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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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토리아 전투 (나폴레옹 전쟁의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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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1813년 6월 2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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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스페인 비토리아 | ||
| 결과 |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동맹군의 승리 | ||
| 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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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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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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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 규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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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리아 전투는 1813년 이베리아 반도 전쟁 당시에 스페인에서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동맹군이 프랑스군을 최종적으로 격퇴시킨 결정적인 전투이다.
전투 과정 [편집]
전투는 웰링턴이 지휘하는 7만 2000명의 군사와 대포 90문을 이끌고 나폴레옹의 형이자 스페인 왕 조제프 보나파르트와 주르당이 지휘하는 5만 7000명의 군사와 대포 150문을 이끌고 벌어졌다. 프랑스군은 비토리아 분지에서 진을 쳤는데 분지의 길이는 19km의 길이에, 11km의 깊이 정도의 산맥이 둘러싸여 있었고 북쪽과 서쪽에는 사도라 강이 막고 있어 강에는 허술한 다리 몇 개가 놓여있었다. 6월 21일 오전 8시가 지나자 동맹군은 4개 대열로 진격을 개시했고 서쪽에서는 다리를 통해 강을 건너 프랑스군 좌익과 중앙을 비토리아 분지로 후퇴하게 만들었다. 프랑스군 우익은 힘겨운 전투 끝에 무너졌고 오후 7시경 프랑스군은 막대한 전리품, 배낭, 대포 전부를 남겨두고 팜플로나로 후퇴했다. 이 전투에서 동맹군은 5000명, 프랑스군은 8000명의 사상자와 포로가 생겼으며, 이 전투의 승리로 동맹군은 바스크 지방을 장악하고 프랑스군을 피레네 산맥 넘어로 후퇴하게 만들었다. 후작이던 웰링턴은 이 승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공작으로 승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