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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편집]

태권도 창시자도 아니고, 미국에서 태권도 도장하는 사람의 이상한 인터뷰 내용을 번역해서 영어판 위키피디아에 올려 나라 망신 시키지 말고 좀 영어판 태권도 판에 편집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일본인입니까? 참고로 영어판 위키피디아에서는 수년에 걸친 엄청난 토론으로 현재 문구로 고정된 것입니다. 더 이상 태권도 역사 부분을 편집해서 더럽히지 마시길. 이미 현대 태권도는 70% 이상이 가라데와 다른 기술이며, 95%이상의 품새가 가라데와 달리 새롭게 창조된 것입니다. 가라에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지만, 태권도가 가라데의 일부라는 식의 편집도 문제입니다. 50년대 후반부터 전통 무예를 발굴해서 그것이 태권도에 접목됬기 때문에 태권도는 한국의 전통 무술도 되고, 가라데 영향설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태권도는 한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면 수 많은 사람들이 태권도 형성에 기여를 했습니다.660gd4qo (토론) 2009년 11월 25일 (수) 11:32 (KST)

그런데 한국인 맞습니까? 제발 좀 영어판 위키피디아에 참가하지 말아주세요. 귀찮습니다. 그 이상한 번역물은 지워 주시길. --660gd4qo (토론) 2009년 11월 26일 (목) 06:06 (KST)

예 한국인 맞습니다. --Tonsdon (토론) 2009년 11월 26일 (목) 07:30 (KST)
영어판 위키피디아에 이상한 번역 quote 붙이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영어판 위키 태권도판에 이상한 내용 삽입 하지 말아주시고요. 영어판 위키피디아 토크란에 블로그에서 번역하신 john rhee quote 번역을 지워주시길 바랍니다. 부정확할 뿐더러, john rhee는 한국 태권도 형성에 기여를 한 사람이 아닙니다. 미국에 한국 태권도를 수출한 사람이지. --660gd4qo (토론) 2009년 11월 26일 (목) 07:45 (KST)
처음에는 일본인인줄 알았습니다. 그런 나라망신에 객관성을 잃은 편집은 삼가하셨으면 좋겠네요. 저기 죄송한데요. 먼저 의문 사항이 계시면 한국어판 위키에서 토론을 한 다음에 영어판에 토론합시다. 제가 자료를 엄청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문나는 것에 성실히 대답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부탁인데 영어판 위키피디아의 토론 부분에 그 quote 번역 부분을 스스로 지워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면 논쟁을 끝낸다는 어떤 의사 표시를 부탁합니다. case close (제가 시켰다는 말하지 말고요) 그리고 영어판 위키피디아에서 저 좀 도와주세요. 같은 한국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660gd4qo (토론) 2009년 11월 26일 (목) 16:50 (KST)

>>처음에는 일본인인줄 알았습니다. 그런 나라망신에 객관성을 잃은 편집은 삼가하셨으면 좋겠네요. 저기 죄송한데요. 먼저 의문 사항이 계시면 한국어판 위키에서 토론을 한 다음에 영어판에 토론합시다. 제가 자료를 엄청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문나는 것에 성실히 대답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탁인데 영어판 위키피디아의 토론 부분에 그 quote 번역 부분을 스스로 지워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면 논쟁을 끝낸다는 어떤 의사 표시를 부탁합니다. case close (제가 시켰다는 말하지 말고요)

준리가 말한게 틀리더라도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은 언급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급하더라고 그렇게 장문의 quote는 올릴 필요 없고, references 밑의 quote 부분에 "신동아 매거진에 의하면, 준리는 청도관 태권도가 가라데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According to shindonga magazine, John rhee claimed that early chung do kwan taekwondo was heavily influenced from Karate) 라고만 짧게 quote를 다시면 될 듯 합니다. (본문이 아니라 references 밑의 quote부분에만)

:: 그리고 이준구 신동아 매거진의 기사 역시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진위 여부를 확실히 확인할 수 없습니다. 신동아매거진은 동아일보 계열사지만 동아일보와 같은 공신력은 Zero입니다. 신동아에 미네르바의 "가짜"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고 사과까지 했지요. 신동아매거진은 썬데이 서울급의 잡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영어판 위키피디아에서 저 좀 도와주세요. 같은 한국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예.
그렇다면 토크란에 그 영어로 번역하신 quote 좀 지워주십시오.

저기 죄송한데요 이것좀 지워달라가니까요? 왜 또 이상한 번역을 올리셨어요?[1] 이 부분을 revert해주세요. 왜 그것을 영어판에 붙이려고 합니까? 태권도가가라데에밀려올림픽 철수당할지도모를판에, 그리고가라데측주장은태권도는가라데의아류[2]기때문에 제외하고 우리가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출처 필요]하고 있어요. 제발 부탁이니 저 번역부분을 지워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태권도는 한 사람에 의해 창시된 무술이 아니면 현재는 이미 70% 이상이 가라데와 다르다니까요? 전통 무술의 재발굴을 통해 고대 한국무술과도 연결된다는 말도 맞고 가라데 영향설도 맞습니다. 그리고 준리가 말한 내용중에 부정확한 부분이 있어요. 그는 스스로 청도관외에는 다른 관 태권도는 잘 모른다고 했었고요, 그런데 태권도는 청도관에 의해 창시된게 아닙니다.--660gd4qo (토론) 2009년 11월 28일 (토) 05:45 (KST)

  1. 존리는 청도관에서 태권도를 배워 미국에 수출한 사람이지, 태권도의 창시자나 형성자가 아니며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활동한 사람이기 때문에 미국으로 떠난 이후에는 한국 태권도 발전에 기여한 사실이 없습니다.
  2. 존리는 1950년대 초반에 이미 한국을 떠나서 미국으로 간 사람입니다. 당시 전체 태권도 수련생의 75%가 수련했던 "무덕관"의 황기 관장이 수박을 발굴해서 태권도에 접목한게 1957년, 존리가 한국을 떠났을때 태권도라는 통합 무술 단체가 없었으며 여러개의 관이 난립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였던 '청도관' 태권도는 가라데의 영향이 있었겠지요. 존리가 한국을 떠난후, 각지의 9개 관들이 통합되서 하나의 태권도라는 명칭이 되었습니다. 즉,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청도관이 유일한 태권도의 루트가 아니었다는 점, 존리가 한국을 떠난 이후 태권도는 전통 무술의 재발굴을 통해서 상당히 변화 했었다는 점 이 Fact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즉 존리가 말하고 있는 태권도의 역사는, 태권도가 아닌, 1950년대의 청도관에 가르치던 무술에 국한된다고 봐야 합니다. 참고로 9대 관이 통합해서 현대의 태권도 단체가 된것은 1978년입니다.
  3. 신동아 매거진 기사 자체의 공신력에 상당한 의문이 있습니다. 이종우씨도 신동아 인터뷰 내용이 왜곡됬다고 부정하는 판에 존리 인터뷰가 정말 정확한 것일까요? 더구나 신동아는 미네르바의 '가짜'인터뷰까지 만들었던 곳입니다.


...해방 이후의 태권도 발생에는 가라데 뿐만 아니라 중국 무술의 영향도 같이 받았다. 초대 5대관 중의 하나인 창무관은 중국 주안파의 무술을 토대로 하였고 그 최고 품새에는 현재의 팔극권에 해당하는 "팔기권"이라는 품새가 있었다. 한편 또 다른 관인 무덕관의 최고 품새는 태극권이 있었으며, 이 역시 중국 무술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는 증거이다. 한편 가라데를 먼저 배운 청도관 창시자 이원국은 이후에 가라데의 원류를 찾아서 중국을 방문하기까지 하였다. 초대 5대 관 중에서 3개 관에서 중국 무술의 영향까지 같이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태권도의 초대 관장들이 가라데를 수련했다고 하는 주장은 그 자체 사실 확인에서부터 틀린 것이다. 물론 이 사실확인으로 역사확인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원국은 직접 초대 도장을 열면서 택견 노인을 만나서 택견을 배웠다고 진술하고 있고, 최홍희 역시 택견을 참조로 해서 자신의 태권도를 구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덕관에서 출발, 수박도로 전향한 황기 씨는 자기 무술의 근원을 더 오랜 한국의 무술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을 보면, 해방 직후의 태권도 사범들이 스스로의 근거를 한국의 전통무예에서 끌어올 수 있었는데, 이것은 그 때까지 한국의 전통 무예가 전승되면서 알려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3]

>>이원국은 직접 초대 도장을 열면서 택견 노인을 만나서 택견을 배웠다고 진술하고 있고[출처 필요], 최홍희 역시 택견을 참조로 해서 자신의 태권도를 구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덕관에서 출발, 수박도로 전향한 황기 씨는 자기 무술의 근원을 더 오랜 한국의 무술에서 찾고 있다.

태권도 바이블에서도 출처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한국을 스스로 폄하하는 기사를 찾아서 일본인을 도와줍니까? 제발 좀 번역부분은 지워주시길

그리고 국기원 이종우씨 인터뷰는 이미 언급된 부분이고요, 그부분에 대한 설명과 국기원측 입장, 그 사람의 다른 인터뷰 내용도 제가 올렸습니다. 이종우씨 인터뷰는 당신이 또 언급하실 필요 없습니다. --660gd4qo (토론) 2009년 11월 28일 (토) 05:48 (KST) 또 여기를 참고[4]

그리고 태권도 형성사에 대한 궁금증이 강하시다면 다음 책을 추천합니다. [5] 사실에 기반해서 천천히 논한 책입니다. --660gd4qo (토론) 2009년 11월 28일 (토) 05:58 (KST)

영어판에 어설픈 번역을 지워달라고 부탁하니까 왜 더 이상하게 번역을 꼬아서 하세요? direct copy 가 아닙니다.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복사"라고 언급 한 적 없어요. --Raisekept (토론) 2009년 11월 28일 (토) 06:50 (KST)

'그대로 본받았다'는 분명히 단지 '영향'을 받았다는 것 보단 가라데 그 자체이다 가 타당한 번역입니다. Tonsdon (토론) 2009년 11월 28일 (토) 13:36 (KST)
  1. 신동아 매거진은 공신력에 의문이 듭니다
  2. 만약 존리가 그런말을 했다 해도, 일단 그것은 존리의 개인적인 주장입니다. 존리는 한국 태권도 형성에 영향을 준적이 없으며 태권도를 미국에 수출한 사람입니다. WTF, ITF 태권도 형성에도 영향을 준 적 없습니다.
  3. 그 사람 인터뷰 뉘앙스는 존리 태권도는 다른 태권도와 다르다 는 우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 사람 다른 인터뷰를 보면 최홍희와 심한 말싸움을 했다는 것과 다른 태권도 관계자와 사이가 안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 사람 입장에서는 최홍희와 WTF, ITF 한국 태권도는 자신과 상관 없는 남남이며, 경쟁 상대의 적이지요. 적을 비난하는 것은 이해될 수 있는 일.
  4. 내용중에 가라데 그 자체다, 복사 했다. 이런 내용은 없고요, 50년대 초반 청도관 상황을 언급한것입니다. 거기서 예로들고 있는 설명이 정권지르기인데, 정권 지르기가 가라데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권 지르기 하나만으로 초기 청도관은 가라데의 복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청도관 창시자 이원국씨는 중국 권법과 태껸도 수련을 했었거든요.
  5. 만약 그 사람인터뷰가 100% 사실이라고 해도, 그 사람 인터뷰에서 조차 태권도의 발기술이 가라데와 다르며 훨씬 낫다 라고 했는데, 현대 태권도의 전체 기술의 75%가 발기술입니다. 즉, 그 말은 태권도는 최소 75% 이상의 기술이 가라데와 다르다는 증명도 되는 것입니다. 그 75%의 공백은 한국 고전 무예에서 찾아왔다는 귀납도 가능하고요.
  6. 가라데 그 자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가라데는 공격->방어->공격으로 이루어지는 무예 스타일인 반면, 태권도는 공격->재공격으로 이뤄지는 스타일입니다. 만약 가라데 그 자체라면 왜 이런 베이직에서부터 차이가 날까요?

--Raisekept (토론) 2009년 11월 28일 (토) 13:56 (KST)

영어판 태권도 편집을 그만해주시길 강력히 건의 드리겠습니다. 여러가지 의견을 서로 존중한 현재의 편집을 더이상 훼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년간 dispute로 현재로 고정된 것인데 또 당신이 와서 방해를 하면 어떡합니까? 일단 1995년의 capner소스는 증거나 물증, 과학적인 기반, 역사적 증거등이 하나도 없는 그의 추측으로 기반되서 쓰여진 student forum의 paper라는 점에서 소스나 quote로 사용되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송덕기 왈 택견은 놀이로만 생각되고 거의 서울에서만 있었다. 최홍희는 가라테와 택견의 기술을 합했다고 주장하고 택견을 함경도의 서예 선생 한일동 한테서 배웠다고 하는데 이것은 택견이 거의 서울의 현상이었다는 송덕기의 증언에 어긋난다. 더군다나 후기 조선의 교육받은 자들의 상민들의 놀이에 대한 무관심을 보아 한일동 같은 서예 예술자가 시끌벅적한 택견 겨루기의 환경에서 있었다는 가능성은 매우 미하다"

또 그 사람이 틀린 것이 있는데 태권도가 서울에서만 존재했었다는 출처가 불확실한 추측으로 다른 사람이 태견을 배우지 않았다는 착각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예를들어 봅시다. 전주 비빔밥이 전주에서 유행했다고 정말 서울에는 비빔밥이 없었다는 말입니까?

서울외에는 택견이 없었다는 증거가 불확실한 걸로 억지로 결론을 끌어 맞춘다는 느낌은 안 듭니까? 또 증거가 확실한 중국 권법의 영향은 완전히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 paper를 쓸 당시 1995년에는 학생이었고, 최근 까지 그냥 영어 강사(교수가 아님) 로 재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태권도 역사에 정당한 학위를 가진 qualified한 사람의 논문이 아닙니다. (적어도 1995년 당시) 그런데 그가 5년후, 2000년에 쓴 capner소스는 또 내용이 다릅니다. 그 사람의 1995년의 학생 paper 논문을 취소했거나 나중에 잘못을 고치고 수정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Capener, Steven D.; H. Edward Kim (ed.) (2000). Taekwondo: The Spirit of Korea (portions of)[6]

  • "Korea has a long history of martial arts stretching well back into ancient times."
  • "The earliest unarmed Korean martial art which has been identified was call subakhi."
  • "Therefore, it is possible that Koreans were perhaps the first to systemize this kind of martial art into an early form of sport in Asia."
  • "In 1895, an American anthropologist named Stewart Culin visited Korea for the purpose of studying Korean games. In his book Korean Games he includes a picture of two children engaging in a taekkyon match."
  • "Taekkyon had become so popular as a folk sport"
  • "It was in the early 1960s that taekwondo began to systematically organize itself both in matters of administration and technique."
  • "In the early 1960s, however, some taekwondo leaders started to experiment with a radical new system that would result in the development of a new martial sport different from anything ever seen before. This new martial sport would bear some important similarities to the traditional Korean game of taekkyon."

5년후 쓴 이 논문에는 택견과 연관성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으며, 60년대 태권도 리더들이 택견을 닮은 새로운 무술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즉 가라데 영향도 맞고, 전통 무술과 연결도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5년후 논문에서 POV가 달라졌다 점 알아두시고요. 그 사람의 1995년의 논문은 정식 학위 논문이나 qualified한 논문이 아닌, 한국에서 영어 강사 하면서 태권도도 배운 서양인이 자기 상상력을 동원해서 결론을 정해놓고 자료를 끌어맞추는 식의 student forum에 paper를 작성한 것입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11월 29일 (일) 04:05 (KST)

이 외 darkin이나 가라데 POV논문이 몇개 더 있는데, 수년간의 dispute 결과로 영어판은 현재로 고정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지금 막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희열에 차서 새로운 것을 알려줘야지 하면서 영어판 편집을 하시는 것 같은데, 이미 2002년부터 그 영어판 태권도 편집을 봐온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아는 내용입니다. 수년간 dispute결과 결국 현재로 고정되었다는 점 알아두시고, 제발 더 이상 그 편집에 참가 해주시기 말길 바랍니다. 가라데POV의 문제는 택견, 수박도, 중국 권법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한체 의도적으로 결론을 정해 놓고 자료를 끌어 맞추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는. 그리고 태권도 모체가된 당시 9대 관장은 가라데를 배우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중국 권법에 더 능한 사람도 있었고, 1950년대 준리가 언급한 시절의 청도관은, 청도관에 대한 설명이지, 태권도가 아님. --Raisekept (토론) 2009년 11월 29일 (일) 04:05 (KST)

그리고 한국 고유 무술이 택견만 있는게 아닙니다. 현재의 태권도 가라데를 보면 그 관련성을 찾기 희박할 정도로 상당히 동 떨어진 무술입니다. 70%나 기술이 다른데, 그런 그 공백은 어디서 찾았을 까요? --660gd4qo (토론) 2009년 12월 5일 (토) 15:10 (KST)

영문판 쭉 보셨으면 알겠지만, 가라데쪽 내용이 상당히 헛점이 많습니다. 특히 중국 무술과 한국 고유 무술의 영향을 완전히 부정할려고 하는데 그것은 쉽게 논파당합니다. 게다가 현재 태권도의 싸움방식, 기술, 품새등이 가라데와 70%이상 다르다는 사실을 설명 못합니다. 현재의 편집이 수년간의 싸움에 의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한 최선의 편집으로 이 POV의 균형을 깰 필요가 없으며, 합의대로 POV내용은 생략하고 나머지는 독자가 판단하도록 하자는 게 수년간의 dispute 결과였습니다. --660gd4qo (토론) 2009년 12월 5일 (토) 15:1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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