을 믿겠다고 말한다. 니체에게 가장 상위의 인간 유형은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스스로 사랑하고 극복할 수 있는 존재인데, 웃음과 춤은 이러한 유형의 인간이 수반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7]

자유의 의미[8][편집]

원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나'는 자유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반복해서 되묻고 있다. 인간의 역사는 고대로부터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으로 점철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불행한 시시포스와 같이 똑같은 일상의 쳇바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살기 위해 일상을 영위한다. 일을 하는지 일상과 일을 위해 삶을 영위하는지, 무엇이 우선인지도 모른 채 삶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일생을 마감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삶에 회의를 느끼고 이렇게 일생을 어떠한 틀에 가둔채 사육되는 삶을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인생의 의미[9][편집]

우리는 어린 시절에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 쉽게 말하면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에서 윤리를 배우고, 하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해서 학습을 받으면서 차츰 그러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주체성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조르바는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아직도 태어났을 때의 그 탯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조르바가 이해하는 인간의 모습은 한 마디로 자유다. 주인공은 조르바와 함께한 몇 개월 동안 조르바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조르바는 본능에 충실하고 말보다는 몸짓에 익숙한 사람이다. 주인공은 조르바에게서 열정과 자유를 발견하였다. 조르바가 내뱉는 말은 조르바의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주인공'의 친형같은 조르바, 그리고 법정스님의 화두... 어쩌면 20세기 초의 그리스에서는 주인공처럼 '책벌레'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조르바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본질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조르바가 두목에게 한 말은, 현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자본주의라는 사슬에 묶인 채 우리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 나는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곧 이따위 돈 벌이를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거야!’라고 결심한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 결의는 두목이 “언젠가는 자를 거요”라고 내뱉는 말과 똑같다. 조르바는 ‘내가 묶인 줄’을 자르지 않고서는 절대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일깨운다. 우리는 누구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보’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없다는 조르바의 말이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조르바가 현대인들에게 자유의 부재를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것은 그가 자연과 더불어 살다간 마지막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참조[편집]

  1. 다음 영화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CastCrew.do?movieId=16773&t__nil_CastCrew=tabName
  2. 안남연 <『그리스인조르바』에 나타난 인간의 자유와 삶의 의미>
  3.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6798
  4. 다음 영화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CastCrew.do?movieId=16773&t__nil_CastCrew=tabName
  5. imdb http://www.imdb.com/title/tt0057831/awards
  6.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7. 변재길 <영상시대의 문화코드>
  8. 안남연 <『그리스인조르바』에 나타난 인간의 자유와 삶의 의미>
  9. 이상민 http://webzine.djac.or.kr/webzine1402/html/sub_con09.html

바깥고리[편집]

그리스인 조르바 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