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츨라프 탈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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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츨라프 탈리히(Václav Talich, 1883년 5월 28일, 크로메르지시 – 1961년 3월 16일, 베로운)는 체코바이올리니스트이자 나중에는 음악 교육자였다. 그는 오늘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휘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그의 많은 음반이 무수히 재발행되었다.

크로메르지에서 태어난 그는 학생 오케스트라 에서 음악 경력을 시작 했다 . 1897년부터 1903년까지 그는 프라하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했고, 후에 1903-04 시즌 동안 베를린 필하모닉악장이 되었다. 그는 상임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슈에게 매료되어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라이프치히에서 니키슈에게 지휘를 공부했다. 그는 1906년 트빌리시에서 처음으로 지휘를 했으며 그의 첫 지휘직은 류블랴나에서 슬로베니아 필하모닉 과 함께였다. 그런 다음 플젠으로 가서 1912년부터 1915년까지 오페라를 지휘했다. 1915년부터 1918년까지 그는 보헤미안 사중주단 (이후 체코 사중주단으로 불림)의 비올리스트였다.

탈리히의 체코 필하모닉에서의 경력은 1918년 10월 30일 수크의 교향시 Zrání 의 초연을 지휘하면서 시작되었다. 1919년부터 1941년까지 그는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광범위하게 여행했으며 EMI를 위해 체코 음악을 녹음했다. 동시에 그는 1926-27 시즌에 스코틀랜드 국립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였으며 1926-1936년에는 스톡홀름의 Konsertföreningen Orchestra의 수석 지휘자였다. 1935년에 그는 프라하 국립 극장의 수석 오페라 관리자로 임명되어 그곳에서 야나체크의 작품을 홍보했으며 그의 작품 중 일부는 초연했다.[1] 1944년에 그는 그 자리에서 해고되었고 국립 극장은 나치 정권에 의해 폐쇄되었다.

전쟁 후 탈리히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체포되었고 독일인과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비난은 반박되었고 그는 1946년에 그의 경력을 다시 시작하여 프라하 음악원의 학생들과 함께[2] 체코 챔버 오케스트라를 설립했다. 1948년 정권은 오케스트라를 다른 지휘자를 선택하거나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오케스트라는 해산을 선택했다. 그 후 탈리히는 브라티슬라바에서 슬로바키아 필하모닉을 창단하여 1952년까지 지휘했다. 그는 또한 1954년 11월에 체코 필하모닉과의 마지막 공개 공연을 통해 체코 필하모닉과의 관계를 재개할 수 있었지만 1956년까지 녹음과 방송을 했다. 1957년에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최고의 영예인 국민 예술가가 되었다.

특히 드보르자크, 스메타나 및 수크와 같은 체코 작곡가에 대한 해석으로 유명한 탈리히는 또한 야나체크의 오페라를 표준 레퍼토리로 가져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각주[편집]

  1. Holländer, Hans, "Musical Notes from Abroad: Czechoslovakia" (January 1936). The Musical Times, 77 (1115): pp. 76–78.
  2. “František Sláma Archive”. 2015년 9월 2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3년 2월 6일에 확인함.